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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중소기업 육성론이라는 포퓰리즘을 넘어서야

민주노동당은 7월에 열린 중앙위원회와 임시 당대회에서 중요한 결정을 했다. '중소기업 보호육성 정책'을 당의 핵심 사업 중 하나로 결정한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민주노동당을 상징하는 정책은 부유세·무상의료·무상교육 같은 분배 정책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0·26 재선거와 올해 5·31지방선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당은 친경제 성장 정책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8월 23일 중앙당에서 열린 '상설연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토론회에서 김영욱 '진보정치연구소'부소장도 민주노동당의 지지를 "중간층"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성현 대표도 5·31지방선거 직후 이렇게 말했다. "부유세, 무상의료·무상교육은 다 아는 거고 신통치도 않다. 보다 구체적이고 새로운 뭔가가 대단히 미약했다." 즉, "중소·영세상인, 중소기업인의 민주노동당 지지 동인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선거 패배의 핵심"이다(〈레디앙〉6월 14일치).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당 강령에 민주노동당을 "중소상공인의 정당"이라고 못박고 있다고까지 말했다.(이것은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당 강령에는 그런 구절이 없다.) 그는 중소상공인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선거에서 당선할 수 없으므로 "중소상공인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업을 줄기차게 조직하고 당의 중요 사업으로 제기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주장들은 모두 커다란 착각에 근거해 있다. 민주노동당이 아직도 노동계급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소기업인이 개별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당의 원칙과 규율을 따르고자 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중소상공인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정확히 당의 노동계급 이익 옹호와 충돌을 빚을 것이다.

'중소기업 육성론'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분배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전통적 정책인 분배를 통한 성장이 지배자들의 완강한 반대에 직면하자 위험한 우회로 ―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 를 택한 것이다.

예컨대, 5·31지방선거 때 인천시장 후보로 출마한 김성진 최고위원은 선거 기간 내내 "파이를 키우는 방법"에 골몰했다. 그는 경제자유구역 부지를 "중소·향토기업에게 제공해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장석준 동지를 포함해 적지 않은 당 간부들이 주장하는 대기업노조 양보론도 경제 위기의 시기에는 대중 투쟁을 통한 노동자 몫 늘리기가 가능하지 않다는 짙은 회의가 깔려 있다. 요컨대, 대중 투쟁에 대한 확신 없음의 반영인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금속노조는 대기업노조 양보론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자료를 내놓았다. 중소 규모 제조업체 노조들이 주축인 금속노조가 8월 11일 임금 협상을 완료한 36개 작업장을 조사한 결과 평균 7만 1천7백47원이 인상됐다. 현대차노조가 올해 인상한 기본급 7만 6백65원과 엇비슷한 인상액이다.

이것은 대기업의 임금 인상이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인하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틀렸음을 보여 준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조직화 정도와 투쟁 의지이다.

'중소기업 육성론'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 같다. "우리 나라의 중소 기업들은 대다수 재벌 대기업에 하청으로 묶여 있으며 원·하청 간 불공정 거래로 고통 겪고 있다. … 부도 위기에 내몰린 중소기업에게 노동자의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 주고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향상을 기대할 수 없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구체적 현실 개선을 위해서도 중소기업 지원과 활성화에 대한 정책적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김창현)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린다는 것은 얼마간 사실이다. 그러나 둘 간의 "불공정성"만을 얘기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동시에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하청 중소기업이 원청 대기업의 단가 인하 등 때문에 이윤의 일부를 수탈당할지라도 하청분업 구조를 통한 대기업의 지원 등으로 전체 수익은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자동차산업과 섬유산업을 대상으로 이윤율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하청의존도가 높은 [중소] 기업일수록 이윤율이 높다."

요컨대, "불평등한 하도급 관계가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은 일부 산업에서는 타당하지만 전체 중소기업 차원으로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황선웅, '제조업 기업규모간 양극화의 실체와 원인', 《중소기업의 구조적 문제와 지역산업의 실태》, 새세상을 여는 진보정치연구소)

파이

대기업(67.2퍼센트)만이 아니라 대다수 중소기업(65.2퍼센트)들이 한미FTA를 찬성한 것이나(대한상공회의소 조사), 현대차 부품업체 사장 등 울산 중소상공인들이 주축이 된 '기업사랑실천범시민협의회'가 현대차노조의 파업을 비난한 것은 둘 사이의 관계가 불공평하면서도 상호협력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또,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노동조건 격차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불공정한 거래"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기업규모간 경영 성과의 격차 확대 현상은 그다지 뚜렷이 관찰되지 않는 데 비해 노동조건의 양극화 현상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확연히 나타났고, 최근에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황선웅, 위의 글)

사실,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바다에서 쟁기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빈곤 완화는 대기업도 하지 못한 일을 그보다 훨씬 열악한 처지에 있는 중소기업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육성론'의 실천적 함의야말로 진정한 문제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계급 협력과 화해를 해야 한다는 믿음은 노동자 운동에 해악적이다.

지방선거 때 김성진 인천시장 후보는 TV 토론에서 "기업주와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변했다. "시장은 중립적인 존재이므로 어느 편도 들 수 없다. … [노동자와 기업주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협상을 조율하겠다."

투쟁하는 양대 계급 사이에서 공평무사한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말리는 구실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조직 노동자를 넘어 미조직 노동자들의 광범한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민주노동당의 핵심 당면 과제를 심각하게 방해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보다는 그 기업주의 이익 대변에 더 열심이라면, 민주노동당의 노동계급 기반 확대 작업은 요원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