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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9월 반란

1990년대 내내 멕시코를 흔든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운동이나 투쟁도 국가적 차원에서 권력을 다툴 수 있는 광범한 정치 운동을 건설하지 못했다. 농촌의 무장 반란, 산업현장의 반란, 원주민 투쟁, 사유화 반대 투쟁, 학생 운동 등이 모두 지지부진해지고, 하찮거나 의미없는 양보를 얻어내고 가라앉았다.

좌파 정당인 민주혁명당(이하 PRD)은 이런 투쟁들이 성장하게 할 수 없었다. PRD는 1988년 대선에서 선거부정 때문에 승리를 빼앗기고도 이를 순순히 인정한 이후 여느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처럼 모순된 노선을 추구했다.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지지 기반인 노동계급과 사회운동들에 정책 대안들을 제시하려 애썼다.

지난 7월 2일 대선에서 PRD 후보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승리했다면 이런 흐름이 거의 변함없이 지속됐을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에 오브라도르는 미묘한 줄타기를 했다. 국내 정책에서는 중도좌파 공약들을 제시하면서도, 자신의 "대안적 국가 건설 프로젝트"가 신자유주의 정설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해외 언론과 국제 시장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멕시코 지배계급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오브라도르와 그의 기반인 노동계급과 농민을 두려워하고 혐오했다. 그래서 그들은 서투른 정치 개입을 하는 바람에 앞으로 한동안 멕시코에서 안정적인 신자유주의 정권이 집권할 가능성을 봉쇄해 버렸다.

지금 멕시코에서는 정치적 급진화와 사회적 급진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7월 초부터 9월 초까지 8주 동안 정치 위기가 매우 급속하게 발전했다. 헌법 테두리 안의 합법성을 둘러싼 논쟁이 헌법의 정당성을 둘러싼 투쟁으로 변모했다. 사회적으로는, 선거 당시 "거시경제의 안정" 운운하던 PRD가 이제는 신자유주의를 비난하고 부의 재분배를 약속하고 있다.

오브라도르는 오는 9월 16일 멕시코시티의 소칼로 광장에서 전국민주주의대회를 열자고 호소했다. 멕시코 전역에서 선출한 거의 1백만 명의 대표들이 멕시코 헌법 39조에 따라 모든 정치적 권위를 민중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발생한 사회 위기가 없었다면 정치 위기가 그토록 급속하게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규모 집회·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왜 참가했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들은 선거 부정과 부(富)의 범죄적 분배를 다 얘기했다. 멕시코에는 세계 4위의 부자도 있지만, 노동계급의 절반 이상이 일주일에 12달러(약 1만 1천5백 원)도 벌지 못한다.

운동을 끌고 갈 필요성 때문에 오브라도르의 정치가 꾸준히 바뀌었다. 8월 초에 그는 부자들이 멕시코를 강탈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자신이 신자유주의를 폐기하고 부를 재분배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농민단체들은 민주주의와 농촌 지원을 요구하며 그를 지지한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민주주의와 사회복지 지출 증대, 사유화 전면 중단을 요구하며 그를 지지한다. 노인들은 민주주의와 노인 연금을 요구하며 그를 지지한다. 여성단체들은 모성 보호와 시우다드 후아레스[멕시코 북부 도시]의 연쇄살인 사건에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운동에 동참했다. 원주민들도 9월 16일 대회를 준비하고 있고, 그들의 지역 자치를 요구할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차별 금지 법제화를 요구할 것이다.

운동이나 지배계급 어느 쪽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9월 초에도 긴장은 계속 고조됐다. PRD 소속 의원들이 머지않아 오브라도르와 결별할 것이라던 근거없는 추측은 9월 1일에 사라졌다. 그 날 PRD 소속 의원들은 현 대통령 비센테 폭스의 연례 국회연설을 저지하기 위해 하원의 연단을 점거했다.

오브라도르는 시위대가 의사당으로 진격하면 국가가 이를 빌미 삼아 운동을 탄압할 것이므로 시위대가 소칼로 광장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9월 16일 대회를 계속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고 경찰의 도발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집회가 열렸고, 사람들은 오브라도르의 주장에 동의했다. 시위진압 경찰이 진을 친 채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독자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운동의 규율을 잘 보여 주었다.

농성장에서는 수천 명이 TV 앞에 앉아 의사당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았다. 폭스가 의사당에 도착한 지 겨우 7분 만에 그냥 돌아가야 했을 때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소칼로 광장으로 돌아가서 첫 승리를 자축했다. 그 날 밤에 농성장에서는 새로운 구호들이 등장했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 "폭스는 졌다, 펠리페[이번에 부정선거로 '당선한'후보]도 질 것이다",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다" 등등.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질 것이다. 9월 15일에 폭스는 다시 한 번 대국민 연설을 할 예정인데, 이번에는 그 장소가 소칼로 광장이다. 16일에는 지금 농성장이 있는 거리에서 멕시코 군대가 관례대로 행진할 것이다. 펠리페 칼데론은 12월 1일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취임선서를 할 것이다. 그런 각각의 행사에 대해 운동은 합헌성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9월 16일 이후 멕시코에는 정치권력이 두 개가 존재할 것이다. 사유화를 계속 밀어붙이겠다고 말하는 특별히 우파적인 신자유주의 정부와 전국민주주의대회에서 선포할 모종의 좌파 정부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오브라도르는 칼데론과 협상은 물론 심지어 칼데론을 인정하는 것조차 거부해 왔다. PRD 지도자들과 국민행동당(PAN)의 협상이 어느 정도까지 진척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오브라도르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는 아주 적다.

지금 우파의 전략은 운동이 제풀에 지칠 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것인 듯하다.

운동은 지리적으로 불균등하고 멕시코시티에 집중돼 있다. 남부의 오악사카 주(州)에서는 경제 파업이 정치 투쟁으로 발전했다. 멕시코 노동계급 가운데 가장 전투적인 부문에 속하는 교사들이 광범한 노동단체 연합을 구축하고 일부 지역에서 권력을 장악하기까지 했다. 현재 연방정부와 협상이 진행중이다. 인기가 땅에 떨어진 주지사는 숨어버렸다.

멕시코 전역에서 광부들이 국가를 상대로 매우 전투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교사 파업이든 광부 파업이든 아직 멕시코시티의 운동과 제대로 연결되고 있지 않다.

이 점은 사파티스타도 마찬가지다. 대선 기간에 이른바 ‘다른 캠페인’을 진행하며 선거에 기권하는 듯한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사파티스타는 이제 새로운 운동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 멕시코시티에 머물고 있는 마르코스는 아직 이 운동에 대한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과 접경 지대이며 대규모 공단이 있는 북부 여러 주의 노동자들도 아직 조용하다.

더 심각한 것은 조직 좌파가 아직 취약하다는 것이다. PRD는 더는 이 운동을 전진시킬 수 없을 것이다. 농성장에서는 조직화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좌파 재결집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멕시코의 현재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남미에서 일기 시작한 좌파 물결이 이제 북미까지 밀어닥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