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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여성 노동자

세계화와 여성 노동자

정진희

요 몇 년간 반자본주의 운동이 성장하면서 세계화가 인간의 삶에 끼치는 다양한 영향에 대한 논의가 증대해 왔다. 세계화가 여성에 끼친 영향도 그러한 논의 가운데 하나다.

많은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이 세계화가 여성의 삶에 끼친 부정적 측면을 폭로해 왔다. IMF, 세계은행, WTO 같은 기구들이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분명 대다수 여성의 삶은 황폐해졌다.

공공 서비스 삭감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히 여성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들었다. 보건의료비 삭감으로 어린이, 노인, 환자 등을 돌보는 일이 개별 가정에 떠넘겨져 여성의 부담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많은 가정을 강타한 빈곤 때문에 절망이 깊어지면서 가정 폭력 또한 증가하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1999년 보고서에서 가정 폭력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매매춘을 통해 생계를 이어 가는 여성 역시 늘고 있다. 매매춘 증가는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경험한 나라들, 예컨대 옛 소련과 동유럽 등지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또한 끔찍한 노동 조건을 강요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자유무역지대나 수출촉진지대에서 여성들이 겪는 일들이 대표적이다. 많은 젊은 여성들이 자유무역지대의 혹사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들에 고용된 노동자의 60∼90퍼센트가 여성이다. 각국 정부가 다국적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규제”를 최소한으로 줄인 결과, 노동조건은 최악이다. 노동시간은 12∼14시간이나 되고 임금은 매우 낮다. 화장실에 가려면 ‘소변 카드’에 소요 시간을 표시받아야 할 정도로 노동 통제가 극심하다. 건강과 안전 기준은 무시되고 노조 건설은 탄압받는다. 물, 하수 시설, 전기가 거의 공급되지 않고 물과 땅을 오염시키는 산업 쓰레기 때문에 악취에 시달린다. 여성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성희롱에 시달리기 일쑤다. 임신한 여성은 해고된다. 일부 수출촉진지대, 특히 중남미와 대만과 필리핀에서 여성은 고용되기 전에 임신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여성 노동자들의 연령은 14∼25세 사이인데, 이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은 “너무 늙어서” 직장을 떠나야 한다.

저항

세계화가 빈곤을 없애고 부를 “흘러 넘치게 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약속은 거짓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러나 세계화가 여성들에게 끔찍한 결과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는 여성의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는 동시에 그러한 파괴에 맞설 수 있는 세력 또한 증가시키고 있다. 지난 20여 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세계적 발전은 거의 모든 곳에서 여성들을 경제 활동에 끌어들였다. 여성 노동자의 증가는 특히 신흥공업국에서 두드러진다. 이 곳에서 여성 노동자 수는 지난 20년 간 거의 갑절로 늘었다.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 수는 1980년 1천6백93만여 명에서 1997년 3천3백만여 명으로 늘어났고, 아일랜드에서는 1980년 34만6천 명에서 1999년 64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1980∼1999년에 필리핀에서는 6백7만 명에서 1천9백만 명으로 늘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5백22만여 명에서 8백30만 명(전체 노동인구의 40.9퍼센트)으로 늘었다. 선진국에서 여성 노동인구는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영국에서 여성 노동인구는 1995년 전체 노동인구의 49.5퍼센트를 차지했고 프랑스는 이미 1980년대 중반에 45퍼센트를 넘어섰다여성이 대거 노동 시장에 참여하게 된 결과, 많은 여성들이 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경제적 독립을 획득하게 됐다. 많은 농촌 여성들이 도시로 와 노동자가 됐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남편과 남자 친척에 의존해 온 여성들의 태도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여성은 독자적 목소리를 내게 됐고 무엇보다 온갖 고통을 낳는 비인간적인 체제에 맞설 힘을 갖게 됐다. 오늘날 여성은 단순한 체제의 희생자가 아니라 체제에 저항할 강력한 힘을 가진 노동계급의 일부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세계 자본주의가 가하는 가장 끔찍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다. 1998년에 IMF의 지원을 받은 독재자 수하르토를 타도한 혁명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인도네시아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원들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전투적이라고 말한다. ‘총체적 개혁을 위한 노동자 위원회’(COBAR)의 한 조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공장이 가장 전투적이다. 가장 활동적인 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회의에 참가한다. 각 작업장 대표는 대개 공장에서 가장 활동적인 노동자들인데, 흔히 여성이다. 대표는 항상 연설을 하는데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상관 없다.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여성이 차별받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이슈들 ― 불평등 임금, 사회 조건, 차별 지급되는 식량 수당, 성희롱 ― 도 제기하려고 노력한다.” 아시아, 카리브해 연안, 라틴 아메리카 등지의 수출 공단이나 자유무역지대에서 여성들은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노조를 결성하거나 집단 행동을 벌인다. 1996년 5월 29일 멕시코에서 대다수가 여성인 커스톰트림 회사 노동자들이 경영자와 어용노조에 맞서 파업했다. 그들은 “마킬라도라 정의를 위한 연합”에 속한 멕시코와 미국 단체들의 도움을 얻어 승리했다. 조직하기 어려운 비정규직에서도 조직에 성공한 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여성 청소부들이 노조를 만들었고 유럽에서는 가정부나 파출부들이 조직을 결성했다. 볼리비아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물 공급을 다국적 기업 벡텔로 사유화하려는 정부 계획을 좌절시켰다. 우리 나라 여성 노동자들의 전투성도 그 못지 않다. 1970~1980년대 초까지 노동 운동을 주도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1987년에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전국적 파업 물결을 일으켰다. 여성 노동자들은 1997년 1월 노동법 파업에서도 힘을 보여 줬다. 1997년 경제 불황 이후 정부와 기업주들의 강화된 공격에도 여성 노동자들의 저항은 계속됐다. 2000년 전국을 뜨겁게 달군 중요한 파업들 ― 7월 11일 금융 파업, 여름 내내 벌어진 사회보험노조와 호텔3사 노조의 파업, 12월 국민·주택 은행 파업 ― 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가장 적극적인 파업 참가자의 일부였다. 또, 캐디·보험설계사·방송구성작가·학습지교사 등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도 어려운 조건에서도 끈질기게 싸워 왔다. 오늘날 세계 여성 노동자들은 세계화가 낳는 온갖 고통과 야만 ― 가난, 환경 파괴, 군국주의와 전쟁 ― 에 맞설 진정한 세력으로 거듭 성장하고 있다.

국제 여성의 날 - 위대한 전통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은 독일의 사회주의자 클라라 체트킨이 1910년 국제 사회주의 대회에서 제안해 시작됐다.

● 3월 8일은 1908년 미국 뉴욕의 혹사 의류 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것을 기념해 선택됐다.

●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중심 요구 가운데 하나는 보통선거권이었는데, 1910년에도 여전히 논쟁거리였다.

● 가장 중요한 ‘국제 여성의 날’은 1917년 러시아에서 경축됐다. 1917년 3월 8일(러시아 구력으로는 2월 23일) 여성 노동자들이 벌인 시위는 2월 혁명을 촉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