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재건공산당 - 레바논 파병 지지는 치명적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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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러시턴, 파비오 루지에로, 안젤라 라나우다는 이탈리아 재건공산당 내 의견그룹 ‘비판적 좌파’의 회원들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중도좌파 정부가 집권한 이래로 이탈리아 좌파는 큰 위기에 직면했다. 주요 급진좌파 정당인 재건공산당(리폰다찌오네 꼬무니스따)은 현 정부에 참가하고 있다.
로마노 프로디가 총리를, 민주좌파당의 마시모 달레마가 외무장관을 맡고 있는 현 정부는 이탈리아군 3천 명을 유엔(UN)군의 일부로 레바논에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반전 운동 안에 심각하고 가장 큰 위기를 낳았다.
2003년 2월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 3백만 명을 동원했던 이탈리아 반전 운동은 지난주 토요일[9월 30일] 모든 전선에서의 이탈리아 군대 철수를 요구하는 로마 시위에 겨우 1천 명 남짓을 동원하는 수준으로 쇠퇴했다.
시위는 대개 소수를 대표하는 작은 단체들이 주도했다. 대형 노조의 지도자들은 소속 조합원들의 반발을 전혀 받지 않은 채 시위 참가를 거부할 수 있었다. 이는 재건공산당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와 집회가 많이 벌어졌지만, 이 시위들은 지역 수준에서 조직됐다.
또, 이 위기는 운동 내에서 운동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위
'평화원탁회의'Tavola della Pace)는 이탈리아 전역의 수많은 지자체와 가톨릭 반전 운동을 대표하는 단체다. 8월에 이 단체는 아시시에서 ‘UN으로 가자’(Forza ONU)고 적힌 배너를 들고 이탈리아군이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부로 레바논에 파병되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시위를 조직했다.
그러나 지난 며칠 동안 가톨릭 반전 운동 안에서 이 입장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고, 10월에도 똑같은 시위를 벌이려는 움직임은 취소됐다.
그리고 정부가 레바논 파병을 결정했을 때 그런 조치를 맹렬히 비판하는 성명이 발표됐다. 좌파 신부인 알렉스 차노텔리 같은 운동 내 저명 인사들이 이 성명에 서명했다.
차노텔리는 나폴리 등지에서 물 사유화에 반대하는 성공적인 운동에 참가해 왔다. 현재 이 성명을 조직한 사람들은 10월과 11월의 동원을 위해 반전 운동을 재조직하려 애쓰고 있다.
위기가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 곳은 아마도 재건공산당일 것이다. 이 단체는 지난 5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반전·반자본주의 시위들의 중추 구실을 해 왔다.
재건공산당은 [현 중도좌파] 정부에 참가한 뒤 급격히 우경화해 왔다. 재건공산당 리더인 파우스토 베르티노티는 하원의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신(新) 파시스트인 '국민동맹'의 청년단체 '아치오네 지오바네'Azione Giovane)의 총회에 공식 참가함으로써 당 안팎에 엄청난 논쟁과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제도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 총회에 참석했다고 둘러댔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스트 단체들이 인종차별적·정치적 동기에 따라 이주민과 극좌파들을 공격하는 일이 빈발했다. 따라서 베르티노티의 처신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재건공산당은 정부의 레바논 파병 결정에 기여해 왔다.
'비판적 좌파'로 조직된 재건공산당 내 좌파는 이 모든 사안들에 강력히 반대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이탈리아군의 임무에 대한 추가 예산 지원 문제를 둘러싼 7월 국회 표결을 앞두고, '비판적 좌파'에 소속돼 있거나 그와 가까운 상·하원 의원들이 반정부 진영을 대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높았다.
재건공산당 지도부의 입장은 당이 반대표를 던지길 원치 않으며 중도좌파의 주류 안에서 압력을 가하는 정도로 스스로 활동을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입장에 대한 비판이 심지어 당내 다수 의견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비판이 가장 고조됐을 때 비판 세력은 로마에서 열린 당대회에 6백 명의 저명한 활동가들을 결집시켰다. 외과의사이자 아프가니스탄 '긴급구호 NGO'의 지도적 인물인 지노 스트라다는 비판 운동을 지지하고 이탈리아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굴복
이 사안을 둘러싼 첫 투표에서 반대 진영의 상·하원 의원들은 파병 활동 예산 지원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재투표가 정부에 대한 신임 투표의 성격을 띠게 되자 반대파 의원들은 굴복하고 말았다.
그들은 이탈리아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정부의 위기를 기꺼이 초래할 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똑같은 문제가 레바논을 둘러싸고 되풀이됐다. '비판적 좌파'의 상·하원 의원들은 이 문제에 기권할 것이라고, 즉 의회에서 반대 성명을 낭독한 뒤 회의장에서 퇴장하겠지만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대표를 던지지 않는 핑계는 재건공산당 내부 관계들이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반대표는 당의 분열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 공장 노동자들에 기반을 둔 '비판적 좌파'의 주요 분파는 재건공산당의 분열 가능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가이자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의 작품 제목처럼,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운동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지만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레바논[파병]에 대한 우유부단한 반대 때문에, 나중에 다른 문제를 둘러싸고 분명한 반대 운동을 건설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재건공산당 내의 상황이 너무 나빠져서 조만간 분열이 불가피해진다면, 우리는 이를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이런 쟁점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 주말 벨라리아에서 열리는 '비판적 좌파'의 전국 세미나에서 우리는 운동이 직면한 문제들에 적절한 답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