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 명이 윤석열 체포 불발에 분노해 거리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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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즉시 체포되지 않는 것에 분노한 대중이 오늘 서울 도심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광화문과 한남동 곳곳에서 집회가 열렸고, 집회 인근 지하철역들은 참가자들로 붐볐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법과 질서”를 강요해 온 윤석열이 정작 자신의 체포영장 집행을 무력으로 거부하는 모습, 그것에 공수처와 경찰이 꼬리를 내리는 모습에 대한 분노가 거리에 넘쳤다.
어제(1월 3일) 낮 집회부터 시작해 24시간 넘게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한남동 집회 장소는 계속해서 사람이 불어났다. 인근 한강진역은 한때 무정차 통과를 해야 할 만큼 사람이 몰렸다. 이곳에선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윤석열에 대한 분노와 투지가 넘쳤다.
안국역에서 열린 촛불행동 집회에서는 윤석열 체포·구속 요구뿐 아니라 체포영장 집행을 포기한 공수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규탄이 표출됐다. 최상목에 대한 규탄과 탄핵 구호도 나왔다.
광화문 경복궁 앞에서도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 주최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체포 불발에 대한 불만을 많이 표출했다.
한편, 공수처의 윤석열 체포 포기로 기세가 오른 우익들도 광화문 사거리와 한남동에서 동시 집회를 열었다. 수만 명이 모였지만, 우익 집회는 윤석열 퇴진 집회보다 작았다. 전광훈은 광화문 집회 도중 한남동에서 민주노총에 밀리고 있다며 집회를 중단하고 한남동으로 이동하자고 선동했다.
하지만 한남동에서는 밤 늦게까지도 윤석열 체포를 바라는 사람들이 계속 불어났다. 도심 집회와 행진을 마친 사람들도 한남동 집회로 이동했다.
한남동 낮 집회
어제 민주노총 상근간부와 청년들이 윤석열 체포 포기에 항의 집회를 열고 밤샘 철야 농성을 한 한남동에는 아침부터 새로운 청년들이 속속 합류했다. 밤샘 자유 발언이 오전에도 계속 이어졌다.
12시에 대통령 관저 근처에서 집회를 하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은 집회를 불허하고 대열을 막아 섰다. 관저 앞으로 가려는 대열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2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체포가 이렇게 쉬운 일이었단 말인가. 집회 참가자들은 윤석열은 건드리지 못하면서 집회 참가자들을 연행한 경찰의 행태에 분개했다.
결국 대열은 다시 집회장으로 돌아와 집회를 이어 갔다. 그러는 사이 집회 대열은 계속 불어났다. 많은 시민들이 윤석열 체포를 위해, 또 민주노총 조합원을 연행한 경찰에 분개해 집회에 참가했다.
집회 대열이 2만 5000명으로 늘어나자 결국 경찰은 한남대로 전 차선을 집회 대열에 내줘야 했다.
촛불행동 집회
오후 2시에는 헌법재판소 인근인 안국역 앞 대로에서 촛불행동의 전국 집중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이 집회는 수천 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집회 중에 사람이 계속 늘어났다(주최 측 추산 1만 2000여 명). 앞서 1월 2일에 촛불행동은 앞으로 매주 토요일 집회를 전국 집중으로 열자고 회원과 지지자들에게 긴급 호소했다.
촛불행동 집회 사회자인 김지선 서울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집회의 포문을 열며 “내란 수괴 체포를 포기”한 공수처를 규탄했다.
“국민들은 계엄군을 목숨 걸고 막았는데 ... 공수처는 무섭다고 나왔습니다. 이 나라 공권력은 국민을 진압하는 데는 무자비하게 폭력을 저지르면서, 정작 국민을 학살하려고 한 내란 수괴를 잡을 때는 이렇게 무력하단 말입니까?”
김지선 공동대표는 윤석열 경호 관련자와 관저 안에 있던 윤상현, 체포 협조 지시를 거부한 최상목까지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에도 여러 발언자들이 공수처를 규탄하며 대열의 큰 호응을 얻었다. ‘윤석열·김건희 체포단’의 구산하 단장은 이렇게 연설했다.
“공수처는 광장의 내란 세력 기 살려 주러 갔습니까? 어제 한 번 더 확신했습니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윤석열 체포의 의지로 관저 앞에서 밤을 지샜습니다. 역시나 믿을 것은 우리 국민뿐입니다.”
인천에서 온 한 고등학생의 발언은 거리에 나온 새로운 세대의 경험을 잘 보여 줬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전 초등학생이었습니다. ...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이 우리를 지켜 주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고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던 가을에 저는 졸업을 앞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 경찰이 우리를 지켜 주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고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2월 3일 계엄령 선포 후 한 달이 넘어가는 오늘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저와 또래 학생들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나온 건 필연이고 숙명입니다. ... 본인의 이익과 권력을 챙기려 한 내란범들을 다시는 이 나라의 권력자로 행세하게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끝까지 투쟁합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故 이지한 씨의 부모님, 또 다른 희생자의 어머니 김희정 씨, 건설 노동자이자 촛불행동 회원이었던 양회동 열사의 아내도 촛불문화제에 함께했다.사회자가 그들을 소개하자 참가자들이 큰 박수를 보냈다.
민중 가수 최도은 씨는 ‘체포해’라는 새 곡을 무대에서 선보이며 대열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광화문으로 행진해 비상행동 집회에 합류했다. 일부는 ‘윤석열·김건희 체포단’과 함께 한남동으로 갔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추모 집회
오후 2시 경복궁역 인근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추모하는 사전 집회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부스를 차려 노란색, 보라색 리본과 팔찌를 나눠 줬다. 그 외에도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유가족,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 등 여러 참사의 유가족들이 참가해 대열 맨 앞을 채웠다.
“이번 참사의 진상을 잘 밝혀서 가해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그 재발 방지 효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것 그리고 윤석열 정권 일당을 하루빨리 몰아내 처벌하는 것이 제 새해 소망입니다.”(김미숙 씨)
“세월호·이태원 참사 세대”라 불리는 2030 청년이 많았다.
참가자들은 국화꽃을 들고 “추모의 벽”에 메시지를 붙였다.
그들이 끌어내리고자 하는 윤석열과 그의 내각은 대형 참사 등 문제투성이인 이 사회의 주된 책임자들이기도 하다.
4시 범시민대행진
비상행동이 주최한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이 오후 4시 광화문 동십자각 쪽에서 열렸다. 한남동 쪽으로 일부 대열이 분산됐음에도 많은 이들이 광장을 채웠다(주최 측 발표: 15만 명).
이 집회에서도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실패에 대한 규탄이 나왔다. 사회자는 수시로 동시간대에 진행되는 한남동 집회 상황을 전했다. 비상행동은 공식적으로 행진 후 이태원역에서 모여서 한남동으로 행진해 가자고 호소했다.
이날 기조 발언은 비상행동 공동대표인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맡아 윤석열의 친미·친일 외교를 규탄했다.
“윤석열은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친일 굴종 외교로 일관하다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며 강제 동원 제3자 변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에도 찬성해 줬습니다.
”이달의 독립운동 12건에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 등이 제외된 반면, 김활란과 김성수 같은 친일파들의 활동이 선정됐다고 합니다. 이 어찌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고공농성과 희망버스로 유명한 김진숙 씨도 연단에 올랐다.
“파업 한 번 했다고 470억 원을 가압류당한 거[제]통[영]고[성] 동지들, 3년째 싸우는 명동 세종호텔 동지들, 그리고 불탄 옥상에서 363일째 고공농성 중인 구미옵티컬 박정혜·소현수”등을 소개하며 지지와 관심을 호소했다.
한강진역 ‘윤석열·김건희 체포 시민행동의 날’
오후 4시 30분 윤석열·김건희 체포단, 국민주권당, 용산촛불행동 등은 관저 주변인 한강진역 2번 출구에서 ‘윤석열·김건희 체포 시민행동의 날’ 집회를 열었다. 헌재 앞 촛불행동 집회에 참가했던 일부가 이곳으로 왔다.
이곳으로부터 단 60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익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익들이 집회장 주변으로 계속 넘어와 도발하고 욕설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결코 지지 않고 대항했다. 사회자와 발언자가 마이크를 교체하는 잠깐의 공백 시간에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자발적으로 “윤석열 체포!”를 외쳤다. 집회를 방해하는 우익에게 “꺼져라!” 하고 외치기도 했다. 집회장이 혼잡해 손팻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한시도 우익의 일원처럼 보이지 않고 싶다는 듯 손팻말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청년촛불행동 회원인 27세 여성 김서현 씨는 울분을 터뜨리며 발언했다.
“여의도와 남태령, 안국과 한강진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끝내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남태령에서 농민과 시민이 승리했으며 한덕수도 탄핵됐지만 아직도 윤석열 정권은 국민을 외면하고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수처는 국민이 아닌 이들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상황은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윤석열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채수근 해병의 동료 정원철 씨도 무대에 올랐다.
”윤석열은 여전히 채 해병 죽음의 진상 규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러 갔는데 그의 죽음을 덮어버렸단 말입니다. 윤석열은 올바른 수사를 하려고 한 박정훈 대령을 항명 수괴로 몰았습니다. 진정한 항명 수괴는 국민에게 항명한 윤석열 아닙니까!
”저는 지난 2일 현충원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채수근 해병 생일이 1월 2일입니다. 거기서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2주기가 오기 전에 꼭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입니다.”
한남동 집회장으로 향하는 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이 시작되자 우익들에 대항해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방송차가 구호 선창을 잠깐 멈추고 노래를 틀 때조차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쉬지 않고 구호를 외쳤다. 행진을 본 수많은 거리 위 또는 건물 안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한남동 집회장에 도착하자 대열의 크기는 두 배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한남동 저녁 집회
오후 4시 광화문 집회를 마치고 한남동 관저 앞 집회에 합류하려는 사람들로 한강진역 앞이 붐볐다. 참가자 수만 명이 기세 있게 한강진역에서 한남대로로 행진해 들어왔다. 사회자가 이를 소개하자 관저 앞 각종 응원봉과 깃발, 팻말들이 물결을 쳤다.
참가자들은 윤석열이 체포되기 전까진 자리를 뜰 수 없다는 의지를 담아 힘껏 구호를 외쳤다. “윤석열을 체포하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한걸음에 관저 앞으로 달려 온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윤석열 체포·구속, 윤석열에 동조한 일당을 싹 몰아낼 때까지 민주노총이 앞장서 싸우겠다고 했다.
자유 발언에 나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관저에 “쥐새끼처럼 숨어서” “법 위에 서 있는” 윤석열을 끌어내자고 악에 받쳐 외쳤다.
한 참가자는 국가기관이 (운동을 겨냥해)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해 사람들의 비극을 이용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또한 여전히 석방되지 않고 있는 오늘 낮 민주노총 연행자들을 당장 석방할 것을 재차 요구했다.
오후 8시 40분경 사회자가 “이곳에 20만 명이 모였다”고 선언하자 대열은 환호의 함성을 터뜨렸다.
비상행동은 긴급 공지를 발표해 오늘 밤 관저 앞에서 1박 2일 철야 투쟁을 하고, 내일 5일 오후 2시에 윤석열 체포 긴급행동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철야를 이미 준비해 온 청년들이 많다. 돗자리를 깔고 이불을 두른 참가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윤석열이 체포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한남오거리부터 관저 앞 부근까지 한남대로 전 차선을 채운 채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오후 9시가 넘어서도 한강진역에는 집회장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