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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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점령 하에서 지금껏 65만 명이 넘는 이라크인들이 죽었다. 미군 사망자도 3천 명을 넘었다. 6월 하디타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은 점령이 왜 당장 종식돼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한편, 점령군의 ‘이간질시켜 각개격파하기’ 정책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을 더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점령에 맞선 이라크인들의 저항과 국제 반전 운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 점령 위기와 반전 운동 때문에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벼락을 맞았다.” 이라크 전쟁은 공화당의 패배에서 결정적 구실을 했다. 투표자의 56퍼센트가 미군의 완전 또는 부분 철군을 지지했다. 부시는 국방장관 럼스펠드를 해임해야만 했다.
7월 12일부터 34일 동안 지속된 전쟁은 이스라엘의 패배로 끝났다. 이 전쟁에서 레바논 민간인 1천2백여 명이 숨지고 4천여 명이 부상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민중의 전폭적 지지를 업고 전쟁 동안 무기력했던 친(親)서방 정부에 ‘거국 내각’ 구성을 요구했다.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헤즈볼라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두 차례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다.
미국의 침략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불안정하다. 오히려 ‘탈레반’의 세력 확장은 2만 명의 나토 점령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파타를 누르고 승리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스라엘과 서방 국가들은 대(對)팔레스타인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파타 같은 온건 세력을 이용해 팔레스타인 주민의 분열을 조장했다.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반제국주의·반신자유주의 바람은 더 거세지고 있다. 비록 7월 멕시코 대선에서 우익들의 선거 부정으로 중도좌파 정당인 민주혁명당(PRD)이 패배했지만 이것은 멕시코 사회의 급진화를 불렀고, 11월 니카라과·에콰도르 대선과 12월 베네수엘라 대선에서는 좌파 후보들이 승리했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62퍼센트 가까운 높은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이라크 점령 실패가 주류 정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분위기에서 주류 정당들이 의회에서 끔찍한 이민 규제법을 통과시키려 하자 수많은 라틴계 이민자들이 이민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 AFL-CIO(미국 노총)도 동참한 이 운동을 두고 사람들은 “1960년대 공민권 운동이 되살아난 듯하다”고 말했다.
결국, 불완전하지만 이민 규제법의 가장 끔찍한 조항은 삭제됐다. 그럼에도 우파들은 이민자들을 계속 속죄양 삼으려 하고, 이에 맞선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3월에 시작된 최초고용법(CPE) 반대 투쟁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전 세계 학생과 노동자 들을 엄청나게 고무했다. 하루 최대 3백만 명의 학생과 노동자 들이 점거·동맹휴업·파업 등을 벌이며 저항했고, 결국 프랑스 정부는 CPE를 철회하며 2005년 유럽헌법 국민투표 부결에 이어 또다시 패배를 맛봐야 했다.
‘테러와의 전쟁’과 신자유주의 ‘개혁’이 저항에 부딪히자 서방 지배자들은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며 곤경에서 벗어나려 한다. 2월에 덴마크 우익 신문은 무슬림에 대한 인종차별적 만평을 실었고, 9월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슬람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그러나 영국의 반전 운동은 지배자들의 인종차별 공격에 맞서 무슬림과 비무슬림이 단결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1월과 4월에 네팔의 왕정 독재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벌어졌다. 몇 주 동안 계속된 총파업과 가두시위 끝에 국왕은 굴복했고, 마오주의 게릴라들은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하려 하고 있다.
국내
황우석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했다는 주장이 논문 조작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황우석의 파산은 이윤에 눈먼 자본과 주류 정치인들이 과학기술 정책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보여 줬다.
살인적 등록금 인상과 신자유주의적 대학 운영에 항의해 올해도 많은 학생들이 저항에 나섰고, 대학 당국들은 학생들에게 징계 칼날을 휘둘렀다. 학적까지 영구히 삭제하는 초유의 ‘출교’ 조처로 고려대생 7명이 학교에서 쫓겨났고, 외대·동덕여대·항공대 등에서도 징계가 이어졌다. 그러나 부당 징계에 맞선 투쟁은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은 중장기적으로 동아시아를 위험천만한 전쟁터로 만들려는 미국 제국주의의 의도와 연관돼 있다. 노무현 정부는 1만 3천 명의 군대와 경찰, 용역깡패를 투입해 평택 주민들과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강제로 쫓아냈다. 그러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맞선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
5·31 지방선거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노무현과 열우당의 처지를 드러냈다. 노무현과 열우당을 향한 환멸감 때문에 한나라당이 반사이익을 봤다. 그러나 지방선거의 높은 기권율과 10월 재보선에서 두드러진 무소속 후보의 약진은 대중이 우경화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좌파적 대안을 건설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사이비 개혁 세력일 뿐 아니라 부패·비리 집단임도 거듭 밝혀졌다. 청와대는 투기 자본, 로펌과 한통속이 돼 62조 원짜리 국책 은행을 “먹튀” 자본 론스타에 헐값 매각했다. “바다 이야기” 스캔들은 ‘전 국토의 도박장화’ 정책과 여기에 올라탄 노무현 조카와 명계남의 합작품이었다. 최근에는 다단계 회사 ‘제이유’와 검·경찰, 청와대 비서관의 부패 고리가 드러나기도 했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초래한 북핵 사태는 동북아시아가 중장기적으로 전쟁의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 줬다. 따라서 좌파는 제국주의적 대북 압박에 우선 반대하며 핵실험을 비판해야 했다. 이라크 수렁에 빠진 미국은 제재 강화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을 통한 대북 압박을 지속하며 시간 끌기식 대화를 병행하고 있다.
집값 폭등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절망과 허탈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노무현 정부는 시장 논리에 도전하지 않는 ‘공급 정책’으로 도리어 투기를 부추겼다. 그 결과, 집값이 1주일 새에 1억 원 넘게 오르는 등 16년 7개월 만에 최고 인상률을 기록했다. 시장 논리를 거스르는 대안이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겠다”던 노무현 정권은 오히려 우익들과 함께 공안 탄압을 강화했다. 법원은 강정구 교수의 한국전쟁 관련 발언을 유죄 판결했고, 북한 핵실험 이후 우익들은 ‘일심회’ 사건을 빌미로 민주노동당을 ‘간첩당’으로 몰며 마녀사냥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공안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포항 건설 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 투쟁은 승리하지 못했지만, KTX여승무원이나 하이닉스 매그나칩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됐다. 덤프·화물연대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 자동차 4사 노동자들의 파업, 공무원과 전교조의 투쟁도 벌어졌다.
이런 노동자 투쟁을 무자비하게 짓밟던 노무현 정부는 결국 하중근 열사를 살해했다. 또, 노무현은 열우당·한나라당의 도움으로 비정규직 개악안·노사관계로드맵 등 노동법 개악을 강행했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배신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노사정 협상 연연·생색내기 파업 등은 개악에 무기력하기만 했다. 그러나 개악 노동법의 현장 적용을 둘러싼 투쟁의 성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물·전기·가스 등의 공공재와 의료·교육을 모두 상품화하고 양극화를 더욱 부추길 한미FTA에 맞선 운동이 거대하게 벌어졌다. 7월 서울에서 5만 명이 참가한 시위를 시작으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협상 때마다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광우병 의심 수입 쇠고기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FTA 반대 여론은 더욱 확대됐다. 한미FTA의 연내 타결은 물 건너갔고, 결렬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3·19 국제 반전 행동을 비롯해, 파병과 전쟁에 반대하는 집회가 1년 동안 꾸준히 열렸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부시가 패배한 것은 한국의 반전 운동을 더욱 고무했고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철군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시와 전쟁광들은 위기 탈출을 위해 더 끔찍하고 야만적인 짓도 저지를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아무 명분도 없는 자이툰 파병을 연장하고 심지어 레바논 파병까지 강행하려 한다. 반전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