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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자유주의 비판

이 기사와 함께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덕의 상실》의 매킨타이어 사망 —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에서 가톨릭으로’를 보시오.


윤석열의 (친위) 군사 쿠데타 미수의 여파 속에서 정치적 지형이 극우적 국힘 대 자유주의적 민주당으로 양극화되면서 사회운동이 좌파적이기보다는 자유주의에 좀 더 가까워졌다. 헌정주의, 법치주의, 시장 경제 등이 과도하게 존중받고 있고, 이러한 이념들의 전제가 되는 개인주의와 상대주의가 더한층 고무되고 당연시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자유주의는 한편으로 차별에 날카롭게 반대하는 급진(“찐”) 좌파로부터, 다른 한편으로 평등주의를 반대하는 극우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사실 자유주의는 프랑스 혁명 이후로 줄곧 이런 양극화에 시달려 왔다. 전형적 자유주의자들은 바로 이 두 ‘극단’으로부터 자유주의를 구하는 것에 큰 관심을 두어 왔다.

그러나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오늘날의 글로벌 위기 상황에 비춰 볼 때, 또 민주당 정부를 사반세기 남짓 동안에만도 세 차례 경험한 것에 비춰 볼 때, 자유주의가 성공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우리는 자유주의를 여전히 붙들고 있어야 할까?

자유주의에 내재된 도덕적 난점을 파헤친 윤리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1929~2025)

지난주 본지는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윤리학자(도덕철학자) 알래스데어(앨러스터) 매킨타이어의 사망을 계기로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내놓은 논평을 실었다. 매킨타이어는 오늘날 우리가 자유주의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유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개인주의는 개인 자율성을 사회의 제반 권위 일체의 위에 있는 것으로 격상시키는 (니힐리즘)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개인주의는 객관성에 호소하는 것을 주관적 의지의 표현으로 보고, (니체처럼) 도덕을 주관주의로 환원함으로써 쉽게 상대주의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상대주의는 객관적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므로(포스트 트루스), 상대주의가 사회에 만연하면 다툼과 갈등을 다루기가 아주 힘들어진다. 또한 가치관의 공유를 방해해 윤리 체계와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믿음만을 타당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게 된다. 결국 도덕은 개인적 선호의 문제가 돼 버려 사실상 도덕적 마비 상태와 무관심이 팽배해진다.

이런 도덕적 난점을 비판할 자원을 매킨타이어는 (특히 니체에 반대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찾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매킨타이어가 1960년대 말에 혁명적 좌파 운동을 떠난 지 몇 년 뒤에 새로 발견한 빛이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발견했고, 결국 1980년대에는 가톨릭 신앙으로 옮겨 갔다. 한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였던 그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특히 인간의 자유 문제를 놓고 매킨타이어는 마르크스주의가 덕과 성품, 공동체를 강조하지 않고 대신에 경제적·사회적 해방을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그 대신에 모종의 모호한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했다.

그럼에도 매킨타이어는 자본주의가 그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을 탐욕스럽게 만들며 정신적으로 쇠락케 하고, 효과와 유용성을 고무하는 공리주의 경향을 고취시킨다고 옳게 비판했다. 반면 친자본주의 윤리학자들은 창의성과 자기 규율 등이 자본주의가 고취시키는 가치라며,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쾌락의 유혹에 저항하고 가치 있고 장기적인 보상을 얻기를 바라라고 훈계한다. 이런 윤리학 전통은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데이비드 흄과 몽테스키외 등의 계몽주의 철학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킨타이어는 또한 사회민주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특히, 정치적·도덕적 상상력 부족이라는 결함 때문에 사회민주주의는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회민주주의가 노동계급에게 만족과 번영을 제공하겠다는 선의를 갖고 있음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인간을 정신적으로 쇠락케 하는 자본주의적 가치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사회민주주의보다 길드나 수공업자 협회, 지역별 조합, 어촌 등을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고 매킨타이어는 주장했다.

내 보기로 이것이 매킨타이어가 친화성을 느낀 가장 특징적인 전통적 가톨릭 사상이다. 특히, 그는 6세기 전반부에 활동한 가톨릭 수도원 운동가 노르차(이탈리아의 마을)의 베네딕투스를 본보기로 내세웠다.

베네딕투스는 수도원장에 대한 한결같고 엄격한 순종을 강조했는데, 이런 규칙(“베네딕투스 규칙”이라고 함)은 개인의 자주성과 비판적 사고를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쇠락케 한다고 비판한 매킨타이어가 개인의 자주성과 비판적 사고를 억제하는 절대적 순종을 강조한 수도승을 찬양·고무한 것은 얄궂다.

매킨타이어가 이처럼 전통적 가톨릭 사상에 거의 젖어 들다시피 했음에도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가령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출신들인 폴 블랙레지나 고故 닐 데이비슨 같은)은 매킨타이어 식의 마르크스주의를 지나치게 미화했다. 사실 매킨타이어는 역사유물론을 적용하지 않아, 마르크스주의를 사회 정의 이론과 거의 등치시켰다.

그러나 요즘처럼 좌파 사상이 자유주의 사상 속으로 용해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매킨타이어의 사상은 자유주의의 근본적 약점을 꿰뚫어 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그 대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나아가려면, 매킨타이어가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자신의 철학에 실제로 적용하지는 않은 노동가치론의 혁명적 함의를 인정해야 한다. 노동가치론 또는 잉여가치론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제거하는 근본적 사회 변혁을 요구하는데, 자본주의 시스템은 세계적이므로 매킨타이어의 비전인 소규모 지역 단위 윤리적 실천 공동체가 아닌 국제적 노동자 공화국이 그 대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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