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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7 국제공동반전행동:
반전 운동의 통쾌한 정치적 승리

3·17 반전 시위는 대성공이었다. 이날 한국 반전 운동은 노무현 정부의 집회·행진 불허 방침에 단호히 맞서 싸웠고, 결국 통쾌한 정치적 승리를 쟁취했다.

애초 정부는 3·17 시위를 불허하려 했고, 이는 지난해부터 계속된 민주적·시민적 권리 공격의 연장선 상에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한미FTA 반대 총궐기 이후 거의 모든 도심 행진을 불허했고, 특히 지난 3월 10일에는 한미FTA 반대 집회 참가자들뿐 아니라 기자들에게까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각종 집회들이 연이어 불허 통보를 받는 등 정부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불복종 선언은, 올해 상반기 정세를 가를 주요 고비에서 반전 운동이 전체 운동의 선두에 선다는 뜻이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대응이 옳았음은 곧 분명해졌다. 가장 광범한 지지를 받는 국제적 운동으로서 반전 운동은 정부의 공격에 맞서 전체 운동의 이익 ― 집회와 행진의 자유 ― 을 방어하는 데도 매우 큰 정치적 이점이 있었다.

정부의 ‘막가파 식’ 민주주의 억압에 대한 분노가 켜켜이 쌓인 상황에서 반전 운동 측의 단호하고 정치적인 대응은 정부의 공격에 맞선 저항에 초점을 제공하며 신속히 지지를 확대할 수 있었다. 15일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위한 선언’에 참가한 3백26명의 각계 인사들은 정부의 파병 정책을 규탄하며 3·17 집회 허가를 촉구했다. 주요 언론들도 정부의 시위 불허 조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제적 연대와 압력이 조직된 것이 주효했다. 영국 전쟁저지연합과 리스펙트 소속 의원 조지 갤러웨이, 캐나다 반전연합체 ‘평화동맹’ 등이 청와대에 항의 서한을 보냈고, 스웨덴 좌파당 소속 국회의원 등 많은 해외 지식인·정치인·활동가들이 한국 정부의 시위 불허 방침에 항의하는 국제 서명 운동에 참가했다.

뉴질랜드 반전단체인 ‘주민행동운동’은 아예 한국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한국 영사에게 직접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나중에 경찰은 “국제적으로 이미 공지된 집회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혀, 파병반대국민행동이 조직한 국제 연대와 압력이 정부를 물러서게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음을 시인했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정부가 국민행동이 다시 제출한 집회 신고서(전에 정부가 불허한 것과 똑같은 내용)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처럼 국내외의 광범한 항의 때문이었다.

시위 당일 경찰은 2천 명의 전경과 50여 대의 전경버스를 동원했지만 결국 광범한 지지를 받는 사기 높은 시위대의 행진 시도를 막지 못했다. 반전 운동이 정부의 반민주적 시도에 통쾌하게 제동을 건 것이다.

행진

앞서 지적했듯이 정부의 탄압을 뚫고 치러진 매우 활력 있고 정치적인 집회였다는 점에서 이번 3·17 시위는 분명 상반기 정세의 물꼬를 트는 구실을 했다. 예컨대, 이번 집회와 시위의 성공 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도 오는 3월 25일 집회 강행 의지를 다지며 정치적 투쟁을 벌일 준비를 갖추고 있다. 반전 운동이 다른 운동에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모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날 시위의 중요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이날 시위는 여러 점에서 2003년 초 이라크 전쟁 개전을 전후해 벌어진 시위들을 연상시키는 특징들이 눈에 띄었다.

우선, 시위대의 사회적·정치적 구성이 다양하고 광범했다. 다양한 정치단체, 지역의 기층 민중 단체, 대학과 지역의 반전 그룹들이 집회에 참가했고, 소규모 정치 서클들을 포함해 한동안 모습을 보기 어려웠던 단체들도 꽤 눈에 띄었다. 동아리 깃발을 들고 나온 대학생과 청소년들도 적지 않았다.

또, 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손수 만든 다양한 팻말과 선전물들을 들고 시위에 참가했는데, 이는 집회 참가자들의 진지함과 열의를 보여 주는 징표라 할 수 있다. 진지함에서 비롯한 이 자발성은 2003년 당시 반전 운동의 주요 특징이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참가가 두드러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학생·청년·청소년 참가자들은 시위의 가장 큰 대열이었을 뿐 아니라 시위대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성공회대에서는 성공회대반전모임이 조직한 1백30여 명 등 무려 1백60여 명이 참가했는데, 이는 성공회대 학생 전체(약 2천 명)의 거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고려대 네트워크’에서는 60여 명이 참가했다.

각 대학 반전모임이 성공적으로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활동가들의 사기가 회복되고 있는 데다, 많은 학생들이 반전 운동에 새로 참가할 태세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대학 반전모임들의 대열 중 상당수가 신입생들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청년층의 가세 덕분에 지난해 열린 반전 시위들에서는 대체로 좌파 민족주의 경향 단체들과 ‘다함께’ 같은 조직 좌파들이 대열의 다수를 차지했던 반면 이번 3·17 시위는 새로이 반전 시위에 가세한 급진적·좌파적 청년들의 참가와 존재감이 더 두드러졌다.

이러한 여러 특징들은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 이라크 위기 심화와 미군 ‘증파’, 이란 공격 위협, 윤장호 하사의 죽음 등이 새로운 급진화 ―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 ― 를 낳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고, 따라서 좌파가 운동을 확대할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음을 보여 준다.

기회

나아가 이번 시위에서 청년들이 보여 준 열의는 반전 운동뿐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가 이들의 반전 정서를 진지하게 여길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오늘날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과 위기 의식은 새로운 청년층의 급진화를 이끌고 있는 핵심 축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이 주류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급진화하는 청년들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주류 정당(과 그 후신 및 변종)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와 더불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파병 정책 반대’를 주장과 실천 모두에서 더욱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훈은 진보진영 대선 후보 단일화 논의에도 적용돼야 한다.

이번 3·17 시위로 올해 한국 반전 운동은 매우 훌륭한 첫발을 내딛었다. 부시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증파하고 이란 공격을 꾀하는 듯한 상황에서 3·17 반전 행동의 성공은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시위에서 언뜻 드러난 가능성을 운동의 실제 확대로 연결하기 위해 계속 분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