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의 이중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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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의 이중 잣대
임미정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30년 동안 1백30명의 소년을 성추행한 존 J 가이간 사제를 폭로했다. 이를 계기로 그 동안 은폐돼 온 가톨릭 교회 내 아동 성추행 사건이 드러났다. 미국에서만 현재 2천여 명의 사제가 성추행 혐의로 고발됐다.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자 바티칸 교황청은 4월 24일 회의를 소집해 미성년자를 추행한 사제를 해직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교황청은 “악명 높은 사제가 성추행한 경우와 미성년자들에게 연속·착취적으로 성적 학대를 자행한 경우”만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초범이거나 ‘악명 높지 않은’ 사제는 징계 대상에서 제외됐다.
교황은 “우리는 죄악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그리스도적 귀의의 힘을 잊을 수 없다” 하고 말했다.
교황청이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에 관대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 코네티컷 주 브리짓포트 교구의 브레트 신부는 14세 소년 마티넬리를 성추행해 처벌받았다. 그러나 교황청은 브레트 신부를 파면하지 않았다. 미국 최고위 성직자인 뉴욕의 추기경이자 대주교인 이건 신부는 30여 년에 걸친 브레트 신부의 성추행 사실에도 “브레트 신부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사제직 유지를 용인했다.
교황청은 사제들의 성추행 사건에는 이처럼 관대하면서도 가족 유지와 관련된 쟁점들인 동성애·낙태·이혼에는 “불관용 정책”을 적용한다.
지난 3월 교황청은 폴란드 대주교 파에츠가 젊은 성직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를 들어 사임 압력을 넣었다. 파에츠 대주교는 신부직을 버려야 했다. 또, 교황청은 35쌍의 동성애 부부 결혼식에 주례를 섰다는 이유로 이탈리아의 바르베로 신부를 파면했다.
1995년에 바티칸은 에이즈 예방을 위해 콘돔 사용을 권장하고 동성애자를 옹호한 프랑스 신부 자크 가요에게 파면에 가까운 중징계를 내렸다. 가요 신부가 이민자들을 공격하는 프랑스 정부의 이민법을 정면으로 공격한 것도 커다란 이유였다.
이탈리아 동성애자 인권 단체인 ‘아르치가이’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 범죄는 아무리 중해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반면, 동성끼리 안정적으로 책임 있게 사랑하는 행위는 교황의 무자비한 저주를 받게 된다”며 교황청의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 로마 교황청의 위선과 악행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은 페니 러녹스, 《로마 교황청과 국제 정치》(한국신학연구소, 1996년)를 보라.
자살 사이트가 자살을 낳는가
조박은정
지금 인터넷에서는 자살 사이트를 찾기 어렵다. 경찰이 자살 사이트를 폐쇄 조치했기 때문이다.
기성 언론은 자살 사이트가 자살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도한다. 그러나, 자살 사이트가 자살을 낳는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경찰이 ‘인터넷 범죄 수사센터’를 설치해 자살 사이트들을 폐쇄하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자살은 줄어들지 않았다.
최근 몇 건의 자살 사건은 자살 사이트가 아니라 안티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4월 19일 아파트에서 서로 껴안은 채 투신 자살한 30대 남자 1명과 10대 여고생 2명, 5월 5일 승용차 안에서 자동차 배기 가스를 틀어 놓아 죽은 남자 3명, 지난 2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한 남녀 3명은 각각 안티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자살 사이트가 자살을 부르는 게 아니다. 자살 사이트는 자살 희망자들이 이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자살 사이트는 자살 희망자들을 만들어 내는 사회의 반영이자 결과물이다.
자살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연령별 사망 원인 가운데 2∼3위를 차지한다. 심지어 12세 이하의 아동이 자살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많은 자살 연구자들은 자살자는 극도의 절망·분노·소외·비참한 심정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심리는 우리 사회의 억압적 교육 제도·실업·빈곤·경쟁·성적 억압 등의 문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얼마 전 아파트에서 투신한 30대 남자와 여고생 두 명과 함께 자살하려다 포기한 사람은 30대 남자는 처남에게서 용돈을 빌릴 만큼 경제적 파산 상태였고 나머지 두 여고생도 고민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자동차 안에서 질식사한 세 명과 동반 자살하려다 마음을 바꾼 사람 얘기도 비슷하다. 자살한 사람들은 우울증과 카드 빚에 시달리거나 어릴 적에 받은 학대 때문에 자살을 생각했다.
199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 청소년의 고민 중 학업에 대한 고민의 비중이 1984년에 47퍼센트에서 1994년에는 64퍼센트로 계속 늘었다. 최근 중고등학생의 31퍼센트가 우울증 등 정신 장애를 겪는다는 보고가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입시 실패는 ‘인생 실패’로 간주된다. 상당수 청소년들이 특히 대학 입시 때나 학교 시험 기간에 자살한다.
실업률과 자살률은 비례한다. 1982년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1퍼센트 증가할 때마다 1백 명의 자살자가 생긴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카드 빚 갚지 못해 모녀 동반 자살”, “생활고 비관해” 같은 신문 기사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나라에서 IMF 이후 자살이 급격히 늘었다. IMF 경제 공황기였던 1998년에 자살이 10만 명당 19.9명으로 급증했다. 그 전 해에는 10만 명당 14.1명이었다. 프랑스에서도 실업이 급증한 1993년 3월부터 1994년 3월까지 15∼24세 젊은이들의 자살이 급증했다. 경찰의 자살 사이트 단속은 전형적인 마녀사냥이다. 사람들을 자살로 내모는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 위한 희생양 찾기다. 경찰은 자살 사이트 단속을 빌미로 인터넷 사이트 검열과 폐쇄 등 표현의 자유를 공격하고 있다.
자살 충동을 낳는 사회 문제들을 그대로 둔 채 자살 사이트만 폐쇄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제형사재판소를 무력화하려는 미국
한상원
국제형사재판소가 66개 국가가 비준해 7월 1일부터 출범하게 됐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대량 학살·전쟁 범죄·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기구로, 내년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 상설 법정이 세워질 예정이다.
그러나 국제형사재판소는 미국의 불참 선언으로 유명무실해질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온갖 범죄와 대량 학살을 가장 많이 저지른 게 바로 미국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모두 예외 없이 전범들이다. 해리 트루먼은 1945년 대통령이 되자마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 폭탄을 투하했다. 폭탄 투하 직후 사망한 사람만 20만 명이 넘었다. 그는 또 한국전쟁에서 4백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했다. 1963년 북베트남을 침공한 린든 존슨에 이어 대통령이 된 리처드 닉슨은 9년 동안 2백만 명이 넘는 베트남 민중을 학살했다. 로널드 레이건은 1985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 또, 민주적으로 선출된 산디니스타 니카라과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니카라과를 침공했다. 클린턴은 1998년 8월 20일 수단을 폭격해 수단 의약품의 50퍼센트를 공급하는 알시파 의약품 공장을 박살내 버렸다. 터키가 쿠르드족을 진압할 때 쓴 무기의 80퍼센트를 공급했던 클린턴은 1999년에 78일 동안 세르비아를 폭격했다.
부시 일가는 대를 이어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아버지 부시는 1989년 파나마를 침공했고 1991년에는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다. 아들 부시는 지난해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융단 폭격해 4천 명 이상을 학살했고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 단체들이 국제 법정에 가장 세우고 싶어하는 인물은 헨리 키신저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확대하도록 주도했다. 키신저는 1973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칠레 아옌데 정부를 전복하고 10만 명을 학살한 피노체트 쿠데타를 후원했다. 또, 1975년 인도네시아 독재자 수하르토가 동티모르를 침공하는 데 무기와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으로 전체 인구 70만 명 가운데 15만 명이 학살됐다.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에 불참을 선언한 것은 바로 이러한 추악한 역사 때문이다. 그 동안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 출범에 계속 반대해 왔다.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 창설안을 담은 로마 조약 채택안 표결 때 반대표를 던진 7개 나라 가운데 하나가 미국이었다. 클린턴은 조약 서명을 계속 미루다 임기 말인 2000년 12월 31일에서야 서명했다. 그 뒤 미국은 “미국에게 악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며 조약 비준을 거부해 왔다. 미국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국제 법정에 전범으로 서게 될까 봐 두려워 조약 비준을 거부한다. 미국은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독재자를 세운 단일 전범 재판(예를 들어 밀로셰비치 전범 재판)이 필요할 뿐, 잘못하면 자신들도 걸려들 수 있는 상설 전범 재판소는 거부한다. 미국은 자신들이 전쟁을 벌이는 데 방해되는 어떤 장애물도 단호히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보여 주었듯이 대중적 반전 운동은 미국을 패퇴시킬 수 있다. 강력한 반전·반미 운동만이 국제형사재판소를 무력화하려는 미국에 맞설 진정한 힘이다.
또 한 번의 격변을 예고하는 아르헨티나
승영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두알데 정권이 들어서고 오히려 악화했다. IMF 총재 쾰러조차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에 대한 묘책은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IMF는 긴축 재정을 강요하며 민중을 더욱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두알데는 IMF의 요구에 계속 굴복하려 한다.
전 인구의 49퍼센트가 빈곤층이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일부 지역에서는 70∼80퍼센트의 사람들이 빈곤층이다. 실업률은 최고 23퍼센트를 기록했고 물가 상승률은 30퍼센트에 육박한다. 페소화 평가 절하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예금은 이미 40퍼센트가 사라졌고 최대 70∼80퍼센트까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병원이 사실상 문을 닫았다. 의약품도 부족하고 직원들이 봉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사들도 몇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해 수많은 학교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어린이들도 경제 공황이 가하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3월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역에서만 15만 명의 어린이들이 학교를 그만뒀다. 많은 어린이들이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맥도날드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사유화와 공공 지출 삭감 같은 IMF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아르헨티나 경제를 이 지경으로 몰아갔다. 그런데도 IMF는 아르헨티나 정부에 더 가혹한 요구를 하고 있다. 실업률이 23퍼센트나 되는데도 34만 8천 명의 공공 부문 노동자들을 더 해고하라고 요구한다. 또, 공공 지출을 1조 4천3백억 원 삭감하라고 요구한다.
IMF는 올 봄 정기 회의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협력”을 얘기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 대한 태도는 그 말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보여 준다. IMF는 아르헨티나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하고는 빨리 이자부터 갚으라고 요구했다.
현대의 샤일록인 조지 소로스는 “채권자의 유일한 안전 장치는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채무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고통을 줄이는 것에 반대한다.” 하고 말했다.
샌드위치두알데는 1월 초에 집권한 이후 계속되는 경제 위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 장관이었던 호르헤 레메스는 일명 “보너스 계획”을 추진하려 했다. 그것은 예금을 5년 또는 10년 만기 채권으로 지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사실상 2백90억 달러를 몰수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평범한 사람의 예금을 빼앗아 경제 공황에서 탈출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의회는 민중의 저항이 두려워 이 법안을 부결시켰다. 레메스는 법안이 부결된 데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했다. 다음 날 내각이 총 사퇴했다.
지금 두알데는 IMF의 신자유주의 요구와 민중의 저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그는 언제 전임 대통령들처럼 물러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있다. 어떤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은 “두알데가 오래 집권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고 말했다. 작년 12월에 시작된 민중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 하루 평균 19건의 집회가 열렸다. 아르헨티나는 점점 더 통치 불능 상태가 돼 가고 있다. 배가 고파 거리로 뛰쳐나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식료품 가격이 엄청나게 치솟았다. 사람들은 돈을 찾을 수도 없다. 가게에서는 신용카드나 외상 거래를 받아 주지 않는다. 그 때문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차코, 코르도바 등지에서 수백 명이 수퍼마켓을 에워싸고 식료품을 요구하는 사태가 재연되고 있다. 바로 이런 사태가 작년 12월 민중 봉기의 신호탄이었다.
리오 네그로에서는 체불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수천 명의 교사와 공무원이 경찰과 충돌했다. 산 후안에서도 공무원들이 최루탄과 고무총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과 격렬하게 싸웠다. 사람들은 스스로 대중의회를 만들어 민중을 위한 정책을 토론한다. 몇몇 대중의회는 지방세를 지역 병원과 의료 시설에 돌리고 공장 폐쇄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신자유주의와 두알데에 반대하는 저항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