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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강연회:
한국 사회의 대안 ― 사회적 대타협인가 참여계획경제인가?

〈프레시안〉이 주최한 장하준 초청 강연회장을 약 2백여 명이 가득 채웠다. 비록 ‘왕’회장 이건희와 이재용 간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반복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을 초청한 것은 ‘미스 캐스팅’이었지만, 저명한 제도주의 경제학자 장하준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정성진 사이의 논쟁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둘은 모두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지만 대안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장하준은 한국 사회의 당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명료하게 설명했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기업 경영권이 불안해지고 주주들 배당요구가 늘었다. 그래서 투자가 없고 기업들이 단기 이윤 획득에 주력하면서 비정규직 비율이 늘었다.”

장하준은 “민주화 후 사회는 왜 더 불평등해졌는가?” 하고 물은 후 이른바 ‘진보 정부’가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주주자본주의 강화를 동일한 것으로 여겨 경제민주주의가 무시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진영 일부가 주주자본주의를 지지한 것도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재벌과 진보진영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사회분열이 심각해졌다고 주장했다. “자본가들은 경영권 방어장치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며 농민들이나 노조를 시장원리를 해치는 집단으로 비난한다. 노동자와 농민 등 국민들은 자기 생계에서는 보호무역과 정부 규제 지속을 원하면서 금융자본가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재벌들을 압박할 때는 박수를 보낸다.”

장하준은 이런 문제들을 극복할 대안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제시한다. 이것은 “재벌들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고 그 대가로 국민들이 더 적극적인 투자, 고용창출, 노사관계에 대한 전향적 접근, 그리고 복지국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하준은 한국 노동조합 운동이 조직률이 낮고 ‘이미지’가 안 좋기 때문에 대타협을 주도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가 대타협을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나라의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폐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고쳐서 최대한 다수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윤율

패널 토론자인 정성진은 장하준의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주장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장하준은 재벌을 주주자본주의의 희생양으로 본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부터 재벌들이 시장주의 이데올로기 도입을 선도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들을 공격해 이윤율을 회복하려는 재벌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의 산업 자본 지배도 과장됐다. 제조업 부채 비율이 줄면서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으로부터 독립하게 됐다. 최근 금산법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재벌 산업 자본이 금융 자본을 먹어치우려 한다.”

정성진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율이 낮아 보이는 것도 1990년대 과잉투자기와 비교했기 때문이며, 최근 투자율은 박정희 때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내수 축소의 원인은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한국 자본의 노동자 공격 전략이다. 즉, “노동자 임금 하락으로 내수 기반이 붕괴하면서 중소자본이 약화되고 투자가 양극화됐기 때문”이다.

정성진은 장하준의 대안을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와 국가 주도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정의하고, “삼성은 주주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이해당사자들을 존중하겠는가. 더구나 노조를 배제하고 이해당사자를 말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그는 결국 재벌에게 양보를 얻으려면 투쟁이 필요하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예를 보더라도 타협은 계급투쟁의 고양 덕분에 가능했다”고 핵심을 짚었다.

마지막으로 정성진은 경제 민주주의를 화두로 한국 사회가 나갈 진정한 대안을 제시한다. “경제 민주주의는 작업장 민주주의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가 핵심이다. 거시경제 결정에 보통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경제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자본주의를 뛰어 넘어 참여계획경제를 건설해야 한다.”

장하준은 반신자유주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이 날 장하준의 강연은 주로 재벌과 대타협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동안 그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 논리 비판에 초점을 맞춰왔다.(《사다리 걷어차기》, 《국가의 역할》) 그는 제도경제학의 논리와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인용해 신자유주의자들의 금과옥조인 자유무역·지적재산권 강화·사유화·자본자유화 등의 폐해를 비판하고 허구를 파헤친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반신자유주의 활동의 주체 문제이다. 장하준은 반신자유주의 주체로 “깨우친” 국가 관료를 상정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개발국가 되찾기(Reclaiming the Development State)》같은 책은 아예 제3세계 국가 관료들을 위한 가이드북으로 기획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가 관료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하는 중요한 주체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반란이 보여 주듯 대중 행동만이 신자유주의를 저지할 수 있다.

둘째, 장하준은 시장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시장을 거부하거나 시장을 뛰어넘은 대안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가 생각하는 대안은 세계시장 내 “민주적 개발국가”이다.
이번 강연에서도 밝혔듯이 “사회적 소유에 반대하지 않[지만] … 완전한 사회적 소유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장하준이 진정한 사회적 소유 경제나 계획 경제를 대안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옛 소련과 동유럽 같은 폐쇄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를 ‘계획 경제’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재벌 문제의 진정한 진보적 해결책은 국유화이지만 나는 그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하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유화와 국유기업의 통제 문제는 운동의 급진화 과정에서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최근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격변 속에서도 국유화 요구가 등장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노동자 공장 관리 운동과 결합됐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참여계획경제로 발전할 가능성을 열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장하준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투기 자본통제나 국유화, 복지국가를 얘기할 때는 독일 급진 좌파 정당 지도자 오스카 라퐁텐의 주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복지가 “기업의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제3의 길’과 비슷하다.

또, “장기적 개발을 위해서는 대중 소비 등을 일시적으로 희생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할 때는 박정희 식 ‘개발주의’의 망령이 떠오른다. 장하준의 독자층이 노무현, 에콰도르 중도좌파 대통령, 진보적 청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급진 좌파가 장하준 주장의 옥석을 잘 짚고 참여계획경제 같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장하준의 신자유주의 비판에 공감하는 진보적 청년들과 우호적 토론 속에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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