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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식량난과 난민

북한 식량난과 난민

이승용(좋은벗들 평화인권 부장 )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7월 초 “다함께”가 주최한 여름 토론회에서 “좋은벗들”의 이승용 씨가 한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저는 1997년 가을부터 중국 연변에서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두만강이나 압록강변을 다니면서 난민들을 돕는 활동들을 주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에 중국 정보 기관에 잡혀서 감옥살이를 하다가 작년 여름에 추방당했습니다. 저는 장길수 가족 사건 바로 직전에 국내에 들어왔고 지금은 ‘좋은벗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벗들이 지금까지 지원한 난민들 숫자는 2만 2천 명 정도입니다. 그 중 수천 명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북한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좋은벗들은 북한 난민들을 만나 “도대체 얼마나 어려우냐, 당신 가족들 중에서 식량난 이후에 굶어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50명을 조사한 뒤 1백 명을 더 조사해보고 또 2백 명을 하고 점차 숫자를 늘려 봤습니다. 그 수가 3백 명, 4백 명, 1천 명이 되고 1천8백 명이 됐습니다.

북한의 식량난은 1992∼1994년경에 배급이 끊어지면서 시작됐습니다. 식량난으로 죽은 사람을 가족당 사망률로 계산해 봤더니 사망률이 28퍼센트였습니다. 당시 북한 인구를 2천 5백만 명으로 추산했습니다. 군인 1백20만 명, 당원 3백만 명, 농민―군인, 농민, 당원 들은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을 제외한 나머지 전체 인구에다 가족 사망률 28퍼센트를 계산하니까 3백만 명에서 3백5십만 명이 굶어죽거나 영양 결핍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좋은벗들은 그 내용을 1998년에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욕도 참 많이 먹었습니다. ‘반북 단체’로 낙인찍히기도 했고요. 좌익 집단에서는 ‘의도적으로 북한을 비판하고, 북한을 망하게 하려고 그런 걸 발표한 것 아니냐’ 또는 ‘적은 인원이 죽었는데 수치를 너무 부풀려서 발표한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등 수많은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어쨌든 좋은벗들은 표본조사를 통해 ‘3백만 명 아사설’을 제일 먼저 발표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아사자가 최소 2백만 명 이상일 것으로 봅니다. 2백만 명 이상이 죽었다는 것은 북한 정부도 인정했습니다.

좋은벗들은 두 번째 조사 작업을 했습니다. 2천4백여 개 마을을 직접 조사해 1999년에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중국 전역에 숨어 사는 탈북자가 30만 명 정도였습니다. 탈북자 숫자에 대해서 정부와 〈조선일보〉는 5만 명, 대부분 민간 단체는 10∼20만 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북한 식량난

북한 식량난이 저희들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1995∼1996년입니다. 대홍수로 농작물 수확이 어려워져서 국제 사회에 지원을 호소하면서 처음으로 북한 식량난이 알려졌습니다. 초기에는 북한 식량난이 일어난 이유가 1995∼1996년 홍수, 1997년 가뭄, 1998년 한파 등 자연 재해 때문인 것으로만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많은 난민들과 인터뷰한 결과, 북한 식량난은 1970년대 중·후반, 그리고 1980년대 들어서 서서히 북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작됐습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북한에서 남한의 임수경 양도 참가한 평양 청년학생축전 같은 행사들이 많이 열리고 또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신격화하기 위해서 많은 동상을 세우면서 외화를 많이 탕진했습니다. 경제난이 서서히 심해지다가 결국 1992∼1994년경에 전체 식량이 다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 국가에 양식이 없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식이 없는데 공장이 돌아간다? 그것은 순거짓말입니다. 양식이 없지만 군대가 제대로 군사 훈련을 할 것이다? 그것도 어불성설입니다. 양식이 없다는 것은 산업 기반과 사회 간접 자본 등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도덕, 관습, 예의범절까지 다 무너지는 것을 뜻합니다. 부부가 먹을 것이 없어서 몇 년간 고생한다면 그 때도 과연 부부의 사랑이 남아있을까요? 북한에서 1992년부터 시작된 식량난이 십 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2천만 주민 중 현재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집이 거의 없습니다. 북한은 1992∼1994년에 서서히 모든 것이 다 끊어지고, 1995∼1996년에 가전 제품·집안 패물 다 팔고, 1997년에 북한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 갑니다.

제가 만난 한 난민은 북한에서 함경북도 청진시의 7층짜리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는 중국으로 떠나오기 전날 7층짜리 아파트를 두부 7모와 바꿔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니, 집값이 얼마나 싸길래 두부 7모와 바꿔먹을 수 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북한 현실이 그렇습니다.

북한 아이들이 영양 결핍 때문에 키가 점차 줄어들어서 예전에는 군 면제 신장 기준이 1백50센티미터이었는데 지금은 145센티미터입니다. 중국에서 북한에서 갓 넘어온 열아홉·스무살 먹은 청소년들을 만나면 한국 초등학생 정도 키밖에 안 됩니다.

북한은 전쟁 능력을 거의 다 상실했습니다. 한국 비행기가 비행 훈련할 때 북한의 비행기는 기름이 없어서 미처 날아오르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에너지난을 함께 겪고 있습니다. 북한 전역에 전기 공급이 안 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탄광에서 석탄을 캐 연료로 사용하는데 전기 공급이 안 되니까 탄광에서 물을 뺄 수가 없습니다. 그 동안 두만강 근처에 있는 북부 탄전 대부분이 물에 잠겨서 석탄을 캐내지 못합니다. 이제 석탄을 캐낼 수가 없으니까 발전소도 돌릴 수 없어 전기난이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또 북한의 기차 대부분은 전기로 운행되니까 교통도 마비된 상태입니다. 전화·전보는 말할 것도 없고 편지 하나 보내면 거의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걸립니다. 평양에서 함경북도 제일 끝까지 가는 데 5∼6시간이면 될 것을 전기난이 아주 심각할 때는 보름에서 20일 정도 걸리기도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통일을 안 하면 모를까 통일 뒤 이 모든 것들을 다 부담해야 합니다. 식량난 때문에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통일 비용을 지금부터 막지 못하면 끝끝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상황에 놓이게 될 거라고 봅니다. 북한 전역에 사회 간접 자본을 투자해야 하고 산업 기반들을 모두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중국 내 북한 난민의 삶

중국으로 간 북한 난민은 처음에 ‘북한은 지옥이고 중국은 천국’이라 생각하면서 중국 땅에서 살기를 희망합니다. 특히 연변 같은 곳에는 한국 문화가 있고 TV를 통해 처음으로 접하는 한국 가요, 연예인들, 한국 정치의 자유로움,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학교 활동을 보면서 급속히 한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한국 땅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가 많이 생깁니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중국에 넘어온 사람들이 여권 없이 몰래 국경을 넘어 들어왔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이 사람들을 ‘불법 입국자’, ‘불법 체류자’로 부릅니다. 그런데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범죄인들을 본국으로 송환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규정에 따라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보냅니다.

북한 주민은 가족이 굶어 죽어 마지막 수단으로 두만강을 넘는데 북한 정부는 이 사람들이 자기만의 안락을 위해 조국을 버리고 중국으로 넘어갔다며 ‘정치 배신자’로 간주합니다. 북한 정부는 이 사람들을 굉장히 엄하게 처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경찰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어쨌든 억울함을 감내하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고용주인 중국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농사를 지어달라. 대신 집에서 먹고 자게 해주고 한 달 뒤 얼마 주겠다’ 하고 약속합니다. 한 달이 지나면 ‘이번 달에는 돈이 없으니 다음 달에 주겠다’라며 3개월 내지 6개월 뒤에 준다고 계속 약속을 늦춥니다. 6개월이 다 됐을 때 월급을 달라고 하면 아주 적은 금액을 준다든지 심지어는 하나도 안 주고 쫓아 버립니다. 더 독한 사람은 중국 공안에 신고해 버립니다. 여자들은 인신매매 당하는 사례가 굉장히 많습니다. 저희가 탈북자 수가 30만 명이라는 조사를 했을 때 여성의 비율이 70퍼센트 정도 됐습니다. 그러니까 난민들 중 20∼21만 명 정도가 여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자들이 왜 인신매매를 당할까요? 중국도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었는데 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 여자들은 찻집 다방, 노래방 이런 데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통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중소도시 여자들은 다 북경이나 상해 대도시로 몰려갑니다. 시골의 젊은 여자들은 중소도시의 식당, 음식점 이런 데로 몰려갑니다. 그러다 보니 시골에는 젊은 여자들이 귀하고 남자들은 결혼을 못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 공백을 북한 여성들이 몰래 와서 메우는 것입니다.

한편 중국에서 시골의 무능력한 남자들이 북한 여자들을 사게 됩니다. 그런데 무능력한 정도면 괜찮죠. 주로 술주정뱅이, 노름꾼, 신체 불구자, 정신병자, 돈만 많은 홀아비들이 북한 여자들을 삽니다. 북한에서 좋은 대학 나와서 평양에서 외국인 안내하던 여자들도 식량난 이후 먹고 살 길이 없자 중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이런 여자들조차 안전하게 살기 위해 술주정뱅이한테 팔려서 매일밤 성적 노리개가 돼 시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공안이 그 마을을 덮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탈북 여성들은 전부 산으로 들로 도망가고 집을 비웁니다. 한밤중에 공안들이 자주 들이닥치기 때문에 한겨울 밤에도 산에 올라가서 비스듬하게 움막을 판 다음 그 안에서 벌벌 떨다가 새벽녘에 들어와서 잠시 눈 붙입니다. 낮에는 주로 집 옷장 안에 숨어있습니다. 그렇게 탈북자들은 숨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 청소년들은 중국에 가서 유랑 생활을 합니다. 매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해서 돈 생기면 음식 사먹고 못 받으면 사정사정해서 얻어먹습니다. 잠은 여름에는 주로 놀이터, 강변, 노천, 다리 밑에서 자고 겨울에는 아파트 보일러실, 공중 목욕탕 보일러실, 병원 응급실, 밤새 영업하는 비디오방에서 잡니다. 그러다가 중국 깡패 조직하고 붙으면 돌격 대원으로, 행동 대원으로 뛰어나가 싸움질하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 난민 문제의 해결

그 동안 민간 단체들은 탈북자들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탈북자가 자꾸 생기면 정권이 위협받는다며 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이 사람들을 끝까지 못나가게 막고 넘어간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처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꾸 중국으로 넘어오고 이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라도 난민 지위를 주면 북한 주민 전체가 중국으로 넘어올지 모르고, 이들이 중국에서 사는 것을 엄청난 부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탈북자들에게 난민 지위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장길수 가족 사건이 생기고 올해처럼 스페인 대사관 진입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최근 ‘기획망명’에 대해 찬반 양론이 많은데, 어쨌든 탈북자들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알린 것은 굉장히 큰 의의가 있습니다. 한편 그 모든 사람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는 없습니다. 몰래 중국 신분증을 사고, 뒷돈 줘서 중국 경찰에게 중국 공민증 사고, 중국 여권 만들어서 한국에 초청장 받아서 데려오는 일이기 때문에 한 사람을 데려오는 데 굉장히 많은 돈이 듭니다. 또 그 사람들을 중국 경찰에게서 지켜내려면 수많은 활동가들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획망명’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벗들이 계속 주장하는 것은 북한 식량난 문제가 해결돼야만 탈북 난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땅에 양식이 남아돌면 중국으로 넘어가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중국에 와 있는 사람들도 그런 비인간적인 대접에서 벗어나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 정부와 국제 단체, 미국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 정부들도 대대적으로 식량을 지원해야 합니다. 북한 식량난 지원을 위해서 대북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북한도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땅에 넘어왔다가 돌아가면 처벌받는다는 두려움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북한에 양식이 있어도 ‘도저히 그런 통제된 사회 속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돼 역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북한 외부에서는 북한 식량난을 지원하고 북한 정부는 개혁·개방해서 주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중국으로 넘어간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고 관대하게 다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도 어려운 시기에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넘어온 탈북자들을 정치적 난민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부담이 굉장히 크다면 적어도 중국 땅에서 임시로 사는 것은 허락해야 합니다.

중국 땅에 팔려왔든 자의로 결혼을 했든 이미 결혼한 사람들에게 국제 결혼을 허용하고 중국인민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들을 해야만 식량난과 탈북 난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대북 지원하면 안 되고 먼저 북한과 김정일이 빨리 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도 굉장히 위험한 시각입니다. 식량난의 모든 책임이 김정일 정권에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양식이 없어서 군사 훈련을 수행할 능력까지 상실한 정권이 자국민들을 다 구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북한 정부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되, 북한 정부가 식량난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현실적인 태도입니다.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북한 전역은 내분에 들어가게 되고 내분은 남한에도 굉장히 큰 정치적 부담이 됩니다. 중국이나 미국 같은 외세의 개입까지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질지도 모릅니다. 모든 책임이 김정일에게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김정일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어쨌든 내분에 빠져들지 않고 동북아에서 어느 정도 나름의 균형을 잡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은 한반도가 공멸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북한을 지원하고 북한 정권도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법으로 식량난과 탈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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