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선과 학생운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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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에 치러질 대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진보적 학생 단체들 사이에서도 대선 시기 실천 과제에 대해 여러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에 있었던 ‘학생운동포럼’에서도 ‘대선을 앞둔 청년학생의 과제’는 중요한 토론 주제 중 하나였다.
이 글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진보적 학생운동의 과제가 무엇인지 여러 학생 단체들의 논의들에 비추어 다뤄 보고자 한다.
노무현 정부 5년은 노동자·민중의 개혁 열망을 배신한 세월이었다. 노무현은 사실상 한나라당이 집권했으면 했을 만한 일을 거의 다 추진했다.
노무현은 한미FTA를 끝까지 밀어붙였고, 비정규직을 사상 최대로 확대했다.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양극화는 더욱 심화했고 노동자·민중의 삶의 질은 심각하게 후퇴했다.
노무현은 국민의 80퍼센트가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데도 미국의 파병 요청을 단 한 번도 거부하지 않고 미 제국주의의 충실한 동반자 구실을 해 왔다.
4대 개혁입법 쟁점들은 개혁적 시늉을 하기 위해 잠깐 제기됐다가 금세 흐지부지됐다. 노무현은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결코 칼집에 넣지 않았다. 사립학교법 문제는 한나라당에 계속 타협하다가 결국 핵심적 내용에서 모두 후퇴했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의 핵심 측근들은 모두 심각한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있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부패 비리가 한나라당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기성 정당들의 정치적 무능
노무현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거의 모든 선거에서 참패했다. 사실상 ‘도로열우당’인 통합신당의 창당 직후 지지율(7.8퍼센트)은 창당 일주일 전 열린우리당 지지율(9.0퍼센트)보다 더 낮았다.
통합신당의 경선 후보들은 대부분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인물이었고, 노무현의 신자유주의·파병 정책을 계승하는 자들이다. 심지어 손학규는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자다. 게다가 통합신당의 경선은 ‘표떼기’ 의혹으로 일시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도로열우당’의 정치적 파산을 보여 준다.
반면, 한나라당의 이명박은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중이 일관되게 한나라당을 대안으로 여기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난 4·25 재보선 결과는 한나라당을 포함한 주류 정치권 전반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환멸을 보여 줬다. 특히 한나라당의 ‘재보선 필승 신화’가 무너졌다.
사실, ‘차떼기’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50퍼센트를 넘었던 것은 순전히 노무현의 배신과 개악에 대한 반사이익 덕분이었다. “이념적 보수성으로 본 (순수) 한나라당 지지도는 20퍼센트 안팎”에 불과하다. 이명박 지지층의 상당수가 이명박이 개혁적이라고 오해하고 있고, 한나라당 지지자의 40퍼센트 이상이 범여권 후보 중 괜찮은 사람이 정해지면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대답했다.
박근혜와의 이전투구 과정에서 드러난 비리와 최근 마사지걸 발언 등을 통해 이명박에 대한 환상이 깨지자 지지율 거품도 다소 꺼지고 있다.
더구나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비정규악법 통과, 사학법 개악 등에서 노무현과 ‘찰떡 공조’를 해 왔고, 노무현의 사이비 개혁조차 ‘좌파적’이라며 탄핵 소동을 일으킨 한나라당은 노무현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한편 유한킴벌리 사장 출신 문국현이 개혁적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문국현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미FTA 반대 운동이나 이랜드 투쟁에 대해 분명한 지지를 보낸 적이 없고,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에 동참하려 한다. 따라서 문국현은 대중의 진보·개혁 열망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후보가 될 수 없다.
진보적 대안
이와 같은 주류 정치권의 무능은 큰 정치적 공백을 낳고 있다. 한나라당 같은 우파 신자유주의 정당도 싫고, 노무현 같은 개혁 사기꾼도 싫은 개혁염원 대중이 매우 폭넓게 존재한다. 이들은 한미FTA가 민중에게 이익이라는 거짓말에 의구심을 갖고 있고, 비정규직 확산과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의 열망을 표현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을 분명히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분명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이번 대선에서 FTA와 비정규직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파병 정책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핵심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경제 위기의 책임이 바로 정부와 기업주들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고통을 전가하려는 시도에 맞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윤 지상주의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모든 것들이 투쟁 ― 노동자 계급 자신의 대중 행동 ― 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미 노무현 정부에 대한 환멸과 실망감은 투쟁으로 표현되고 있다. 노무현은 파병 반대 투쟁·한미FTA 반대 투쟁·비정규직 철폐 투쟁이라는 강력한 세 운동에 직면해야 했다. 특히 한미FTA 반대 투쟁과 이랜드 노동자 파업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후퇴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 줬다.
대선 직전인 11월 11일에는 전체 진보진영이 집결하는 ‘범국민행동의날’이 예정돼 있다.진보진영은 이와 같은 투쟁에 많은 사람들을 결집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이런 진보적 대안 제시와 이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 지지와 결합돼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조직 노동자들을 주된 기반으로 하는 한국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이다.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더는 기성 정당에 의존할 수 없다’는 노동계급 선진 부위의 집단적 자각의 산물이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탄핵 반대 투쟁의 여파 속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진보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과 대선 후보가 노동자·서민의 대변자가 돼 주기를 기대한다.
민주노동당은 올해 FTA 반대 투쟁과 이랜드 파업 투쟁에 앞장서면서 진보를 염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안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4?25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은 평균 16.58퍼센트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이것을 “한미FTA 타결 이후 민주노동당이 … 위상을 높이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한 징후”라고 분석했다.
최근 가상 삼자 대결에선 민주노동당 후보가 최고 17퍼센트의 지지를 얻었다는 여론 조사도 있다.
반한나라당과 더불어 민주노동당 지지를 분명히 해야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아직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려면 차선책으로 통합신당이나 문국현을 지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여전히 일부 진보진영 활동가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8월에 열린 ‘학생운동포럼’ 대선 관련 토론회에서도 이 점이 쟁점이 됐다.
한나라당과 같은 수구우파 정당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히 진보진영 전체의 과제가 돼야 한다. 군사독재 정부의 후신인 한나라당이 집권한다면 그들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그러나 반한나라당은 노무현과 그 계승자들에 대한 반대와 결합돼야 한다. 그동안 민중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노무현과 노무현의 정책을 계승하고 있는 범여권 후보들이다. 따라서 이들 세력 전체에 반대해서, 민주노동당 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총련이 최근 ‘민주노동당 강화에 앞장서자’는 입장(이하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은 2002년 대선 당시 보인 노무현에 대한 은밀한 ‘비판적 지지’ 보다 매우 진일보한 일이다.
한총련이 ‘입장’에서 분석한 것처럼 “이미 국민들은 보수 양당 질서에 환멸을 느끼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보수정치권은 전반적 위기 국면에 들어서고 있”고, “민주신당과 민주당을 비롯한 중도개혁 세력들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와 국민들의 새로운 정치적 지향을 수렴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진영의 활동가들이 그동안 노동자·민중을 배신해 왔고 친제국주의 정책을 펴 온 자들을 지지하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범여권 후보들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지지하고 한반도 평화번영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5년간 노무현 정부는 미 제국주의를 강화하는 데 적극 협조해 왔고 남북관계도 북미관계의 틀 내에서만 움직여 왔다. 친미우파와 거듭 타협해 온 범여권은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남북 민중의 자유로운 왕래나 냉전적 법률 폐기를 실현할 수 없다.
따라서 한총련이 ‘입장’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중도개혁세력과의 막연한 대통합을 꿈꿀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강화 원칙을 더욱 확고하게 견지”하는 것이 한나라당을 약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현재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대중 의식의 우경화 때문이 아니라 노무현의 사이비 개혁에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 중 일부가 대안 부재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나라당을 선택한 결과다. 따라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우파적 본질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확고하다고 볼 수 없다. 이는 한나라당 정권 하에서도 투쟁은 계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진보진영과 선진 대중의 자신감 수준이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범여권에게 의존한다면 노동계급의 사기와 투쟁 역량을 훼손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반면,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의미있는 득표를 해 선진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투쟁 역량을 강화한다면 설령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우파적 정책을 좌절시킬 수 있는 힘이 강화될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2002년 대선에서 사회당의 개혁 배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우파가 반사이익을 얻어 당선했지만, 사회당의 개혁 배신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타협을 일관되게 비판한 좌파 후보들이 상당한 표를 얻음으로써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 선진 부위의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를 발판으로 프랑스 반신자유주의 좌파는 우파가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핵심 정책들 ― 신자유주의적 유럽헌법, CPE ― 에 맞선 투쟁을 건설했고, 중요한 투쟁들에서 모두 승리할 수 있었다.
진보 후보 지지를 회피하는 좌파의 문제점
한편, 전국학생행진(건)이 발의한 ‘대선학투본(준)’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회피하고 있다. 그것도 거의 선거 자체에 대한 회피에 가까운 논거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대선학투본(준)’은 소식지에서 “2007 대선에 대한 일체의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선언한다. 선거가 아니라 투쟁만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다함께’ 또한 노동계급 대중 투쟁에 의한 체제의 근본적 변화 없이 의회나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소수의 변혁가들에게만 입증되고 대중 자신에게는 입증되지 않았을 때, 이런 원칙을 대중 자신이 실천해야 하는 전술로 제시하는 것은 원칙과 전술을 혼동하는 것이고 대중과의 괴리를 자초하는 길이다.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시기에 자본주의적 의식과 사회주의적 의식이라는 모순된 의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중 자신의 투쟁을 통한 근본적 사회변혁을 바라는 활동가들은 대중의 모순된 의식을 뛰어넘거나 회피함으로써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없다. 따라서 당면 시기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구체적 의식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일상적 시기에 대중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은 ‘이제 환상을 버리라’고 선언하는 것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노동계급 자신의 투쟁·생활·조직 경험을 통한 의식의 발전 과정에서 선거에 대한 환상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조차도 자동적인 과정은 아니다. 혁명적 위기에서도 노동계급의 자주적 투쟁을 통해 형성된 조직이 자본주의 국가 기구를 대체하기 전까지는 선거에 대한 환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선진 노동자들 다수가 “선거는 지배계급이 민중들을 더 잘 착취할 것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공간”일 뿐이므로 선거에 의식적으로 불참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좌파 활동가들은 선진 노동계급의 정서에 공감을 표시하고 그들의 자신감을 고무할 수 있는 후보를 지지하고, 그 후보가 선거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재 선진 노동자들과 진보적 활동가 다수가 민주노동당원이고, 진보를 염원하는 10~17퍼센트 정도의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지지자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명백히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통해 투쟁을 건설해 왔다. 이 때문에 여전히 진보·개혁적 대중 가운데 민주노동당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투표하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광범하게 존재할 정도다.
그런데 ‘대선학투본(준)’은 기성 정당의 후보들을 언급하며 “그 놈이 그 놈”이라고 올바르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이번 대선의 핵심 쟁점을 회피하는 태도일 뿐이다.
‘대선학투본(준)’은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투쟁 강화와 민주노동당 지지가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올 한 해 동안 한미FTA 반대 투쟁과 비정규악법 반대 투쟁에 참가해 온 사람들의 다수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자신도 이런 투쟁을 이끌어왔고, 대선을 앞두고 선거와 대중 투쟁의 결합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대선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다면 진보·개혁적 대중의 자신감도 더한층 고무될 것이다.
대선에서 진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회피하는 것은, 노무현에게 실망했지만 여전히 기성 정당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나라당에 투표하거나 한나라당이 싫어 한 번 더 범여권 후보에게 투표하는 사람들의 의식에 개입하지 않고 기성 정당의 영향력 하에 내버려 두는 결과만 초래하게 된다.
민주노동당의 후보나 공약이 1백 퍼센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지를 꺼리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격이 될 것이다. 설령 민주노동당의 공약에 부족함이 있다 해도, 기성 정당들끼리의 차이보다 그들 모두와 민주노동당의 차이가 훨씬 크다. 따라서 좌파들은 기성 정당에 맞서 민주노동당을 분명히 지지하면서 그 속에서 민주노동당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 논쟁하고 좌파적으로 견인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보진영의 활동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기성 정당이 낳은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의 선거 도전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선명한 진보적 대안을 주장하고, 투쟁을 강화함으로써 대안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생운동 또한 이러한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