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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더욱 불안정해진 세계

더욱 불안정해진 세계

이수현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 자본주의와 군사력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WTC)와 국방부 건물이 비행기 자살 테러로 무너졌다. 공격자들이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과 미국 정부를 동일시하는 바람에 비극이게도 3천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9·11 테러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낳은 쓰디쓴 열매였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은 그라나다·리비아·파나마·이라크·소말리아·유고슬라비아를 무력 침공했다. 1991년 제2차 걸프전에서는 20만 명이 넘는 이라크인들이 죽었고, 그 뒤 10년 동안 지속된 경제 제재 때문에 1백만 명이 사망했다. 미국이 제공한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은 지난 50년 동안 팔레스타인 민중을 학살하고 탄압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테러와의 전쟁”의 표적으로 삼았다. 부시는 다른 제국주의 열강을 동맹국으로 끌어들인 다음, 10월 8일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감행했다. 20년에 걸친 내전·빈곤·기아에 시달린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한 번 제국주의 열강이 벌이는 “위대한 게임”의 졸이 됐다.

베트남 전쟁 이후 30여 년 만에 다시 투입된 B-52 폭격기는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초토화했다. 어린이와 노약자를 포함해 6천 명이 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죽었다. 공습 개시 후 두 달여 만에 탈레반 정권은 항복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 평화와 안정은 찾아오지 않았다.

올해 2월에는 CIA 간부조차도 군벌들 간의 경쟁이 새로운 내전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3월 초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당초 전쟁의 목적이라던 빈 라덴이나 알카에다,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 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또, 파슈툰족·우즈벡족·타지크족·하자라족 등 종족 간 갈등과 폭력, 약탈도 그치지 않았다. 그나마 국제 구호 단체의 원조로 근근이 연명하던 사람들은 이제 식량을 얻기 위해 자식들을 내다팔아야 한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는 미국의 꼭두각시인 카르자이 임시정부가 들어서 있다. 그러나 군벌들의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고 지난 7월 초에는 부통령 카디르가 암살당했다. 또,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미군의 폭격을 받아 사망하기도 했다.

내전, 폭력, 빈곤, 기아 ―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남긴 진정한 유산 목록이다.

분쟁의 격화

아프가니스탄에서 피 맛을 본 매들은 전 세계 창공을 누비며 새로운 먹이감을 찾았다. 1993년 10월 44명의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살해당한 소말리아, 친미 인도네시아 국가에 맞서 독립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아체 지역, 무슬림 반군 아부 샤아프가 친미 아로요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필리핀의 바실란 섬, 2000년 미국 군함 USS콜 호가 폭파된 예멘 등이 표적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또 남미의 브라질·파라과이 국경 지대에서도 군사 작전을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은 부시를 본받아 팔레스타인 민중을 상대로 한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했다. 지난 4월에 이스라엘군은 요르단강 서안 예닌을 침공해 5백여 명을 학살했다. 2000년 9월 제2차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인티파다)가 시작된 이래 1천5백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다.

작년 12월 인도에서는 국회의사당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힌두 근본주의자 총리 바지파이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파키스탄을 몰아붙였다. 파키스탄의 군사 독재자 무샤라프는 핵무기까지 들먹이며 맞섰다. 각각 수십 기씩 핵무기를 보유한 양국은 카슈미르의 “통제선”을 따라 1백만 대군을 배치한 채 서로 포격전을 주고받았다. 만약 양국이 전면전을 벌여 핵무기를 사용하면 약 1천5백만 명이 즉사할 것이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9·11 테러 전에 이미 여러 해 동안 체첸에서 “이슬람 테러”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미국이 중앙 아시아 국가들의 군사 기지를 이용하는 대가로 체첸 전쟁을 마음놓고 수행할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도 위기가 더욱 심화했다. 부시는 올해 1월 국정 연설에서 이란·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했다.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 살상 무기뿐 아니라 휴전선에 배치된 재래식 무기까지 들먹이며 북한을 압박했다. 올해 6월에 서해에서 벌어진 교전은 따지고 보면 미국이 북한을 압박한 결과였다.

새로운 전쟁

9·11 테러 직후부터 부시는 이라크를 공격하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이라크 정보 기관과 알카에다를 연결시키려 했다. 그러나 CIA 국장이 증인으로 내세운 체코 관리와 영국 정부조차 그런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부인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탄저균 공격의 배후로 이라크를 지목했지만, 그 탄저균의 출처가 미국 국방부 자신이었음이 드러나 이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부시는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해 마녀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8월 10일 부시는 “임박한 전쟁 계획”이 없다면서 한발 뺐다. 그러나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는 의지 자체는 전혀 변함이 없다. 지금 미국의 지배자들은 전쟁 시기와 방식을 둘러싸고 의견이 갈려 있는 듯하다. 11월 중간 선거 전, 선거 직후, 내년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 총 25만 명의 지상군을 동원하는 전면전이냐, 아니면 8만 이하의 “소수 정예” 부대로 곧장 바그다드를 폭격하는 이른바 “내부 전복” 전략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있다. 그러나 어떤 전략을 택하든 그들은 인구 3백만 명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폭격해 생기는 대규모 사상자를 “부수적 피해”로 감수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공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증거는 전혀 없다. 전직 유엔 관리들 ― 구호담당조정관 데니스 핼리데이와 그 후임자 한스 폰 스포넥, 무기사찰단장 스콧 리터 ― 조차 이라크가 핵무기나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할 능력이 없다고 증언해 왔다.[스콧 리터의 연설문이 실린 다음 기사 참조] 또, 지난 주에 이라크 정부가 유엔 무기사찰단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부시 일당은 그 제안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국가안보회의 대변인 션 먹코맥은 “1995년 이후 변하지 않은 우리의 정책은 바로 [이라크의] 정권 교체다.” 하고 말했다. 무기 통제 담당 차관 존 볼턴은 미국의 정책이 “무기사찰단이 들어가든 말든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했다.

스포넥은 “미국 국방부와 CIA는 오늘날 이라크가 미국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중동 지역에서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는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조지 W 부시는 자기 아버지가 이라크에서 시작한 일을 끝마치고 싶어한다는 것이 바로 그 대답이다. 그 일은 중동의 석유 자원을 약탈하는 미국 정부의 능력을 보호함과 동시에 미국이 아무 때 아무 데서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 즉 미국의 패권과 지배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것이다.

반전·반자본주의 운동

9·11 테러 이후 기성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제 반자본주의 시위와 저항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제노바 시위가 초래한 급진화 이후 자본과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과 저항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작년 12월 영국 런던과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각각 10만 명이 반전 시위와 행진을 벌였다. 올해 1월 말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7만 명이 모여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했다. 2월에는 9·11 테러의 현장 뉴욕에서 세계경제포럼(WEF)에 항의하는 시위에 2만 명이 참가했다. 그것은 반신자유주의 시위이자 반전 시위였다.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유럽연합 정상회담 반대 시위에 50만 명이 참가했다. 이것은 작년 7월 30만 명이 참가한 제노바 시위보다도 더 큰 규모였다. 4월 16일에는 1천1백만 명이 참가한 이탈리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 벌어졌다.

4월 20일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 민중에 연대를 나타내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5월 1일 메이 데이에는 프랑스에서 1백5십만 명이 르펜 반대 시위를 벌였고, 영국 런던에서도 노동조합원들과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이 몇 십 년 만의 최대 시위를 벌였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부시 방문을 반대하는 두 차례 시위에 각각 10만 명과 5만 명이 참가했다. 6월 20일 스페인에서는 1천만 명이 참가한 총파업이 벌어져 전국이 거의 마비됐다. 지난 7월 4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도 탈레반 붕괴 뒤 최초의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4월 초 1백만 명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벌인 모로코를 비롯해,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등 중동 각지에서도 반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 대부분의 여론 조사 결과는 미국인 다수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다는 사실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반전 운동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참상 때문에 이라크 공격에 대한 의구심과 문제 제기도 커지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부시에게 도움이 됐던 정치적 합의가 깨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부시가 전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대중 운동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강력한 반전 운동은 전쟁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지금은 대중적인 반전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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