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보호에 열심인 한국 정부
〈노동자 연대〉 구독
미군 보호에 열심인 한국 정부
김광일
지난 8월 7일 주한 미군 사령부는 의정부 여중생 압사 사건의 피의자에 대한 재판권 이양을 거부했다. 주한 미군은 “공무중 범죄에 대해 미군이 재판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으며, 이미 기소가 이뤄진 상태”라며 재판권 이양을 거부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957년 미군이 재판권을 이양한 적이 있었다. 1957년 1월 주일 미군 연습장 내 출입 금지 장소에서 탄피를 줍던 여성을 총으로 쏘아 죽인 미군 하사관에 대한 재판권이 일본 정부로 넘어갔다.
당시 주일 미군은 미·일 SOFA 규정을 들어 공무중 범죄에 대한 재판권 이양을 거부하다 항의 운동에 밀려 재판권을 이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 정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철두철미하게 주한 미군을 옹호하고 있다. 재판권 포기 1차 시한인 8월 7일보다 이틀 전인 8월 5일에 검찰은 통신 장애가 사고 원인이라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매우 많은 의혹들이 제기됐다. 사실, 검찰은 현장 조사 한 번 하지 않았다. 미군 장갑차들이 과속을 일삼았다는 현지 주민들의 증언조차 무시했다.
국방부는 미군의 재판권 이양 거부 발표가 나오자마자 사고 재발을 방지하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미군을 거들고 나섰다.
김대중 정부는 여중생 압사에 항의하는 활동가들을 공격하고 있다. 6월 13일 압사 사건 이후 일어난 항의 투쟁과 관련해 10명이 넘는 학생들을 구속했다. 정부는 범대위 공동 대표 홍근수 향린교회 목사와 4명에게 출두 요구서를 발부했다. 경찰이 체포 요구서를 발부한 사람 가운데 심지어 49재 추모제 때 무대 차량을 운전한 사람도 있다.
항의 운동
8월 7일 미군이 재판권 이양 거부를 발표한 뒤 항의 투쟁이 주춤했다. 8월 7일 항의 집회에는 4백여 명만이 참가했다. 8월 10일 주말 집회는 서울이 아닌 의정부에서 개최됐고 참가자 수도 1백20여 명으로 줄었다. 항의 투쟁이 주춤한 주된 이유는 그 동안 여중생 압사 항의 투쟁에 적극 참가해 이 투쟁이 확대되는 데 핵심 구실을 한 한총련 간부 중 일부의 정치적 오류 때문이다.
주사파는 지난 7월 31일 북한 외무장관 백남순과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의 비공식 회동이 있은 뒤 형성된 남북 대화 국면을 통일 운동에서 중요한 시기라고 여기고 있다. 그들은 모처럼 조성된 대화 국면이 깨질까 봐 매우 조심스럽다. 이런 국면에서 그들은 주한 미군 반대 투쟁이 냉전 세력들이 판을 깰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여중생 압사 항의 운동에서 일관되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주사파는 8월 7일과 10일 집회에는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았다. 남북 대표단들이 워커힐 호텔에서 ‘8·15 민족 통일 대회’를 연 8월 15일, 용산에서 개최된 집회의 주최는 ‘의정부 여중생 범대위’가 아니라 ‘다함께’를 비롯한 3개 단체뿐이었다. 8월 15일 직전에 있은 ‘의정부 여중생 범대위’ 회의에서는 8월 15일에 ‘범대위’가 주최하는 집회를 개최할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여중생 압사 사건 항의 투쟁보다 통일 운동에 무게를 두는 단체들이 난색을 표해, ‘범대위’가 집회를 주최하거나 주관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주사파 전략의 문제점은 반미 투쟁을 통일 운동과 직결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미국 정부와 대화를 모색할 때는 주사파는 반미에 일관되지 못하게 된다.
반미 투쟁
미국은 1990년대에만 해도 두 차례(1994년과 1998년)에 걸쳐 전쟁 위기를 조장했다. 올 6월에 벌어진 서해교전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의 대북 압박이 그 핵심 배경이다.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활동가들은 반미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의 오만한 태도에 대한 민중의 반감이 여전히 높은 이 때가 투쟁을 확대하기에 매우 좋은 시기다.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에서 김동성 금메달 파동,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반감 등 반미 감정이 저변에 형성돼 있다. 8월 13일에 있은 ‘대학생 행동의 날’ 서울 집회에 1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미국과 김대중에 항의했고 8월 15일 용산 집회에도 8백여 명이라는 적잖은 수가 참가했다. 이는 반미 투쟁이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반미 투쟁은 노동자 대중과도 관계가 있다.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부시는 그것을 위해 군대를 보유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전쟁조차 서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은 미국의 군사적 지배에 맞서는 투쟁과 결코 분리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정부 여중생 항의 투쟁을 국제적인 반미 투쟁과 연결시킬 줄 알아야 한다. 미국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미국이 저지르는 범죄의 가장 극악무도한 형태는 전쟁이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 침공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1991년 제2차 걸프전을 통해 이라크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과 어린이도 무참히 학살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