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논설 - 18대 총선 결과:
출범 한 달 만에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 입증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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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간신히 과반을 얻은 18대 총선 결과는 이명박이 취임 한 달 동안에 쏟아낸 온갖 개악과 반동, 추문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과 냉소를 자아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대선 때 이명박을 지지한 사람 중 벌써 36퍼센트가 등을 돌렸고, 한나라당의 강력한 생명줄인 반노무현 반사이익도 사라졌고, 되레 반이명박 정서 때문에 후보들은 명함 등에서 MB 흔적을 지우기 바빴다.
노무현에게 개혁의 희망을 걸었다가 배신당한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대선 때 기권했지만, 소수는 이명박에게 민생 회복의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강부자’ 내각과 ‘재벌천국’ 정책, 물가 인상, 백골단 부활, 남북관계 위기, 이건희 면죄부 특검이었다. 문국현이 이재오를 꺾은 것은 이에 대한 불만 표출로 설명된다.
사실, 이러한 급속한 불만 증대 때문에 한나라당과 우파의 사분오열은 심각하다. 한나라당 공천 과정에서 이재오의 이상득 사퇴 촉구와 박근혜의 ‘나는 속았다’ 선언 등에서 봤듯이 말이다. ‘박사모’는 이번에 ‘이적’ 비난도 무릅쓰고 경남 사천에서 이방호 낙선을 위해 강기갑까지 지지했다. 물론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의 당선은 한미FTA에 대한 농민의 불만이 주된 요인이었다.
박근혜계, 이상득계, 이재오계, 정두언계, 정몽준계 끼리의 합종연횡과 아귀다툼은 앞으로 더 격화할 것 같다.
이러한 반이명박 정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한나라당 견제론은 이번 총선에서 설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지난 5년을 배신과 개악으로 더럽힌 그 개혁 사기꾼들은 진정한 개혁 염원자들에게 대안이 될 수 없었다.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를 새 지도자로 세운 ‘짝퉁 한나라당’이 말하는 ‘1퍼센트 부자 정부 견제론’은 쓴웃음만 나오게 했다.
한미FTA, 비정규직, 등록금 등에서 별 차이가 없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함께 정책·쟁점 없는 선거를 만들었다. 민주당 후보들도 뉴타운 건설과 종부세 인하를 약속했고, 심지어 대운하의 예고편인 경인운하를 공약하기도 했다.
“가장 협력적인 야당이 되겠다”(손학규)는 배신자들이 이명박의 개악을 견제할 걸로 볼 사람은 별로 없었고, 생생한 배신의 기억을 벌써 잊은 사람도 없었다.
이런 대안 부재의 틈을 노린 한나라당은 다시 ‘경제 살리기’를 내걸었다. 그래서 조갑제는 “한나라당 총선 홍보물에 안보, 북핵, 법질서 같은 단어가 한 마디도 없다”하고 불평했다.
그럼에도 반이명박 반사이익이 있었기에 민주당이 이 정도 의석이라도 얻은 셈이다. 충청에서 자유선진당이, 영남에서는 친박연대가 반이명박 반사이익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명박에 기겁했지만 차마 정치 오물들을 지지할 순 없었던 수백만 명은 투표를 포기해 버렸다.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그래서 18대 총선은 46퍼센트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통해 주류 정당들과 공식 정치에 대한 뿌리 깊은 환멸과 냉소를 보여 줬다. 등록금 집회, 대운하 반대 운동 등에서 청년·학생 들이 보여 준 활기와 열정을 총선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지할 사람이 없다.”, “투표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지만 정말 내키지 않았다.”(〈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투표 기권자들)
많은 사람들이 차떼기 우익(한나라당)과 개혁 사기꾼(민주당) 가운데, 차떼기 주범(한나라당)과 차떼기 공범(친박연대, 자유선진당) 가운데 고통스러운 선택을 거부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따져도 후보 재산 평균이 30억 원인 재벌·강부자 1중대(한나라당)와 10억 원인 재벌·강부자 2중대(민주당) 간의 아귀다툼, 너도나도 내세운 뉴타운·특목고 유치, 종부세 폐지 공약 등은 사람들을 진저리나게 만들었다. 박근혜와 결혼하겠다던 허경영과 다를 바 없는 ‘내가 진짜 친박[근혜]’이라는 역겨운 황당 개그도 있었다.
참여연대가 발표한 ‘부패 비리와 추태·구태 전력 후보’ 명단에는 한나라당, 민주당, 친박연대, 자유선진당 후보들이 골고루 있었다. 결국 40~50퍼센트의 부동층은 고스란히 투표를 포기한 듯하다.
기층의 정치적 바램을 무시·배신한 주류 정당들이 투표율 저하 등 공식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만들었고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낳았다. 이 위기는 신자유주의 개악과 제국주의 전쟁 동참이 진행된 지난 10년 동안 가속돼 왔다.
한 연구(고려대 박종민 교수, ‘정부 신뢰와 정책 혜택 및 정부 공정성에 대한 태도’)에 따르면 ‘국회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1996년 49퍼센트에서 2007년 18퍼센트로 하락했다. 사람들은 국회와 정부가 ‘소수 특권층을 위하고’(71.4퍼센트), ‘부패했다’(51.6퍼센트)고 답했다.
대안 부재
결국, 전체 유권자의 30퍼센트도 안 되는 지지를 얻은 당이 대안 부재와 ‘경제 살리기’에 대한 한 가닥 미련, 낮은 투표율이 결합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역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명박 시대에 ‘강부자’ 내각에 이어 ‘강부자’ 국회까지 들어서게 됐다. 총선 이후 이들은 재벌·강부자 들을 위한 온갖 개악을 추진할 것이다. 4개월 연속 무역적자라는 경제위기 심화 속에서 이명박의 강부자 내각과 국회는 더욱 노동자와 서민을 쥐어짜려 할 것이다.
이미 총선 때 뉴타운 공약들이 부동산 폭등에 불을 당겨 놓았다. 이명박도 “내수 위축은 안 된다”며 물가인상도 불사하고 재벌과 건설족을 위한 경기부양에 나설 뜻을 밝혔다. 대운하도 강행하려 할지 모른다. 공공부문 사유화·시장화·해외매각 계획도 하나씩 발표되고 있다.
최근 전경련은 해고 요건 완화, 대체근로 허용과 파견제 전면 확대, 차별금지법 폐지 등을 건의했고 정부는 “전향적 검토” 뜻을 밝혔다. 멋대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여성과 약자들을 차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무려 노동자 13만 명을 해고하며 구조조정을 해 온 미국 GE 모델을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자유선진당·친박연대 등과 보수대연합을 할 수 있고 민주당도 한미FTA 등에 협력할 것이지만, 국회 과반을 겨우 장악한 이명박은 취임 한 달 만에 지지율이 20퍼센트 넘게 하락한 엔진이 약한 불도저다. 총선에서도 이방호, 이재오 등 ‘실세 4인방’은 이명박 측근이라는 ‘죄’로 줄줄이 떨어졌다.
이명박이 추진할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개악들이 초래할 경제적·정치적 양극화와 대중적 반감도 지배자들의 분열과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부시와 공화당도 2004년 11월 선거에서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했지만 얼마 안 돼 레임덕에 빠졌다.
진보의 희망과 투쟁의 과제
총선에서 이명박의 반동에 맞서 진보적 희망과 견제를 택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진보 양당의 정당 득표율을 합치면 8퍼센트가 넘는다. 4년 전 총선 때의 탄핵 역풍이 당시 민주노동당에게는 행운의 순풍이었음을 고려하면 그 때와 비교해 반토막이라고 그저 폄하할 일이 아니다.
총 5석을 얻은 민주노동당은 권영길·강기갑 의원이 한나라당의 아성인 영남에서 승리했다. 그야말로 “노동자와 농민 대표가 당선된 것”(권영길)이다.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 의원도 진보의 불모지였던 수도권에서 당선권에 근접하는 의미있는 선전(善戰)을 했다.
진보 양당은 총선에서 선명한 반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제시했고, 특히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등록금 1백50만 원 상한제’를 분명하게 주장했다.
진보신당이 분열해 나가지 않고 총선에 임했다면 더 나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총선 선거운동 와중에 민주노동당을 ‘종북주의’로 규정하거나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추구하는 등 진보신당이 총선에서 보인 기회주의적 태도도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지도부도 심상정 비대위 혁신안을 지지한다고 밝혀 의구심을 남기고 있다.
이명박 시대에 진보진영의 과제는 온건화 추구나, 의회 내에서 개혁 사기꾼들과의 공조가 아니다. 이명박의 개악과 반동에 맞서 강력한 단결과 저항을 건설하면서 급진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올해 3월 현재 노동자들의 파업 건수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갑절이 넘었고,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사실상 백수’가 3백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진보진영은 이러한 기층 민중의 고통과 투쟁에 개입하며 더 좌파적·투쟁적인 대안을 건설해 나아가야 한다. 이런 좌파적 혁신을 통해서만 이명박의 개악과 반동에 맞서 진보적 대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