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와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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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혁명적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인 크리스 뱀버리는 경제적·정치적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사회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생각해 싣는다.
고든 브라운이 영국 총리가 된지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일련의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이 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이후 고든 브라운 정부는 지지율 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신노동당이 겪고 있는 문제는 단지 지지율 하락만이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것이다. 갈수록 많은 사람이 한 때 당연한 것으로 간주했던 경제적·정치적 상황이 흔들리고 있다.
즉, 삶의 근본인 식량이나 연료 등의 가격이 크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들의 가격이 공식 물가상승률인 3.3퍼센트보다 훨씬 더 상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물가폭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연금생활자 ― 일자리도 없고 연금지급액도 너무 낮다 ― 를 포함한 노동계급이다.
그들은 부자들보다 소득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식품과 연료를 사는 데 써야 한다.
알리스태어 달링 재무장관, 머빈 킹 영국은행 총재와 신문 사설들은 우리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임금 인상’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런던 시티[런던의 금융중심지] 이사들은 물가상승률 이하의 연봉 인상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오히려 부자들은 지난주 열린 로얄 애스콧 경마 대회 등에서 자신들이 신노동당과 보수당 정부 아래 모은 부를 과시하는 데 여념이 없다.
공포심
전 세계적 불황이 영국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자 알리스태어 달링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영국은 그런 위기를 잘 극복해 왔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에 파업률을 포함해 노동계급의 저항 수준이 매우 낮았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늘날 신문의 경제란을 보면 경제 불황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석유 가격 급등과 이윤율 하락에 뒤따라 경제가 위기에 빠졌던 1973년을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에 전 세계 지배계급은 노동계급 반란과 1975년 미국에 대한 베트남의 승리로 정점에 달한 민족해방 투쟁의 물결에 직면했다. 지배자들은 불황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지 않을지 두려워 했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신문들은 아시아,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식량 소요가 확산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조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한 것과 경제 불황이 결합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것은 파키스탄이나 이집트 같은 서방의 핵심 동맹국들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최근 칭송했던 이른바 ‘강력한’ 우파 정부들이 노동계급 반란에 직면해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스의 코스타스 카라만리스와 남한의 이명박 대통령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러나 전 세계 지배자들에게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다. 일부 지배자들은 지난해 사르코지가 당선하자 그를 새로운 마가렛 대처로 칭송한 바 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노동자 파업과 대규모 시위 물결에 직면해 몇몇 중요한 개혁들을 접어야 했다.
30년 전에 국제 지배계급은 나중에 반격할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당장에는 노동자들에게 양보해야 함을 깨달았다.
영국 등에서 그들은 해롤드 윌슨과 짐 캘러한 등 중도좌파 정부에게 손을 내밀었다. 중도좌파 정부를 내세워 노동조합과 타협하려는 것이었다. 이 정부들은 경제 문제를 결정하기 전에 노동조합과 상의하겠다고 약속했고, 노동조합이 정치적 결정 과정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 대신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억제, 파업 투쟁 자제, 복지비 삭감, ‘비경제적’ 산업들의 합리화 등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것을 약속했다.
1970년대에 생활수준·주택·교육과 의료 서비스 수준을 향상시켰던 장기 호황이 끝나고 불황이 찾아오면서 대중 투쟁이 발생했다.
당시 불황은 잠깐 동안만 지속될 듯 싶었다. 그래서 잠시 희생하면 과거의 호황으로 돌아가리라는 주장이 어느 정도 먹혀들 여지가 있었다. 특히 노동당 좌파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그런 주장을 하면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영국 노동당 정부와 미국의 지미 카터 민주당 정부가 노동계급 저항의 힘을 빼는 데 성공하자, 마가렛 대처와 로날드 레이건이 그들을 대신했다. 1970년대 후반 이후로는 고용주들이 우위에 서기 시작했다.
분노
그러나 그것은 뿌리 깊은 계급적 분노를 유산으로 남겼다. 최근에는 노동계급뿐 아니라 자기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일부 중간계급도 분노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모든 이에게 무상으로 국영주택과 교육을 제공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앞으로 상황이 호전될 거라고 믿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고든 브라운 정부는 또 다시 공공 부문 노동자 임금인상률을 물가상승률 이하로 고정시키려 하며 민간 고용주들에게 똑같이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쉽게 실패할 수 있는 대담한 도박이다.
쉘 유조차 운전자들의 승리, 4월 24일 교사·시간 강사·공무원 노동자 45만 명의 파업으로 노동계급이 힘이 없다는 관념이 도전받고 있다.
심지어 아직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파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지 부시의 영국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경찰이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일부 사람들은 경찰의 진정한 구실 ― 정부와 사유재산의 방어 ― 을 볼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전환점에 대해 얘기해 보자. 2000년대 전반부에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투쟁이 발생했다.
이 운동에 참가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이거나, 노동자가 될 예정이거나 과거에 노동자였다 은퇴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을 사회를 집단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진 노동계급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과거 노조에 가입할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거나 자신을 중간계급으로 여겨온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현실에 직면했다.
사람들은 지배자들이 찬양하는 사회적·경제적 관념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의 리스본 협정이 부결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일랜드 노동계급은 아일랜드 주류 정치인과 언론의 선전 공세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반대표를 던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점령군이 승리하고 있다는 주장도 비슷한 대접을 받고 있다.
지난주 탈레반이 칸다하르 감옥을 공격해 수감자들이 대거 탈주한 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영국 국방장관 데스 브라운은 이런 말을 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고 있습니다. 물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분명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자, 반자본주의자와 반전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정치 상황이 근본적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 엄청나서 압도당하고 수동적으로 대처할 위험도 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저항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이득을 얻으려는 또 다른 세력이 있다.
지난 몇 주 동안 〈데일리 메일〉과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소셜리스트 워커〉처럼 물가 폭등에 관한 기사를 1면에 실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고통의 책임을 이주민들에게 올리고 있다.
좀더 오른쪽에서 파시스트 조직인 영국국민전선(BNP)은 병원에서 폴란드 이주민 임산부가 영국인 임산부의 자리를 뺏고 있다는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폴란드 의사나 나이제리아 간호사들이 영국 임산부의 출산을 돕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 반나찌 시위에 이어 나찌들을 시궁창에 쳐 박을 때까지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쟁저지연합’은 좌파가 다양한 사회계층을 포괄하는 대중 운동을 촉발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앞으로도 ‘테러와의 전쟁’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 반대 운동을 계속 건설해야겠지만, 저항을 확산시킬 수 있는 다른 기회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각종 노동조합들의 투쟁이 대표적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 식량 소요가 발생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가격 폭등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지배자들의 계획에 맞서는 대중 투쟁의 촉매제 구실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전국적으로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 또, 진지한 소수와는 자본주의의 대안 ― 사회주의 ― 에 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파업과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은 영국인 다수를 급진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혁명적 변화로 이끌 수 있는 무궁한 잠재력을 가진 세력이다.
분명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가능성을 현실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