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
〈노동자 연대〉 구독
“후세인은 새로운 히틀러이다”
미국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오사마 빈 라덴에게도 그런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진부한 비유다. 그래서 많은 골수 우익들조차도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담 후세인이 독재자인 것은 맞지만, 후세인의 바트당 정권을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나찌는 독일의 조직 노동계급을 박살낸 40만 명의 돌격대 덕분에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쿠데타로 아랍 민족주의 정부를 전복한 뒤 집권했고 미국 중앙정보국 CIA가 그 쿠데타를 후원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시작됐을 때 독일은 세계 최대 열강 중 하나였다. 반면, 지금 이라크는 10년 넘게 계속된 경제 제재 때문에 제3세계 나라만도 못한 지경이다.
“이라크 공격은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이다”
이라크와 알카에다가 연계돼 있다는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 오사마 빈 라덴이 1991년 걸프전을 반대한 것은 이라크를 공격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계속 주둔했기 때문이다. 알카에다는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바트당 정권을 배격하는 집단이다. 9·11 항공기 납치범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출신이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 중동을 지배하는 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가 커질 것이다. 그런 분노는 대중 투쟁으로 분출하기도 하겠지만, 테러 형태로도 나타날 것이다.
“후세인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야말로 단연 세계 최대의 “대량 살상 무기” 보유국이자 세계 최대의 무기 판매국이다. 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한 적이 있는 유일한 국가다. 베트남 전쟁 때는 화학 무기인 고엽제를 살포했고, 1991년 걸프전 때는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해 이라크의 암 발생률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켰다. 화학 무기 VX 가스를 개발한 것은 미국 육군이었고, 생물 무기 협정을 무산시킨 것도 부시 정부였다.
1980년대 내내 이라크에 생화학 무기를 공급했던 미국이 지금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를 문제삼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지금의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1983∼84년 당시 대통령 특사로 이라크를 방문했다. 그 때 이란과 전쟁중이던 이라크는 “거의 매일” 이란군에게 화학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도 전혀 제지받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이라크에 탄저균과 선페스트 병원균을 제공했다.
미국 국방부는 이라크가 제출한 무기 실태 보고서에서 1980년대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을 삭제한 뒤 이를 유엔으로 보냈다. 미국은 이라크 과학자의 집에서 발견된 농축 우라늄 관련 문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이라크가 유엔 결의안 1441호를 위반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마 미국에게 골치 아픈 증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1991년 이전과 관계된 증거였을 것이다.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보 기관의 한 관리는 미국이 1989년에 약 50킬로그램의 농축 우라늄을 이라크에 넘겨 주는 것을 허가했다고 말했다. 이 사실들은 모두 이라크가 미국의 동맹국이었을 때는 “대량 살상 무기”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후세인은 국제법을 우롱해 왔다”
유엔 결의안을 가장 많이 위반한 나라는 이라크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철수하라는 유엔의 요구를 번번이 무시했다. 이스라엘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든든한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다(이스라엘 국민 1인당 연간 약 5백 달러[약 60만 원]). 국제법의 적용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하면서 국제형사재판소(ICC)나 쿄토의정서 승인을 거부한 것은 바로 부시 정부다. 물론 유엔의 무기 사찰도 받지 않는다.
“전쟁을 통해 중동이 안정화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부시와 블레어의 목표다. 즉, 말 잘 듣는 지도자를 내세워 그가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을 단속하는 것을 돕게 만들고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침략을 통해 다국적 기업들의 힘을 강화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지배자들의 관점에서도, 이것은 매우 위험 부담이 큰 전략이다. 그래서 일부 군 장성들과 외교관들조차 반발하는 것이다. 이 전쟁에 대한 세계적인 분노는 엄청나다.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조차 중동에 혁명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후세인은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설사 이라크가 스커드 미사일을 몇 기 보유하고 있다 해도 그 미사일은 터키 동부나 이스라엘 북부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라크가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재래식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1백50킬로미터다. 오랜 경제 제재는 이라크의 경제뿐 아니라 무기 개발 계획도 망쳐 놓았다. 이라크의 군사 예산은 연간 15억 달러(약 1조 8천6백82억 원)다. 미국의 군사 예산은 그보다 2백64배나 많고 기타 모든 나토 회원국들·중국·러시아·오스트레일리아·일본·한국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다.
“후세인은 자기 국민들에게 위험한 존재이다”
부시와 블레어는 사담 후세인이 1988년 할라브자의 쿠르드 족 수천 명을 독가스로 살해한 예를 들며 후세인은 자국 국민들에게조차 독가스를 사용한 아주 사악한 독재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국은 1921년에 이라크의 쿠르드 족에게 독가스를 사용한 선구자였다. 또,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자국 내 소수 민족인 쿠르드 족을 훨씬 더 잔혹하게 짓밟았다. 1988년 후세인이 쿠르드 족을 학살했을 때, 미국과 영국은 “결정적 증거”가 없다며 후세인을 두둔했다.
지금 이라크 국민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부시와 블레어가 감행하는 대규모 폭격이다. 오직 전쟁 위협이 사라지고 가혹한 경제 제재가 철폐된 뒤에야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에 대항하는 진정 대중적이고 진보적인 야당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석유를 위한 전쟁이 아니다”
이라크의 확인된 석유 매장량은 1천1백20억 배럴(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2위)인데, 아마 미확인 석유가 1천억 배럴쯤 더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라크산 석유는 채굴 비용이 러시아산 석유보다 여섯 배나 싸고, 정제하기도 더 쉽다.
부시 정부의 핵심에는 석유 업계의 로비가 있다. 전에 핼리버튼 사의 이사였던 부통령 딕 체니는 엑손모빌, 셰브론텍사코, 코노코필립스 같은 거대 석유회사의 대표자들과 자주 만난다. 엄청나게 많은 석유를 소비하는 미국은 최근 특히 곤경에 처했다. 국내 비축유가 바닥을 드러내는데 베네수엘라 “파업” 사태가 터져 에너지 난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 러시아의 상대적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노력, 중국의 군사력·경제력이 증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도 세계 지배라는 지정학적 전략의 일부다. 석유 같은 천연 자원은 그런 전략의 한 요소이다.
후세인 제거는 부시가 아니라 이라크 민중 자신의 힘으로
후세인이 악랄한 독재자이기 때문에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부시 전쟁의 옹호자들은 말한다. 그를 제거하고 이라크 민중에게 민주주의를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후세인이 자기 국민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학살한 전력이 있는 독재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를 지원해 온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 CIA는 1968년에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이 일으킨 유혈 쿠데타를 지원했다.
1988년 후세인이 독가스로 쿠르드족을 학살(할라브자 학살)했을 때 미국은 유엔이 후세인을 비난하지 못하도록 방패막이가 돼 줬다. 후세인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는 미국이 아예 전쟁 계획까지 세워 줬다고 〈뉴욕 타임스〉가 지난해 폭로했다.
한 이라크인은 민주주의를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부시의 위선을 이렇게 꼬집었다.
“이라크 민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후세인 정권에 맞서 35년 동안 싸워 왔다. … 후세인이 자기 국민을 탄압하고, 독가스를 사용하고, 쿠르드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들은 지난날 후세인의 후원자였다.”
위선
부시는 남의 나라 민주주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처지가 못 된다. 그는 전 세계 1천만 명 이상의 반전 여론을 무시하고 있다.
부시는 온갖 거짓말을 동원해 전쟁에 대한 미국 국민의 지지를 얻어 내려 하는 한편, 전쟁 반대 시위대의 행진을 불허하고 위협했다. 그런데도 2월 15일 뉴욕에 50만 명이 모여들었다.
부시는 대통령 선거에서 지고도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 선거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였던 동생 젭 부시가 흑인 유권자 수천 명의 투표권을 박탈하고 공화당원을 재판장에 임명해 재검표를 무효화한 덕분이었다.
9·11 뒤 부시는 국내외에서 재판 없이 무기한 구금할 수 있는 조처를 도입했다. 여기에는 관타나모 미군 기지에 억류돼 있는 6백 명 이상의 비미국인들도 포함된다. 부시는 그들의 전쟁 포로(POW) 지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는 재소자가 넘쳐나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재소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로, 전 세계 재소자의 25퍼센트(2백만 명)가 미국에 있다.
국민의 84퍼센트가 전쟁을 반대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있는 영국의 블레어도 민주주의를 들먹일 자격이 없다. 그는 국회의원들이 이번 전쟁을 표결에 부치는 것조차 거부했다.
부시와 블레어 둘 다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터키 등 억압적 정권들을 지원하고 그들에게 무기를 대줘 왔다. 미국은 지난해 4월 미수로 끝난 베네수엘라의 쿠데타를 지원했다. 최근 부시는 1999년 쿠데타로 집권한 파키스탄 독재자 페르베즈 무샤라프에 대한 제재 조처를 유보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
후세인이 잔혹한 독재자인 게 사실이라면 누가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킬 것인가? 그것은 바로 부시가 그토록 무시하는 민중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후세인 정권만큼 억압적인 정권들이 민중 봉기로 타도된 예는 수없이 많다. 1989년 동유럽 혁명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를 무너뜨렸다.
루마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독재 정권 가운데 하나였다. 차우셰스쿠는 어마어마한 수의 보안 경찰을 갖고 있었고, 일당 독재를 유지했으며, 반대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살해했다.
1987년에는 파업중인 노동자들에게 발포해 수백 명을 학살했다. 주민들은 보안 경찰에 보고될까 봐 두려워 이웃이나 친구와 마음 놓고 얘기를 나누지도 못했다.
1989년에 큰 파업 하나가 민중 봉기의 불을 당겼다. 차우셰스쿠가 수도에서 친정부 집회를 소집했을 때 봉기는 수도에까지 번졌다. 친정부 집회에 있던 한 학생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집회에 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연설하기 시작한 순간 첫 줄에서 누군가 이렇게 외쳤죠. ‘차우셰스쿠를 타도하자.’ 그러자 사람들이 ‘차우셰스쿠를 타도하자’고 함께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군대가 출동해 발포하기 시작했지만 저항은 도시 전체로 확대됐다. 사병들은 발포를 거부했다.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독재 정권은 몇 시간 만에 붕괴됐다.
차우셰스쿠는 헬기를 타고 대통령 궁에서 도망치려 했으나, 체포돼 5일 뒤에 처형당했다. 서방의 폭탄이 아니라 루마니아 민중 자신이 정권을 뒤엎었다.
더 근래의 예들도 있다. 미국의 후원을 받아 온 인도네시아 독재자 수하르토가 1998년 민중 봉기로 타도됐다. 학생과 노동자 들이 보안 경찰에 대한 두려움을 잊은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재 타도”를 외쳤다.
수하르토는 사담 후세인만큼이나 악랄한 독재자였다. 그는 1965년 CIA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켜 75만∼1백만 명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았다.
수하르토는 이내 동티모르를 침공하고 점령해, 인구 60만 명인 작은 나라에서 20만 명을 죽였다. 미국은 이 침공을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에도 수하르토는 결국 인도네시아 민중 자신에 의해 타도됐다.
민주주의 정권이 아니라 꼭두각시 정권
미국은 세르비아 사례를 근거로 서방의 폭격이 민주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나토 전쟁으로 악의 화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몰아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1999년 봄 나토의 세르비아 공습은 오히려 밀로셰비치에 대한 국내의 반대를 약화시켰다. 나토의 공습 덕택에 그는 지위를 강화할 수 있었다. 공습이 끝난 뒤에도 밀로셰비치는 여전히 권좌에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반 뒤 광부 파업이 일어났고 이것이 대중 봉기로 발전했다. 성난 1백만 민중은 의회로 몰려갔고 밀로셰비치를 끌어내렸다.
우리는 사담 후세인이 미국의 폭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의해 제거되기를 바란다.
부시는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담 후세인과 그의 핵심들을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처럼 자기 입맛에 맞는 꼭두각시로 바꾸기를 바랄 뿐이다.
김하영
부시 전쟁 옹호자들은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 인들을 학살했다고 비난한다. 이들은 마치 이 전쟁이 사담의 억압으로부터 쿠르드 인들을 해방하기 위한 전쟁인 양 말한다.
쿠르드 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쿠르드 공동체가 기근·박해·추방·폭격으로 황폐화될 때 외면하던 자들이 갑자기 쿠르드 족 해방을 말하는 것은 메스꺼운 위선이다.
1988년에 사담이 이라크 북부 할라브자 마을에 독가스를 사용해 쿠르드 인들을 학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사담의 야만적 학살은 미국의 지지를 받았다. 사담이 쿠르드 인들을 학살하는 동안 아버지 부시는 사담에게 5억 달러의 정부 보조금을`줘 미국산 농산물을 구입하게 했다.
미국은 이란의 회교 혁명 국외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이라크를 방어벽으로 이용했다. 그래서 미국은 사담의 쿠르드 족 학살을 눈감아 줬다.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쿠르드 족의 해방을 말할 때, 우리는 영국 군대가 1920년대에 쿠르드 족의 독립 투쟁을 분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터키는 가장 혹독하게 쿠르드 족을 탄압하고 있다. 터키에는 가장 많은 쿠르드 인들이 살고 있다.(2천5백만 쿠르드 인 가운데 1천3백만 명이 터키에 거주한다.)
터키 정부는 쿠르드 인들의 존재를 철저하게 부정한다. ‘쿠르드’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 자체가 범죄가 된다. 쿠르드 인들은 모국어를 배우거나 자신의 문화를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정부가 쿠르드 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터키와 전쟁을 벌인 적은 없다.
열강의 중동 지배 전략
쿠르드 족은 중동 지역을 휩쓴 제국주의적 팽창의 희생자였다.
제국주의 열강의 중동 분할 정책 때문에 쿠르드 인들은 독립 국가를 건설할 수 없었다.
쿠르드 인들은 다섯 개 나라로 찢어졌다. 터키에 8백만∼1천2백만 명, 이라크에 3백만∼4백만 명, 이란에 6백만 명, 시리아에 1백만 명, 옛 소련 영토에 수십만 명이 흩어져 살아야 했다.
쿠르드 인들은 자신의 삶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고, 끔찍하게 억압당했으며 이등 시민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지난 80년 동안 쿠르드 인들은 이란의 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터키 정부, 이라크의 군주정이나 바트 당에 저항했다.
그 때마다 억압자들은 쿠르드 족의 반란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서방은 억압자들을 지원했다. 서방은 1991년 제2차 걸프전 때도 그랬지만 그 뒤로도 쿠르드 인들의 처지에 냉담했다.
제2차 걸프전 직후 북부 쿠르드 족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아버지 부시 정부는 반란이 성공해 “바그다드의 야수”가 타도될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항의가 빗발칠 때까지 반란군을 보호하려는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은 자신들의 중동 통치 전략이 뒤흔들릴까 봐 쿠르드 족의 독립을 반대하고 있다.
낡은 제국주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강대국들의 야욕 때문에 2천5백만 쿠르드 인들이 끔찍한 희생을 치르고 있다.
따라서 중동에 제국주의 질서를 강요하려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쿠르드 인들을 해방시키기는커녕 상황을 더한층 악화시킬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이나 지역 독재자 들이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가 아니라 이 지역 노동 계급이 강력했을 때 쿠르드 인들도 강력해질 수 있었다.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이란의 쿠르드 인들은 소비에트를 건설했다. 이라크 노동자 운동이 고양됐던 1950년대와 1970년대, 이란 혁명이 일어났던 1979년에 쿠르드 노동자 운동은 성과를 거뒀다.
김인식
기존 의회에 대한 민중의 도전
지난 3월 12일 오전 10시 노동조합, 지역 반전 단체, 무슬림 공동체, 노동당, 녹색당, 기독교 단체 등에서 온 1천5백 명의 대표자들이 런던에서 모인 영국 민중의회는 정부와 의회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대다수 민중의 반전 의사를 표현하는 자리였다.
전쟁저지연합 의장 앤드루 머리 철도노조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민중의회라는 아이디어는 2백만 명이 전쟁에 반대하며 행진한 지난 2월 15일의 역사적 시위 때 나온 겁니다. 그 항의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은 전쟁에 반대할 뿐 아니라 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 분명했어요.”
지난번 하원에서 토니 블레어의 전쟁 노력에 반대하는 표결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국회의원들은 소수의 지지만을 받고 있는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토니 블레어 정부는 민중이 아니라 조지 W 부시와 석유 기업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주류 정치인들과 이들을 뽑은 민중 사이의 간극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벌어져 있다. 민중의회는 민중의 반전 목소리를 드높여 토니 블레어가 부시의 전쟁에 동참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
“의회는 전쟁에 돌입할지 말지를 아직 분명히 결정하지 않았지만 영국 군대의 40퍼센트는 이미 전장에 배치돼 있다. 우리의 의견을 대표하는 의원들을 의회에서 찾을 수 없다면 우리는 민중의회에서 민중 의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 조지 갤러웨이의 말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민중의회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공무원노조(PCS)의 사무총장 마크 서워카는 “이 나라 민중은 이라크와의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견해가 국회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하고 지적했다. 철도노조 위원장 밥 크로우는 “정부가 이 전쟁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리 힘으로 전쟁을 저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하고 말했다.
이 날 민중의회에서는 평화를 위한 선언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선언문에는 영국 정부가 부시의 전쟁 노력을 지지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과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반전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전쟁을 저지하자.” 이것이 ‘평화를 위한 민중의회’의 메시지였다. 민중의회는 영국 전역에 퍼져 있는 반전 분위기를 무시하는 [기존] 영국 의회에 대한 민중의 도전이다.
영국 전쟁저지연합 홈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