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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하의 마르크스주의자들 ②:
트로츠키, 공동전선, 노동자 투쟁

1934년 2월 대형 금융 비리 사건이 터진 뒤에, 프랑스 파시스트들이 의회를 공격했다. 중도좌파 정권이 몰락하고, 강경 우파 정권이 들어섰다. 파시스트의 권력 장악이 임박한 듯했다. 파시스트 도당은 수만 명이나 됐지만, 독일과 달리 내분에 휩싸여 있었다.

당시 러시아 혁명가인 레온 트로츠키는 1933년부터 1935년까지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파시즘이 프랑스를 위협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프랑스 지배자들은 19세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의 “강한 국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 집권한 우익 정권은 너무 취약해서 “강한 국가”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파시스트가 점점 득세할 위험이 있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좌파도 분열해 있었다. 사회당과 공산당은 [파시즘의] 위협에 맞서 단결된 운동을 건설하기를 거부했다. 다행스럽게도 기층 조합원들이 파시스트들의 의회 공격에 맞대응했다. 기층 조합원들의 압력을 받은 주요 노총이 하루 파업을 선언했다. 바로 그날 파리에서는 두 개의 시위가 벌어졌는데, 하나는 사회당과 노조 지도자들이 이끌었고, 다른 하나는 공산당이 이끌었다. 행진 도중에 시위대들이 합류해 하나의 행진 대열을 이루었고, 두 시위의 지도부는 못마땅했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로츠키는 즉각 파시스트에 맞서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파시스트의 공격에 대처할 노동자 방위대를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방위대는 음모적인 조직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그들의 대중 정당 그리고 노조에서 선발된 “수만 아니 수십만의 투사들”로 이뤄져야 했다.

1934년에 프랑스 노동계급은 반파시스트 투쟁에서 용기를 얻어서 더 나아가 경제 문제들에 대해서도 공세를 취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고 공장과 조선소 들을 점거했다.

행동강령

그러자 트로츠키는 1934년 6월에 프랑스 행동강령을 작성했다. 행동강령은 당시 투쟁 요구들에서 우러나온 매우 구체적인 것이었고 나날의 사건들에 깊이 몰두한 사람이 쓴 것이었다. 트로츠키는 10여 년 전 공산주의인터내셔널에서 벌어진 토론들을 바탕으로 교훈을 이끌어냈다. 행동강령은 “이행기 요구” ― 투쟁의 당면 요구에서 비롯하지만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 건설로 나아갈 수 있는 요구들 ― 를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려 한 스탈린의 시도에 맞춰, 프랑스 공산당은 사회당을 공격하던 태도를 바꿔 주요 중간계급 정당인 급진당, 사회당과 동맹을 맺으려 했다. 1935년 6월에 세 정당이 선거 협정을 맺었다. 이른바 민중전선이다. 파시즘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트로츠키는 이제 급진당과 연합하게 되면 좌익 정당들이 파업할 수도, 파시스트와 대결할 수도, 그들의 “명망 있는” 새 동맹자들을 소외시킬 수 있는 행동도 일절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에는 단결을 거부하는 종파적 정책 때문에 파시즘을 물리치는 데 필요한 대중 동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민중전선도 대중 동원에 “브레이크”를 거는 비슷한 구실을 했다. 트로츠키는 직접 선출되고 “실제 투쟁”에 바탕을 두는 지역 실행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민중전선은 1936년 5월 선거 승리로 정권을 잡았다. 기층 노동조합원들은 점거와 파업 물결로 호응했다. 트로츠키는 “프랑스 혁명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중전선 지도자들은 파업을 비난했다. 주요 좌파 정당들은 모두 노동계급보다는 정부에 충성했다.

투쟁이 고양되자 지배자들은 공포에 떨었고 파업 물결을 끝내기 위해서 온갖 양보를 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파업이 잦아들자 한층 단호한 조처를 요구했다. 급진당은 민중전선에서 탈퇴해 우익들과 동맹을 맺고 정부를 구성했다. 전에는 온건한 대응을 주장했던 공산당도 이제 지배자들의 공격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좌파들은 하루 총파업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미 노동계급의 사기가 꺾인 상태여서 그 파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역사에 필연적인 것은 없다. 1934~36년에 혁명은 프랑스에서 의제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혁명을 실현시킬 전략을 효과적으로 주장할 대중적인 정치 세력이 없었다. 인류는 그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를 터였다.

출처 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번역 정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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