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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동자가 말하는, 언론이 말하지 않는 진실:
현대차지부 선거 결과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선거에서 중도·실리주의를 내세운 기호 1번 이경훈 후보가 당선했다. 이경훈 당선자는 “잦은 파업으로 노동귀족으로 매도당하고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는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겠다”면서, 동시에 “고용안정은 반드시 지켜내고, 복지혜택 등 성과물도 되찾겠다”고 말했다. 그는 △임단협 연내 타결 △월급제 도입 △주간 2교대제 타결 △상여금 50퍼센트 인상 △평생고용안정 보장 선언 △정년 연장 △신규인력 충원과 구조조정 대응 △1사1노조 건설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선거 결과를 두고 보수 언론들은 현대차 노동자들이 “파업 만능주의에 반발”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를 그렇게 일면적으로만 볼 수 없다.

7번이나 낙선해 온 이경훈 후보는 당선을 위해 우파적 색깔을 상당 부분 탈색해야 했고, 노골적인 우파적 주장을 삼가며 ‘참민주’라고 자신을 포장했다. 일부 민주파 활동가들과 연합하기도 했으며 민주노동당 전 최고위원이 이경훈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경훈 후보는 절반을 조금 넘는 지지를 받았을 뿐이고, 현대차의 핵심 사업장인 울산 공장에서는 민주파인 권오일 후보가 좀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권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의 다수가 90년대 이후 입사한 젊은 노동자라는 것도 인상적이다.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에서는 전투적 좌파 후보가 의장으로 당선했다.

“투쟁 일변도, 정치파업 반대” “정파주의 종식” 등을 더 노골적으로 내세운 친사용자 쪽 후보(기호 2번 홍성봉)는 비록 작은 표차이긴 했지만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중도·실리주의 후보가 당선한 결과는 현 정세와 노동자들의 사기를 반영한다. 현대차가 올 상반기에 1조 3백68억 원에 달하는 큰 순이익을 거둔 상황에서, 당장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절박감보다 경제적 실익을 챙겨야 한다는 정서가 컸던 것 같다.

여기에 전임 민주파 지도부들의 거듭된 투쟁 회피와 배신, 비리 의혹 등이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지게 한 것도 한몫했다.

올해에도 가장 전투적·좌파적으로 알려진 윤해모 집행부가 무책임하게 투쟁을 회피하고 중도 사퇴해 버렸다. 윤해모 집행부의 사퇴는 당시 쌍용차 파업에 대한 연대 확산에 찬물을 끼얹는 구실도 했다.

요컨대, 지난 15년간 민주파에 속한 현장 조직들이 엎치락뒤치락 거리며 번갈아 지도부를 맡았지만, 이들 모두가 투쟁과 도덕성에 신뢰를 잃으면서 실용주의가 약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민주파 후보들(자주파 권오일 후보, 중앙파 김홍규 후보)과 활동가들은 그동안 여러 쟁점에서 약점을 보여 왔다.

예컨대, 이헌구 전 노조위원장이 파업 무마용으로 사측으로부터 2억 원을 받았는데도, 대의원대회에서 그를 징계하자는 안조차 상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 집행부의 도덕성 문제를 제기하며 각종 부패와 비리 척결을 내세운 우파 후보가 지지 받을 수 있었다.

민주파 후보들은 모두 “투쟁 일변도는 안 된다”는 우파들의 비난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특히 정치파업을 방어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한미FTA 저지 파업이나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파업은 조합원들의 일자리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중요했고, 전 국민적 요구를 내건 파업이었다는 것을 주장하며 정치투쟁을 옹호하는 주장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정치파업을 맹비난한 친사용자 쪽 홍성봉 후보는 “조합원들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며 신종플루의 심각성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민주파 활동가들은 타미플루나 치료제를 누가 갖고 있는지 되묻고, 조합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정치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어야 한다.

홍성봉 후보가 “정규직 양보론 때문에 우리 임금이 깎인다”며 금속노조 무용론을 제기했을 때도, 민주파 후보들은 잘 반박하지 못했다. 산별노조의 완성을 위해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임금을 끌어올리려면 대기업·정규직의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잘못된 논리를 받아들이다 보니,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금속노조의 위신 추락도 표심에 반영됐다. 금속노조 지도부가 지난 몇 년 동안 중요한 투쟁기회를 유실하고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어 오면서, 금속노조로 단결해서 고용불안과 임금·노동조건 후퇴를 막아낼 수 있는가 하는 회의감이 확대돼 왔다.

이경훈 당선자는 “쌍용차 사태에 대한 개입에서 드러났듯 무기력한 금속노조와 민노총의 지도력에 실망한 조합원들이 온건·실리노선을 택한 것”이라며 “쌍용차 사태의 교훈은 ‘우리의 고용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거 직후 보수 언론들은 “진짜 실리노선을 추구하겠다면 민노총과 금속노조에서 탈퇴부터 해야 한다”(〈조선일보〉)거나 “고질적인 파업병부터 확실하게 고쳐야 한다”(〈동아일보〉)고 악선동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출을 통해 키워 놓은 거품이 꺼지면 또다시 경기가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단결해서 싸우지 않는다면 일자리와 ‘실리’마저 지켜낼 수 없을 것이다.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 전가와 구조조정, 노동법 개악 등에 맞서는 정치투쟁 없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삶과 미래를 지켜낼 수 있겠는가.

따라서 “투쟁보다 안정”을 통해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키겠다는 것 자체가 이경훈 당선자에게는 딜레마다.

이경훈 당선자가 투쟁 남발을 피하겠다고 했지만, 〈조선일보〉조차 지적했듯이 신임 집행부가 고용안정과 권익 향상을 강조한 이상 “복지 확대를 놓고 (그것을 거부하는 사측과) 대립할” 가능성이 있다.

경제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이경훈 집행부의 실리주의는 실익을 챙겨주지 못하게 될 수 있고, 그러면 곳곳에서 불만이 표출될 수 있다.

따라서 민주파 활동가들은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자신들의 약점들을 극복하며 ‘고통분담론’, ‘정치파업 비난’, ‘정규직 양보론’ 등에 맞선 정치적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이경훈 집행부가 고용 안정·완전월급제·1사 1노조 등의 공약을 지키도록 좌파적·투쟁적 압력을 제기하고 집행부의 ‘중도·실리주의’가 막상 ‘실리’를 가져오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해 현장조합원들 속에서 투쟁을 건설하며 좌파적 대안을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