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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신당이 아닌 좌파적 대안이 필요하다

전임 정부들처럼 노무현도 위기 관리를 위해 자신의 당을 만들려 하고 있다.

김영삼은 1995년 12월에 민자당을 신한국당으로 바꿨다. 김대중도 2000년 총선을 앞두고는 국민회의를 새천년민주당으로 만들었다. 군부 독재자인 노태우도 1990년에 3당 합당을 통해 민정당을 민자당으로 바꿨다.

그런데 노무현은 전임 정부보다 훨씬 일찍 자신의 당을 만들려 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기반이 불안정하고 협소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지만, 대선 동안 민주당과 거리를 두는 척해야 했다. 김대중이 워낙 인기가 없었던 터라 그와 차별을 둬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이 선거에서 승리하자 민주당 신주류와 구주류는 노무현 정권이 ‘새 정권’이냐 아니면 ‘정권 재창출’이냐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노무현은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신주류처럼 말하고 구주류처럼 행동하는 방식으로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4월 24일 재보선에서 전패했다. 신주류들은 민주당 간판으로는 도저히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민주당 내에서 노무현의 지위도 불확실했다. 구주류는 국정원장 임명 과정에서 노무현과 날카롭게 대립했다. 노무현이 때로 대중에 직접 호소할 수도 있겠지만(검찰 인사 문제와 KBS 사장 임명 문제에서 노무현이 보인 포퓰리즘적 방식이 그런 경우다), 이것은 오히려 대중의 기대감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노무현의 가장 중요한 계급적 기반은 상층 중간 계급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 권력의 수반이 된 이상 그는 이 사회의 지배 계급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노무현이 미국에서 보인 행태는 이것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민주당 신주류와 구주류는 신당 창당을 둘러싸고 살벌하게 권력 쟁투를 벌이고 있다. 신당 추진 주체와 인적 청산 대상을 놓고 갈등이 첨예하다.

신주류는 인적 청산 범위를 놓고 분열해 있다. 신기남과 천정배 등 강경파는 개혁신당(“거를 것은 걸러져야 한다”)을 주장하는 데 반해, 김근태 등 온건파는 통합신당(“민주당의 분당은 막아야 한다”)을 옹호한다.

게다가 신당 참가자들의 면면은 신당이 변죽만 요란하게 울리다 노무현 색채가 좀더 가미된 ‘도로 민주당’(당명만 바뀐)이 될 가능성이 클 것임을 시사한다. 민주당 외곽에 있는 일부 노무현 지지 개혁 세력을 얼마간 끌어들인다 해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성싶다.

노무현 신당의 운명

신당의 운명은 노무현의 운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노무현에 대한 호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래도 우리 사회가 뭔가 개혁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낙관적 관측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노무현과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밀월 관계를 유지할 것 같지 않다. 기대감 때문에 대중은 노무현 정부에 이런저런 요구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밀월을 깨뜨려 투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벌써부터 날카로운 모순이 생겨나고 있다. 노무현의 이라크 전쟁 지지는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 사이에 회복이 쉽지 않은 갈등을 낳았다. 화물 노동자들의 파업은 노무현 정부의 취약성과 위선을 밝히 드러냈다.

게다가 민주당은 국회에서 소수파다. 노무현 팀은 국가 관료 상층부의 일부만을 장악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노무현이 내뱉은 수많은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지난해 말 MBC ‘100분 토론’에서 개혁국민정당의 유시민도 노무현의 개혁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바로 이 때문에 개혁신당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유시민은 “개혁 세력이 승리한 지난 대선은 전반전이었습니다. … 후반전인 17대 총선에서 패배하면 대선 승리의 의미는 퇴색하고 말 것입니다.” 하고 주장했다(‘범개혁세력 단일정당 건설을 위한 긴급 토론회’).

따라서 “개혁 연합 또는 진보 더하기 리버럴의 다수파 연합이 확고히 만들어[져야 한다.]”(〈인물과 사상〉 26호, 79쪽.)

이것을 이끌 주체는 민주당 개혁 세력, 한나라당 개혁파, 40대와 50대의 시민사회 지도자들, 개혁당과 개별적인 개혁 정치인들이다(유시민, ‘범개혁세력 단일정당 건설을 위한 긴급 토론회’).

민주당의 정동영은 개혁 연합에 민주노동당도 포함시켰다. 옳게도, 민주노동당은 “각자 갈 길을 가면 된다”며 연합 제휴를 거부했다.

이들은 보수파에 대항하는 범개혁 세력 결집을 말하고 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보수파를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 등의 보수파가 개혁에 반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노무현이 우경화하도록 강하게 압력을 넣고 있다.

그러나 신주류의 리더격인 정동영이 구주류의 대부인 권노갑의 정치 후원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미심쩍다. 정동영은 한국군의 이라크 전쟁 파병을 찬성했다.

한나라당 내 개혁파는 “한나라당이니까 우리가 개혁파라고 목소리를 낼 수 있지, 막상 민주당이나 개혁신당에 가면 오히려 오른쪽으로 몰리지 않겠느냐”(〈한겨레〉 5월 6일치)며, 개혁신당 참여를 꺼리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압력

더 중요하게는, 단지 보수파만이 노무현 개혁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노무현 개혁 자체의 한계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반발도 존재한다.

지난해 대선 때 노무현 우경화를 변호했던 사람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들은 지금은 ‘소수파 정권의 한계’를 말한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상당수 사람들이 노무현과 그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보다 왼쪽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라크 전쟁 파병 문제, 사기업화, 공무원노조 합법화, 국가보안법 폐지(또는 개정) 등.

바로 이런 대중의 개혁 열망과 노무현 정부의 보수적 한계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상태와 관련 있다. 노무현은 세계 경제가 침체로 미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집권했다.

경제가 성장할 때에는 개혁으로 가는 길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부진한 상태에 빠질 때는 오로지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투쟁을 통해서만 개혁으로 가는 길이 가능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런 방식을 완강히 거부한다. 따라서 노무현과 그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은 노동 대중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다.

요컨대, 노무현 개혁은 오른쪽에서는 너무 급진적이라고 비판받는 한편, 왼쪽에서는 너무 더디고 온건하다고 비판받고 있다.

‘범개혁파들’은 주로 오른쪽의 개혁 제동 위협을 내세워 왼쪽의 비판을 단속하려 한다. 유시민은 민주노동당의 ‘무상교육, 무상의료’ 공약이 현실 불가능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노무현은 왼쪽의 비판을 이용해 간혹 오른쪽을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그랬듯이, 최종 종착역은 우파의 품이 될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국가와 자본의 매우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사실, ‘범개혁파들’의 ‘개혁’이라는 것도 기껏해야 정치 개혁에 한정돼 있다. 사회 개혁 프로그램은 별로 갖고 있지 않다. 정치 개혁 가운데 그나마 제도 개혁(선거법 개정이나 국가보안법 폐지)이나 관행 개선(부패 청산)은 둘째 치고 개혁의 하위 범주인 인적 청산조차 구주류의 반발에 밀려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미래를 준비하기

지금 노동자들의 머리 속에는 많은 모순이 존재한다. 한나라당 등 우파에 대한 증오 때문에 일부 노동자들은 노무현에게 시간을 주자고 말할 수도 있다. 또, 어떤 노동자들은 노무현의 지도력을 지지하거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 있다.

이렇듯 노동자들의 의식은 혼재돼 있다. 노무현을 믿는다고 말하는 노동자들, 노무현에 대해 우려하는 노동자들, 노무현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의식은 서로 겹친다. 노무현을 믿는다고 말하다가도 이라크 파병 같은 특정한 쟁점에서는 두번째 범주로 옮아갈 수 있다.

대중의 의식이 모순돼 있고, 노무현을 믿지만 동시에 불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런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주장과 행동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와 노무현 정부 사이의 긴장이 언제 어떻게 결정적으로 터져나올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변화를 원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변화를 위한 투쟁을 억누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논리의 모순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현실 세계의 모순이다. 다시 말해, 한국 경제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진다면 노무현 개혁은 파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중 속에서 좌파적 대안의 필요성이 제기될 것이다.

지금부터 미래에 다가올 기회를 부여잡을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이것이 뜻하는 바는, 노무현에 대한 대중의 환상을 추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화물 노동자 파업은 일부 노동자들이 노무현에 기대지 않고 그에 맞서 싸울 태세가 돼 있음을, 그리고 그럴 때만 실질적 양보를 따낼 수 있음을 보여 줬다.

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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