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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보호법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수단

DJ DOC의 5집 〈The Life … DOC BLUES〉는 5월 30일 발매되자마자 청소년 유해매체로 결정되어 수록곡 전체가 방송금지됐다. 경찰을 비하하는 등의 직설적 사회고발 내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행물을 포함한 온갖 매체를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할 수 있는 청소년보호법이 처벌 근거가 되었다. 정상적인 상식으로 사회를 고발하는 것이 청소년 보호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청소년이 사회에서 격리돼 꿈만 먹고 사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면 말이다.

청소년보호법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청소년 보호가 아니라 사회 기강 잡기 성격이 강했다. 이 법은 1996년부터 논의가 되다가 1997년 3월 국회의원 정동채, 박종웅에 의해 의회 입법 형식으로 통과돼 그 해 7월부터 실시됐다.

1997년은 3월은 노동법 날치기 통과 반대를 위한 1월 대중파업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이고 연이은 한보, 기아부도 사태로 정치, 사회적으로 김영삼 정부에게 매우 불리한 시기였다. 이미 미성년자 보호법이나 형법상의 '풍속을 해하는 죄'등이 있었음에도 청소년보호법은 이 법들보다 더 강력한 규제 조항과 광범위한 적용 대상을 갖고 탄생했다. 청소년보호법 이전에 존재했던 미성년자보호법도 박정희 군부정권이 막 집권했던 1961년 제정되었다.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이 법의 위헌적 요소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청소년보호법은 "제2의 국가보안법" 혹은 "성인보호법"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억압 수단으로 이용돼 왔기 때문이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법이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을 인권을 지닌 자율적 존재로 보기보다 처벌과, 규제, 보호의 대상으로 본다.

청소년보호법을 관리·감독하는 청소년보호위원회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래의 글은 이 법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준다.

솔직히 청보위는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면서 학생 체벌을 보고 가만히 있고 … 얼마전에 TV를 보니까 술·담배를 하는 학생들을 처벌하겠다고 강지원(청보위 위원장)씨가 나와서 얘기 하던데 그건 잘못된 겁니다. 무조건 처벌 위주로 가는 청소년보호는 옳지 못합니다. 물론 저는 모범생이고 양아치들을 보면 혼좀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청소년보호법의 재개정안에는 청소년도 처벌하는 쌍벌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1) 유해업소에 출입하거나 술·담배를 핀 학생들에게 금주·금연교육이나 사회봉사명령을 내린다는 것이 골자이다. 문화개혁시민연대의 이동연씨는 청소년보호법의 인권침해적 요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청소년보호법은 대체적으로 10대들의 신체를 구속하는 법으로 기능해왔다. 흡연, 음주 단속에서부터 red zone과 같은 금지구역의 구획, PC방, 노래방, 비디오방과 같은 소비공간에 대한 제한된 출입 등 기존의 형법이나 미성년자보호법보다 훨씬 포괄적 규제를 하고 있다.2)

청소년보호법 시행 후 1998년 12월 10일부터 1999년 2월 6일까지 겨우 2달 사이에 4만 6백 10여명이 적발되었는데 이중 약 78%에 해당하는 31,635명이 청소년이었다.3)

청소년보호법은 평범한 다수의 청소년을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되면서 학교근처에서 서성이는 학생들에 대한 불심검문과 가방뒤지기가 강화됐다. 단지 담배와 만화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량·비행청소년으로 찍혀 사회봉사명령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청소년들을 체계적으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한다. 일명 레드 존이라고 불리는 청소년 통행제한구역이 선포되고 노래방과 게임방같은 최소한의 협소한 놀이 공간조차 10시 이후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신림동 같은 곳에 가서 순대먹고 쇼핑하고 커피마시는 것조차 이제는 청소년들에게는 불법적인 행위이다. 심지어 이 법은 공연장이나 극장 같은 곳도 유해업소로 판정해 청소년의 출입을 규제할 수 있다.

이렇게 청소년보호법은 그나마 청소년들이 갈 만한 몇 안되는 곳도 금지해서 청소년들을 더욱 거리고 내몰고 있다. 인천호프집 화재 사건이 보여주듯이 갈 곳이 없어진 청소년들은 빈 창고나 옥상, 공터, 안전하지 않은 술집처럼 더 음성적이고 열악한 곳으로 모여들 것이다. 개정된 청소년보호법의 청소년 연령규정이 19세로 상향조정되어 대학생도 술마시다가 적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청소년보호법은 단순히 청소년의 인권만 침해하는 법이 아니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심증만 있으면 모든 표현물을 수거·판매 및 배포금지·소각할 수 있다.

청소년보호법 제정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강지원 검사는 《나쁜 아이들은 없다》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해 매체, 문자를 최우선적으로 다루어야한다. TV, PC통신, 음반, 비디오, 전자오락, 영화, 공연, 만화, 화보, 사진, 도서, 광고 등등을 망라해 검토해야 한다. … 문제는 법의 집행력이다. 언제는 법이 없어서 이 나라 질서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던가. 아니다. 지금도 여기저기 비슷한 법규들은 얼마든지 있다. … 새로운 법은 집행력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것은 이 법의 제정 의도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4)

청소년보호법에서 규정하는 청소년 유해 매체라는 심의기준 자체가 모호하기 그지없다. 제7조 청소년 유해 매체물 개별 심의기준을 보면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한 것, 성행위와 관련하여 그 방법·감정·음성 등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 등 대부분이 성적 보수주의를 부추기는 자의적 기준들이다. 어떤 것이 음란한 지를 판단하는 것조차 국무총리 직속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시민 30명의 서명만 받으면 된다.

심지어 이 법은 동성애적 관계를 묘사하는 것도 처벌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억압적이다. 이 법이 통과되자 마자 가장 먼저 만화책 1700여 종 510만여 권이 판매금지됐고 조피디의 앨범 〈조 PD 인 스타덤〉과 김진표의 〈추락〉이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되었다. 이희재 씨의 〈간판스타〉처럼 성묘사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만화도 술집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됐다.

청소년보호법은 문화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성적 보수주의를 부추김으로써 사회적 약자인 성적 소수자들과 성에 대해 잘 모르는 청소년들을 더욱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게다가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들의 정치적·사회적 관심도 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이 법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의심하게 만든다.

청소년보호법 7조 개별 심의기준 가운데 하나인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국가와 사회존립의 기본체제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이라는 규정을 보면 마치 국가보안법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실례로 1997년 8월 진보운동단체인 서울 민주 청년단체 협의회의 계간 회원지 〈서울청년〉 8호가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고시됐다. 대선자금 공개와 김영삼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것이 근거였다.

청소년보호법에 청소년 문화단체를 지원하는 규정이 있고 청소년을 고용하는 매춘업소나 술집등을 처벌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법을 찬성하는 일부 교사나 단체도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빨갱이라는 명분만으로 반대자를 처벌했듯이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사회적 기강을 잡기위해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GNP 대비 교육예산을 늘리기는 커녕 해마다 0.1%씩 줄이기로한 정부가 얼마나 청소년들에게 투자를 할 것인지는 굳이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무리 이 법이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처벌이나 단속강화로 청소년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어린이 자살과 청소년 자살증가률은 성인자살증가율의 7∼8배에 이르고 있다. 학교에서 공부 외에 동아리 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가라고 물어본 한 설문에서 38.6%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5)

공교육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자립형 사립학교같은 서열화정책을 도입한다면 청소년들의 소외와 좌절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자율성을 기르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청소년보호법은 폐지돼야 마땅하다.

1) 〈한겨레21〉 2000년 8월 8일자

2) 문화개혁시민연대 자료집

3) 문화개혁시민연대 자료집 중 고길섶씨가 쓴 〈청소년보호법은 폐지되어야한다〉에서

4) 강지원 검사는 최근 문화관광부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위상을 놓고 독립기관으로 할 것인가 문화관광부 소속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파워게임을 벌이다 사표를 내놓았다. 처벌과 규제위주의 청소년보호법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청보위를 더 강화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5) 사단법인 한국기독교 청소년 선교회 "10대청소년의 의식과 삶에 관한 조사보고서" 조사기간:97.1.1-9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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