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한나라당을 패퇴시켜야, 문제는 누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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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전부터 이명박의 친서민 정책이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실 친서민 중도 실용은 애초 민주당의 브랜드였다(물론 실질적이기보다는 수사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이명박은 민주당의 병기고에서 무기를 슬쩍 훔쳐 민주당의 중원을 장악하겠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정책들이 밑에서부터 저항과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에 무작정 밀고 나갈 수도 없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통치 전략의 본질적 전환(“국정 운영 쇄신”)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전두환 정부 시절의 일시적인 ‘유화 정책’을 흉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명박의 지지율 회복이 매우 모순돼 있고 그 약발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최근 한 여론조사는 우리의 주장을 입증해 준다. 14일에 〈미디어오늘〉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한 여론 조사에서 이명박의 지지율은 33.0퍼센트로 나타났다(이 기관이 여드레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 때의 지지율은 44.6퍼센트였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촛불항쟁 이후 지속되는 3중의 위기 ― 경제 문제, 민주주의 문제, 남북 문제 ― 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의 지지율이‘반짝’ 상승 뒤에 바닥을 긁는 형국이 될 공산이 큰 까닭이다.
경제 상황과 흡사하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운명은 경제 상황과 깊이 연동돼 있다.
세계 주요 경제들은 여전히 1930년대 이후 최대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케인스주의적 치료약인 국가자본주의를 복용(대규모 구제 금융 투입)해 간신히 상황을 진정시키고 있을 뿐이다. 지배자들은 금융 자본가와 산업 자본가 들에게 막대한 돈을 지원하면서 우리에게 “고통분담”을 설교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근본적 해결책이 못 된다. 1980년대에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금융 거품이 낳은 문제들을 일시적으로 극복했지만 1990년대 후반에 더 큰 금융 거품을 낳았다. 그리고 2002∼2007년에 더 큰 거품을 낳았다. 그때마다 체제 중심부의 평균 채무 수준은 더 늘어났다.
현재 주요 경제의 지배자들이 1930년대 규모의 위기를 피하려고 더 위험한 거품을 만들어내는 국가자본주의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지배자들의 선택지가 매우 한정돼 있고, 무엇보다 미래가 매우 불확실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이 낳는 모순
한국의 지표상 경제 ‘회복’도 국가 개입을 통해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대응책은 조만간 이중의 충격으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
첫째, 정부가 공공지출 삭감 등으로 재정적자를 만회하려는 데 따르는 충격이다. 이미 교육 예산, 비정규직 관련 예산, 저소득층 월세 지원 등이 지배계급 공세의 제물이 됐다.
이명박 정부가 공무원노조의 통합과 특히 민주노총 가입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도 이와 관계있다. 국가 권력 내부에서 거대한 노동조합이 등장한 것에 위기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장차 공공 부문 공격(가령, 연금 혜택 축소)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거라는 걱정 때문이다. 진보진영은 정부의 공무원 노동조합 탄압에 정치적으로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둘째, 경쟁력 하락 때문에 생긴 수출 기업의 위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벤 버냉키는 사실상 한국에 원화절상(환율 하락) 압력을 넣었다. 환율 효과에 기대 수출을 늘려 경제 위기를 진정시켜 온 한국 경제에 큰 압박이 될 것이다.
이런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지배계급은 대중의 관심을 경제 위기에서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술책을 부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동 대상 성범죄나 마약 범죄를 문제 삼아 도덕적 공포심을 조장하거나, 이주 노동자 범죄를 뻥튀기해 노동자 계급을 이간 붙이는 것이다. 진보진영은 이런 지배계급의 이간책에 대응해 경제 위기 부담에 맞선 노동자의 저항을 건설해야 한다.
물론 한국이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는 국가로 꼽히는 상황 탓에 많은 사람들이 당장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관망’하는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최근 이명박의 지지율 회복도 경제가 회복할 거란 기대감에서 비롯한 ‘좀더 지켜보자’는 정서 덕분인 듯하다.
그러나 경제 하강의 완화가 어마어마한 국가 재정 투입 덕분이기 때문에 거품이 거대하게 부풀어 있고(특히 부동산) 그 결과 노동자·서민의 가계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이런 현실 때문에 이명박의 친서민 중도 실용 정책이 진정성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다수는 여전히 이명박을 증오한다. 어떻게든 이명박 정부의 공세를 저지하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10·28 재보선이 그런 심경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우리도 한나라당을 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그 일을 하느냐다.
진보 후보들의 선거적 돌파는 현 국면에서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반민주적 탄압에 맞서는 운동들의 사기를 드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진보 후보에 지지를 보내는 까닭이다.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해서는 안 돼
그런데 안산 상록을 선거구에서 논의되는 임종인 후보와 민주당 후보의 단일화는 몹시 께름칙하다. 민주당 후보가 단일 후보라도 되는 날이면 임종인 후보를 통해 이루고자 한 진보진영의 선거 돌파구 마련은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사실,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하는 것을 가장 단호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분명하게 임종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임종인 후보의 후보 단일화 시도는 가장 분명한 지지자들을 실망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임종인 후보만이 아니라 수원 장안, 경남 양산, 충북 등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진보 후보들이 흔들림 없이 마지막까지 선거 레이스를 완주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민주당이 절대 반MB의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반MB 공세를 막아내는 방탄유리가 아니라 비 오는 날 찢어진 우산 정도밖에 도움이 안 된다. 게다가 때로 늑대의 이빨보다 여우의 꼬리가 더 무섭다고, 언론악법이나 비정규직법 개악 등에서 보듯이 민주당은 투쟁의 손발을 묶거나 뒤통수를 치기 일쑤였다. 또, 민주당은 하나의 정당으로서 전쟁과 한국군 파병에 반대한 적이 없었다 등등.
현실이 이런데도 진보진영 내에는 민주당과 후보를 단일화하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아직 ‘민주대연합’이라는 조직 형식이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상당수 시민단체들과 자주파들의 정치적 방향은 그리로 향하는 느낌이다. 후보 단일화는 일종의 ‘민주소연합’이라 할 수 있다.
〈민중의소리〉(10월 15일치)는 “민주당은 말로는 ‘모든 지역에서 후보단일화 노력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후보 단일화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기득권 포기 결단을 촉구한 것이지만, 어쨌든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하라는 것이다.
일부 자주파 인사는 ‘진보정당의 독자성과 민주당과 연대연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애쓴다. 이른바, 진보정당이 당선 가능한 “전략 지역”을 선정해 힘을 집중하되,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이라는 원칙을 간단히 무시하는 자주파의 실용주의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심지어 정치 거간꾼 노릇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보진영이 이번 선거에서 안산 상록을을 얻는 대가로 다른 선거구들에서 진보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는 식이다. 선거 참여 목적과 대의는 온데간데없이 표 계산만 하는 꼴이다. 때로 떳떳하지 못한 승리보다 명예로운 패배가 진보적 사회 변화의 집을 짓는 데서 백 배, 천 배 단단한 벽돌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연립정부를 매개로 민주대연합을 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들린다. 이를테면 민주당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는 대신 진보정당이 서울시 운영에 참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진보 인사의 지방 정부 입각을 통해 한국 사회나 국가, 심지어 서울시의 성격을 바꿀 수 없다. 이런 식의 연정은 진보정당이 지방정부를 부분적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이 지방정부에 부분적으로 정복당하는 것이 될 것이다. 진정한 사회 개혁은 일부 진보적 각료들을 통해 은밀히 들여올 수 없다. 무엇보다 계급 투쟁을 통해 사회 개혁을 쟁취할 때만이 진정 사회의 근본적 변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다시 한 번 진보 후보들이 중도 사퇴하지 말고 진보적 대의를 당당하게 선전하기를 바란다. 지금 이 시간도 역투하고 있을 진보 후보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