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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투쟁을 건설하기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계경제가 가파른 하강세를 벗어난 듯하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은행들을 구제하고, 막대한 돈을 시장에 퍼붓고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 하락을 막기 위해 지출을 늘린 덕분이다.

그러나 IMF는 낙관주의에 대해 경고한다. “전진에도 불구하고, 회복 속도는 더디고 꽤 시간이 걸릴 것이며 실업을 줄이기에는 불충분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간에 활력을 급속하게 회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실상 부분적이고 일시적이다.”

각국 정부들이 지난해 9월 미국 피츠버그 G20 정상회담에서 경기 부양책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한 것은, “더블 딥” 침체, 곧 국가 지원의 버팀목이 사라지면 경제가 다시 붕괴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1월 초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11년 만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것도 ‘출구 전략’ 논의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의 손상은 회복세 유지를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이다. IMF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은행들이 떠안고 있는 손실이 2조 8천억 달러라고 추정한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여전히 국가 지원에 의존할 것이고 신규 대출을 꺼릴 것이다. 반면, 평범한 가정들은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고(지난해 말 한국 가계부채 총액은 7백조 원가량이다) 이를 줄이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소비 수요가 앞으로도 취약할 것이라는 뜻이다.

세계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강화되는 공공 지출 삭감 요구들은 근본에서 위기의 대가를 평범한 노동계급에게 떠넘기려는 시도다. 이를 둘러싼 투쟁들이 앞으로 정치를 좌우할 것 같다.

위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파산했다. 그러나 지배계급에게는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대안적인 이데올로기적·정치적 틀이 없다. 그래서 지배계급 분파들은 신자유주의를 더 급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 공화당 우파가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에 광분하며 누더기로 만든 것이 그 예다.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 복지 축소, 기업 구조조정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지방선거를 의식해 공공 부문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은 선거 뒤로 미뤄질 공산이 있지만, 그 공격 계획은 이미 결정돼 있다).

한편, 경제 위기와 미국 헤게모니의 상대적 약화 때문에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갈등이 증대해 왔다. 이번 불황이 보호주의 — 1930년대 대공황 때 세계 시장을 붕괴시켰던 — 의 대폭 강화를 낳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보호주의 조처들이 증가했다 — 미 의회가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에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삽입한 것 등.

위기 극복책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두 거대 수출 경제, 곧 중국과 독일은 미국와 영국의 — 세계경제의 “불균형 개선” 노력의 일환 — 수출 억제와 소비 증대 압력에 반발한다.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담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부담을 다른 나라들에게 떠넘기려는 선진국들의 시도 때문에 파행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대응 전략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패권 유지다. 그러나 다른 열강의 협조가 없이는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없다. G20이 G8을 대체한 배경이다.

다른 한편, 미국 제국주의의 장기적 위기는 더 많은 전쟁들을 낳을 수 있다. 최근에 “테러와의 전쟁”의 전선이 예멘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한국군을 파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전쟁 반대 운동이 중요하다.

그러나 전쟁 쟁점이 더는 2003-04년처럼 정치 풍경을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반전 동원이 과거에 비해 매우 어려워졌다(불가능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경제 위기 부담 전가 등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과 파병의 비극이 결합될 경우 새로운 동원력이 창출될 수 있다). 따라서 반전 운동을 장기 프로젝트로 유지하려는 전략적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 풍경

지금 우리 운동의 핵심 쟁점 — 주류 부르주아 정치에게도 마찬가지다 — 은 경제 위기와 그 대응 방식이다.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임금, 노동조건을 직접 공격하고 있다. 노조법 날치기 통과는 노동조합을 약화시켜 지배계급의 공세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 위기 부담 떠넘기기에 맞서 노동자들의 저항도 늘고 있다.

서구의 노동계급이 1980년대 이래 30년 가까이 침체를 겪었던 것과는 달리, 한국 노동계급은 결정적 패배의 경험이 없다. 위기에 앞선 싸움에서 노동계급의 승패 경험이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자 투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노동조합 내 힘의 균형추가 현장조합원에서 노조 지도부로 이동했다. 예컨대, 1998년에 김대중 정부와 정리해고 법제화를 합의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현장 조합원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혀 사퇴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그런 모습은 좀체 보기 어렵다(지난해 12월 철도노조 지도부가 파업을 철회했을 때 조합원들이 거의 반발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힘의 균형을 보여 주는 사례다).

그렇다고 노조 지도자들의 부정적인 영향력 행사가 지배계급의 조직된 노동계급 공격하기에 맞선 전투 자체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이때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노동자 투쟁의 부활을 위한 교두보로 만들 수 있는 진정한 힘이 현장 조합원들에게 있음을 이해하는 좌파와 노동자 투쟁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