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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이 아니라 필요가 우선하는 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김희준 동지 최후 진술

나는 1998년 11월과 1999년 3월 노동자 집회에서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신문을 판매한 이유로 구속됐다. 그 신문에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 성적표, 김대중의 한국 경제 회복 전망은 사기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그 기사는 김대중의 재벌 개혁이 노동자들의 몫을 빼앗아 재벌 살찌우기로 끝나가며, 현 정부의 경제 정책과 노동 정책이 어떤 실효도 거두지 못한 채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만을 강요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올바른 주장이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잠깐 회복세를 보이던 한국 경제는 다시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IMF 관리 체제는 끝났고 자신의 공적이라고 자랑하기 바쁘던 김대중은 경제가 다시 침체하자 지금은 IMF 공황 때와 다르다며, IMF 공황 직전 김영삼이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경제의 하락 조짐이 뚜렷해지자 경제 상태가 나쁘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부는 1백만 명 이상을 실업자로 만들고 1백조 원이 넘는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도 구조조정이 미흡하다며 보다 강도높은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하려는 구조조정은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사용했던 방법으로, 현재의 경제 상황은 이런 방법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1998년 하반기 이후 국내 경기가 한 때 호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조조정의 결과라기 보다는 엔화 강세, 반도체·철강·조선 등 일부 수출 산업의 호조, 낮은 국제원자재 가격 같은 대외 여건의 변화 때문이라고 경제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미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국제 여건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한국 경제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경기가 후퇴하자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들의 소비를 줄여 시장이 축소되고, 다른 업체들의 생산과 투자를 축소시켜서 경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

금융 구조조정은 정부가 이번 구조조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문 중 하나이다. 금융 기관의 부실은 돈의 흐름을 어렵게 하고 부채 비율이 높은 한국 기업들의 금융 비용을 상승시켜 기업 수익성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금융 구조조정의 핵심은 부실 은행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 부실 비율을 낮추고 지주 회사를 통해 은행간 인수 합병으로 인원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한빛은행은 여전히 부실덩어리다. 상업과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한빛은행은 3조 4천억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수천 명을 정리해고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빛은행은 부실을 면치 못해 4조 원 이상의 공적 자금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자본가들이 자의든, 정부 압력에 의해서든 대우나 동아 건설같은 기업에 돈을 대출해 주고 부도로 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거나, 현대 건설처럼 수익성이 악화되어 원금 회수는커녕 계속 자금만 집어삼키는 것이 금융 기관 부실의 원인이다.

더구나 금융 기관을 더욱 부실하게 만드는 정현준·진승현 게이트나 한빛은행 불법 대출 사건같은 비리들은 정치권·기업인·은행 경영자 들의 합작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은행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은행 부실이 생긴 것처럼 이야기한다. 정부는 공적 자금 투입 은행의 노조에 인원과 조직 감축에 대한 동의서를 강요하고 퇴직금 누진제 폐지, 임금 동결을 시행하려 한다. 대우자동차 노조에게 구조조정 동의서를 받은 데 재미를 본 정부는 은행 노동자들에게도 동의서를 요구하고 있다.

폴리에틸렌은 세계적으로 20퍼센트의 공급 과잉으로 수출 가격이 원료비와 가동비인 톤당 6백10달러보다 적은 5백90달러여서 생산할수록 적자에 허덕이게 된다. 그래서 기성 언론에서도 석유화학업계는 비상구가 없다고 지적한다. 다른 분야들도 마찬가지여서 화섬, 면방직, 제지, 전기로, 시멘트가 최대 10∼15퍼센트의 설비과잉 상태이며, 한보철강·삼성자동차 부도와 최근 반도체·철강 가격의 하락도 무리하고 무계획적인 투자의 결과이다. 이처럼 맹목적인 이윤 추구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무분별한 투자가 경제 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다.

현 경제 위기의 책임은 정부와 사장들에게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이 위기 해결에 효과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가 구조조정을 강행하려는 것은 어떻게든 노동자들에게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여 사장들의 몫을 조금이라도 늘려보겠다는 것이다.

1997년 IMF 공황 이후 노동자들은 희생할 만큼 희생했다. 경제 위기의 대가로 노동자와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극우 신문인 조선일보도 인정하는 바이다. 1998년 경제가 잠시 호전되었을 때도 그 열매는 노동자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경제 위기로 많은 기업이 부도가 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살아남았다. 얼마 전 부도난 기업주 6명이 1백80억 원을 빼돌린 사실이 신문에 난 적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모든 기업이 경제 위기로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다른 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이익을 보거나, 불황의 영향을 별로 받지않은 기업들도 많았다. 이런 기업들조차 노동자들에게는 정리해고, 임금 삭감, 비정규직화 등을 강요했다. 그 결과 소득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45만명 정도인 상위 1퍼센트가 남한 자산의 3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 1백60만 명 이상이 절대 빈곤 속에 살고 있다.

민영화

정부는 공기업도 비효율과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 경쟁을 도입해 민영화를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공기업은 민중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이윤보다는 대중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공기업을 민영화한 다른 나라의 경우를 봐도 요금이 인상되고, 인원을 줄여서 노동 강도를 강화시키고, 서비스의 질 하락과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 한전이 민영화된다면 이윤이 남지 않는 곳에 전기 시설을 설치하지 않아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물론 공기업에 비효율성과 낭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통신의 경우 6천6백억 원을 투자한 사업들이 중단되거나 적자에 허덕이고, 3천억 원을 투자한 케이블 TV 사업은 투자금의 10퍼센트에 매각할 계획이다. 47억 원짜리 장비는 사용도 못해 보고 5만 원에 매각했고, 임원 술값으로 19억 원을 사용했다. 현장 직원들이 맨홀로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안, 임원들은 지하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며 잘못된 투자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부실의 책임은 잘못된 투자를 결정한 경영진과 이를 묵인·방조하고, 낙하산 인사로 경영권을 나눠먹은 정부에게 있다.

더구나 공기업이 민영화를 통해 사기업이 된다고 해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기업도 비효율과 부실은 흔한 일이며, 사기업이 더 효율적이라는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석유화학업계는 1980년대 초·중반 호황이었다. 수익성이 있어 보이자 현대·삼성이 대규모로 진출했고 기존의 기업도 경쟁에서 뒤질세라 대규모로 투자를 확장하여 1980년대말 50만 톤이던 연간 생산량이 현재 5백5만 톤에 이른다.

재벌들의 행태는 국민들을 더욱 분노시킨다. 삼성의 이건희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고 이재용에게 수십 조원의 주식을 불법 증여했고, 삼성자동차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고도 자신은 자동차 지분을 소유하여 이익금을 챙기고 있다. 현대는 경영권 다툼으로 회사와 경제를 어렵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우 부도의 주범 김우중은 해외 각국을 오가며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당쟁을 벌이기에 바빠서 자신들이 한 약속과 개혁 입법 제정 등에는 관심도 없다. 그들은 사장들에게는 우유부단하고 관대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단호하다. 자신들의 수많은 불법 ― 김대중 대선자금, 뇌물 수수, 병무 비리,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사장들의 불성실 교섭, 불법 상속, 내부 거래, 자금 해외 도피 등 ― 은 애써 외면하면서도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투쟁에는 불법이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쟁을 파괴하려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불법이기 때문에 엄단하겠다는 말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

이윤이 감소하는 경제 위기 시기에는 정부와 사장들은 이윤을 늘리기위해 더욱 단호해진다. 그들을 물러서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 역시 단호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은 1996년 노동법 개악시도에 맞서 대규모 파업 투쟁을 통해 김영삼을 굴복시킨 적이 있다. 그 때처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보여준다면 김대중 정부로부터 민영화 철회와 근로기준법 개악없는 노동시간 단축 등의 요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회는 반복되는 경제 위기로 노동자들과 민중의 삶이 파괴되고 희망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소수의 풍족한 생활은 대다수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처럼 다수의 사람들에게 빈곤과 절망을 강요하는 경제 위기의 진정한 해결책은 사장들의 맹목적인 이윤 추구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여 대중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은 그런 사회를 만들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다. 나도 그런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열심히 투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