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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 노동자들을 배신한 노조 지도부

프랑스 - 노동자들을 배신한 노조 지도부

해외 좌파 저널에서

6월 19일 파리, 마르세유, 기타 많은 도시들에서 노동자들이 시위 행진을 했다. 의회는 연금 법안 투표 준비에 바빴고, 시위를 주도한 노조 지도자들은 공공연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 계획에 반대하는 견해가 66퍼센트였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노동자들의 연금이 30퍼센트나 삭감되고 국립 교육 기관이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정부 계획을 민주주의와 평등주의 전통의 상징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5월 13일 이후 노조 지도자들은 운동의 동력을 소진시키고 운동을 해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애를 썼다. 사회당과 가까운 프랑스 민주노동자총연맹(CFDT)은 처음부터 정부의 계획을 지지한 반면, 공산당과 오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자총연맹(CGT)은 소속 조합원들을 상대로 진지전을 벌였다. CGT는 총파업 요구를 거부하면서 매주 한두 번 1일 시위만 조직했을 뿐이다. 그것은 정부가 그럭저럭 대처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6월 10일 CGT는 교사노조와 함께 대정부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배신적인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교사들의 파업을 사실상 말아먹었다. 노조가 수능시험 바칼로레아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정부는 교사가 아닌 교직원 11만 명 중 2만 명을 “분권화”하지 않겠다고 양보했다.

이 협정은 교육계 종사 노동자들한테서 중요한 압박 수단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그들을 분열시키기도 했다. 지방직화에서 면제된 2만 명은 전문 자격증도 갖고 있고 봉급 수준도 높은 노동자들 ― 학교 의사, 사회복지사, 상담사 ― 인 반면, 나머지 9만 명은 주로 저소득 육체 노동자들이다.

교육계 종사 노동자들은 반전 운동의 중추였다. 국립 교육 기관의 붕괴와 연금 공격 둘 다에 맞서 한 달 넘게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도 많았다. 따라서 6월 10일 협상은 연금 개악 반대 투쟁을 마무리짓는 일격이었으며, 노조 지도자들이 정부에 대한 총공격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밝히 드러냈다.

CGT 지도자 베르나르 티보에게는 곤혹스런 일이겠지만, 노동부 장관 프랑수아 필롱은 운동을 무장해제시키는 데서 CGT가 한 역할을 공공연하게 인정했다. 〈르 몽드〉(6월 17일치)는 이렇게 보도했다. “프랑수아 필롱은 CGT와 CGT 사무총장 베르나르 티보가 ‘책임있는 태도’를 취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노동부 장관은 ‘심지어 팽팽한 순간에도’ CGT가 ‘책임있는 반대’를 고수했음을 강조하면서, 몽트뢰유에 본부를 둔 이 노조가 운동의 일반화를 막기 위해 힘들게 노력한 것에 대해 감사했다. [CGT가 이렇게 한 것은] 운동이 CGT의 통제를 벗어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라크는 6월 12일 툴루즈에서 한 연설에서 “승자도 패자도 없다”(〈르 몽드〉)며 노조를 칭찬했다.

〈르 몽드〉는 이렇게 보도했다. “시라크가 ‘전국에서 바칼로레아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 준’ 교사들을 칭찬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파업 투쟁 때문에 시험이 봉쇄될까 봐] 몇 주 동안 불안에 떨었던 시라크의 동료들은 바칼로레아 시험이 무사히 치러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든 뒤에야 이런 칭찬의 말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 날 연설에서 시라크는 올 가을 국민 보건의료 제도에 대한 공격을 필두로 한 새로운 공격 계획을 발표했다.

노조 지도자들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6월 19일 시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전보다는 더 줄었지만, 대부분의 관찰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많았다. 프랑스 전역에서 30만 명이 시위를 벌였고 수천 명이 파업에 들어갔다.

파리에서는 6만 명이 몽파르나스에서 에펠탑 근처 전경련(메데프) 본부까지 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했다. 노동자들은 정부의 후퇴를 강제할 가능성에 대한 환상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저항의 의지를 내비치면서 정부의 공격에 맞선 시위를 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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