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을 내딛은 낙태 단속 반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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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낙태 처벌에 반대하는 운동이 기지개를 켰다.
올해 2월부터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고발 위협이 현실이 되자 여성·진보 단체들은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낙태 단속에 반대하는 선언식을 조직했다. 이 선언문에는 스물 네 단체가 연명했다. 1차 성명에 단체 열 곳이 참가한 것보다 더 확대된 것이다.
민주노총이 주관한 3·8 세계 여성의 날 집회에서 ‘낙태 단속·강화 반대’가 주요 요구에 포함된 것도 매우 큰 진전이다.
앞으로도 진보진영은 우파와 정부의 마녀사냥에서 여성의 삶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생명존중 논리의 본질
낙태 단속 반대 운동은 낙태가 추상적 윤리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알려 나가야 한다.
다함께가 주최한 ‘낙태 금지 논란, 어떻게 봐야 하는가’ 토론회에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이 폭로했듯이,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마치 ‘생명을 존중’하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 대표적 인물인 의사 심상덕은 임산부 산전진료비지원제도(바우처제도)에 반대했다.
장애인 운동에 기여한 적도 없고, 여성의 보육 부담에는 관심도 없었던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갑자기 장애인과 여성의 ‘수호천사’ 행세를 하는 것은 위선이다.
이는 낙태 단속에 반대하는 여론을 무마하려는 속임수일 뿐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강간한 남성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여성의 삶이 망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잔인하리만치 무관심하다.
미국에서도 낙태 금지를 요구하는 우파들은 여성차별금지법과 동성애 권리 보장에 반대했고, 전쟁과 사형제를 적극 지지했다.
취임 직후 ‘생명 존중’ 기치를 내세우며 낙태권 공격에 돌입했던 부시 정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어린 아이 수십만 명을 죽여 놓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희생”이라고 했다.
미국 프로라이프 운동의 우파들은 클린턴 정부 때 빈곤층 아이들과 여성들 3백만 명을 더 깊은 빈곤의 나락으로 빠뜨릴 복지 개악안을 지지했고, 흑인 싱글맘을 공격하는 데서도 앞장섰다.
더 폭넓은 공격의 일부
낙태를 단속하려는 시도는 여성의 삶을 여성 스스로 계획하고 통제할 권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낙태 단속에도 반대해야 한다.
한편, 적지 않은 민주노총 노동자들이나 진보정당 당원들이 흔히 낙태를 임신한 여성 개인의 문제, 노동자와는 별 상관 없는 문제로 여긴다.
그러나 낙태 문제는 여성 문제임과 동시에 계급 문제이기도 하다. 낙태 단속이 강화되면 부자 여성들은 비싼 돈을 들여 안전한 수술을 받고 편히 쉴 수 있지만, 노동계급 여성은 그럴 수 없다.
또, 낙태권 공격은 단지 여성들만 노리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우파들은 늘 사회를 우경화시키고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과 진보운동이 성취해 온 성과들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낙태 쟁점을 이용해 왔다.
대중 운동
지금 한국의 우파들이 낙태권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도 경제 위기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노동계급의 저항을 단속하고 고통을 강요하려는 시도와 관계있다.
낙태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분위기는 노동계급과 진보운동이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효과적으로 결속하는 데도 해로울 것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낙태는 우파들이 수십 년간 애용한 쟁점이었다. 낙태가 합법이 된 후에도 우파들은 수시로 낙태 권리를 야금야금 공격해 왔다. 이때마다 낙태권 옹호 진영은 저항을 조직해야 했다. 그래서 낙태 문제는 수십 년 동안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돼 왔다.
따라서 한국의 낙태권 옹호 운동도 낙태 단속 문제를 단기 쟁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낙태 단속 반대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대중적 선전을 해야 하고, 낙태 단속에 반대하는 의사·간호사·교사 등 각계의 지지를 최대한 모아야 한다.
무엇보다 작업장과 노동조합에서 낙태 단속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동참하도록 조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고유의 집단적 힘을 발휘해 낙태 단속 반대 운동을 강력히 뒷받침한다면 우파의 시도를 저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주관한 세계 여성의 날 집회가 낙태 단속 반대를 내세운 것은 중요한 진전이다.
다함께와 글로컬페미니즘학교가 네트워크에 제안해, 낙태 처벌 반대 선언식에서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3·8 세계 여성의 날 집회 공동기획단’의 연대 메시지가 발표되기도 했다(민주노총이 네트워크에 참여한다면 낙태권 옹호 운동 건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파의 낙태권 공격에 맞서 광범하게 단결해 대중 운동을 건설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