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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안보 정상회담:
구 체제를 지속하는 오바마의 신 핵안보 체제

4월 12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핵안보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해서 노벨평화상까지 탄 오바마가 정말 그런 세상을 만들 거라고 기대해도 좋을까?

그러나 미·러 핵무기 감축 협정, 4월 6일 발표된 미국 핵태세검토보고서(NPR) 등을 보면, 오바마의 새로운 핵안보 체제는 기존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위선과 (의도적) 허점을 새로운 형태로 답습하고 있다.

먼저, 전 세계는 여전히 핵 절멸의 가능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5대 핵강국들(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의 핵무기 완전 폐기는 아예 제기되지 않거나, 기약 없는 미래의 과제로 제기될 것이다. 회담을 앞두고 체결될 미·러 핵무기 감축 협정으로 양국의 핵탄두 수가 30퍼센트 줄더라도 여전히 전 인류를 수십 번 멸망시킬 수 있다.

게다가 〈워싱턴 포스트〉 보도를 보면, 오바마 정부는 감소분 외에 기존 노후 핵탄두를 폐기하지 않고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또, 미국 공화당 우파들은 오바마 정부가 당장 새로운 핵탄두를 개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미쳐 날뛰겠지만, 〈워싱턴 포스트〉가 인용한 핵 전문가는 이렇게 논평했다.

“오바마 정부는 새로운 핵탄두를 개발하지 않기로 올바르게 결정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개발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걱정되는 것은 누군가 그 길로 곧 가는 것이다.”

둘째, 오바마는 부시 정부와는 달리 비핵무장 국가에 대한 공격 조항을 삭제했다. 하지만 핵무기를 독점한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핵무기 포기를 강요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빌미로 군사 침략을 위협하는 상황은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렇게 지적했다.

“오바마는 [핵태세검토보고서에] 중요한 예외조항을 삽입했다. 국가들은 국제 조약에 따라 확산 방지 조항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이 조항이 의미하는 바는 이란과 같은 경우 잠재적 핵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빌미

핵태세검토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뉴욕타임스〉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도 오바마는 유독 이란과 북한을 NPT 체제의 “국외자”로 지목하고 핵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란은 아직 핵무기를 개발하지도 않았고, NPT 체제 안에서 핵발전소 건설하고 있다.

또, 북한의 핵무기 개발 수준은 NPT를 깡그리 무시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북한 정부는 앞의 세 나라와는 달리 미국과 협상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다고 거듭 말했다.

셋째, 회담장에서 오바마는 ‘테러리스트’와 ‘불량국가’ — 이것의 정의는 전적으로 미국 정부에게 달렸다 — 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핵물질 통제를 강화하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미국 기업과 동맹들이 핵발전을 ‘대안 에너지’로 팔아먹으면서 전 세계를 핵발전소 사고와 잠재적 핵무기 개발 도미노로 밀어 넣는 상황은 그대로 놔 둘 것이다.

미국은 이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신속하게 미국·인도 핵협정 체결을 최종 완료했다. 이제 인도는 민간용이란 명분 아래 마음껏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고 부시 정부가 2005년 의도했듯이 중국과 더 치열하게 핵무기 경쟁을 벌일 것이다. 이명박은 아예 ‘핵 세일즈’를 이번 회담 참가의 주요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기준도 제각각이고 핵무기 폐기 측면에서 실제 내용도 별로 없는 의제로 사상 최대 핵안보 회의를 여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이 가식적 무도회가 그럭저럭 굴러가게 된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 오바마의 위선적 댄스에 맞춰 춤을 추기로 합의한 덕분이다.

러시아는 전략 핵무기에서 미국과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것에 공포심을 느껴 왔다. 그래서 서유럽 배치 핵무기와 동유럽 미사일방어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미국과 협정에 동의했다.

중국이 해야 할 계산은 러시아보다 좀더 복잡하다. 중국은 이란을 미국의 먹이로 값싸게 넘겨줄 생각은 별로 없다. 이란은 중국에 세 번째로 많은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인데다, 중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지렛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에게 당장은 대미 관계가 가장 중요한 국제 관계다. 지정학적으로 타이완 문제에서 양보를 얻고, 경제적으로는 위안화 가치 문제가 무역 전쟁으로 치닫지 않도록 오바마 정부와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후진타오 정부는 미국의 위선적 이란 경제 제재 강화 문제를 ‘우호적으로 검토’하기로 결정했고 — 이미 세 번이나 유엔안보리의 이란 제재에 동의했다 — 오바마 정부는 그 대가로 환율 조작국 지정 여부 발표를 연기했다.

따라서 이번 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서구 열강,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 이명박까지도 나름대로 자기 몫을 챙길 준비를 다해 놓은 듯이 보인다. 여기서 배제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었던 NGO, 평화 활동가들, 그리고 전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