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이스라엘의 주요 자유주의 일간지인 〈하아레츠〉는 1951년에 “이스라엘은 [서방의] 경비견이 될 것”이라고 쓴 바 있다.

이스라엘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방 세계에 자신의 유용성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건국 이후 단 3년 만에 이 점을 깨달았다.

이스라엘의 건국 자체도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여러 강대국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 처음에 이스라엘에게는 프랑스가 미국만큼이나 중요했다. 이스라엘에 핵 기술을 수출한 것도 프랑스였다.

미국과의 관계가 진정 중요해진 것은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을 치른 다음부터였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의 연합 군대를 격파함으로써 자신의 군사적 역량을 과시했다.

그때부터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원조 금액은 열 곱절로 불어났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사실상 통제한다는 말인가?

나는 유태인이지만 1967년 전쟁을 계기로 반(反)시온주의자가 됐다(즉 이스라엘 국가에 반대하게 됐다). 나는 이스라엘이 미국의 사냥개라는 것을 팔레스타인 출신 유태인이자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창립자인 토니 클리프에게 배웠다.

평소에 사냥개는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의 말을 따른다. 그러나 때로는 개가 주인을, 주인이 가기 싫어하는 방향으로 끌어당기기도 한다. 내 생각에 현재 이스라엘이 보이는 행동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몇 년 동안 갈수록 더 광포해졌는데, 이제는 거의 완전히 통제불능인 지경까지 왔다. 그래서 미 국방부가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공개적인 불만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펜타곤은 사실상 오바마에게 “얘네들 좀 진정시켜라”라고 주문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총사령관인 데이비드 페트레어스 장군은 “이스라엘이 미군 병사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변한 것인가?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겠다. 긴장이 증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없다고 본다. 또한 이런 일은 오바마 정부 이전에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교활하게도 백악관 주인이 바뀌려는 시점에(오바마가 취임하기 직전에) 가자 침공을 감행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미쳐 날뛰는 동안 그 후폭풍은 부시에게 갔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 터키 정부도 일정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1950년대에 미국의 주선으로 이스라엘과 평화 협약을 체결한 터키는 이스라엘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이스라엘과 터키의 관계는 그동안 매우 돈독했다. 그런데 [가자 침공] 당시에는 둘 사이의 관계가 붕괴 직전까지 갔다. 미국이 보기에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미국의 입장에서 중동 지역의 안정화에 주춧돌 구실을 해 온 이스라엘이 이제는 오히려 일정 정도 불안정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관리하는 것이 미국의 과제고, 지금 미국이 하려는 일도 그런 것이다.

미국이 큰 홍역을 치르지 않고도 이스라엘을 제지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을 제지할 수는 있지만 상당한 갈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미국 내 이스라엘 로비 단체인 AIPAC을 통해 오바마에게 압력을 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듯하다. 그러나 그의 처신은 오히려 백악관을 더욱 진노케 했다.

그들은 이러한 갈등을 완화하려 애쓰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미국은 어떻게든 팔레스타인 영토 내의 정착촌 건설을 중단시키긴 해야 한다.

미국은 왜 정착촌 건설을 막으려고 하는가?

이스라엘의 공격 본능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머리 위로 기어오르지 않고 유용한 동맹 구실에 머물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은 단지 이스라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아랍 국가들의 순종도 필요한데, 특히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이 중요하다. 이들은 모두 독재 국가로서 자국민들에게 전복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

거리의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만행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다. 위성 TV 덕분에 이들은 팔레스타인에 관해 서방 세계가 접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소식을 접할 수 있으며, 이는 분명 아랍 정권들에게 위협이 되는 일이다.

오바마도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치에서 이스라엘 로비 세력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스라엘 로비 세력 등은] 고립무원의 존재가 아니다.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맥락을 살펴야 한다.

이스라엘은 옛 소련이 아랍 민족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진지한 후원자 구실을 했던 냉전 시대에 특히나 미국에게 중요했다.

그런데 냉전이 종식되자 이스라엘은 잠시나마 미국에게 덜 중요한 존재가 됐다. 그러다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새로운 세력이 떠올랐다. 정치적 이슬람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정치적 이슬람에 맞서 미국의 이익을 방어하는 동맹이 됐다. 이 동맹 관계는 부시 재임 기간 중에 특히 더 강화됐다. 아마도 양국 관계가 이때처럼 끈끈했던 때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로비가 백악관을 좌지우지한다는 환상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다.

사람들은 막상 부시 정부에 대한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의 영향은 과대평가했다.

그러나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은 결코 안정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한 적이 없었고, 부시 행정부의 퇴장과 동시에 무너지고 말았다.

오바마가 바꾼 것이 있는가?

오바마는 집권 직후에 뭔가를 바꿀 기회가 있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새로 쓰려고 했지만 처음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오바마 자신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이스라엘을 손보는 작업은 너무 더디게 진행됐다.

이스라엘 로비는 과거보다 약해졌다. 여기서 진정한 물주가 누구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연간 30억 달러를 원조한다. 돈줄을 쥐고 있는 쪽이 발언권을 행사하기 마련인데,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에서도 정확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로비에 관해 말하자면, 미국 지배계급의 핵심은 기업주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유용성에 관해서는 일관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 로비보다는 미 국방부가 더 중요하다. 미 국방부는 이스라엘과 매우 친밀한 관계지만 그 관계가 항상 매끄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은 이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모종의 타협점을 찾길 원한다. 아랍 정권들이 팔레스타인과 관련해서 뭔가 얻어낸 것이 있다고 자국민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어떤 과도기적 해결책이 급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큰 진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열망에는 한참 못 미칠 것이다.

정치적 이슬람[이슬람주의]은 어떤 구실을 하는가?

중동에서 스탈린주의와 아랍 민족주의가 실패한 것이 정치적 이슬람을 위한 길을 열어주었다.

정치적 이슬람은 다면적인 운동으로서 진보적인 면과 반동적인 면을 모두 갖고 있다. SWP(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는 제국주의에 맞서 정치적 이슬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만 그 약점과 한계를 비판한 바 있다.

정치적 이슬람은 타협할 것이고 아랍 민족주의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다. 하마스는 자신들이 포로로 붙잡고 있는 이스라엘 병사 질라드 샬리트와 관련해 이스라엘과 수시로 대화하고 있다.

이러한 대화가 서로를 시험해 보고 하마스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의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마스가 반드시 협상 테이블로 갈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어쩌면 중동에서 엄청난 격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미국은 더욱더 불안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 정착촌에서 결국 철수하게 될까?

오바마는 그동안 지지 기반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해 왔는데 최근 의료개혁 법안을 통과시킨 뒤로는 좀더 자신감을 얻었다. 오바마가 허약해 보였을 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마음대로 행동해도 괜찮을 거라 계산했다.

결국 미국은 이스라엘이 말을 듣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오바마는 가급적 이스라엘에 공공연한 압력은 넣고 싶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압력을 넣긴 넣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광신도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네타냐후는 예루살렘이 3천 년 전에 그랬듯 지금도 유태인들의 수도라고 말한다.

네타냐후는 기회주의자이니만큼 말로는 이렇게 정신 나간 소리를 해도 행동은 얼마든지 다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연정 파트너들은 이런 헛소리를 진심으로 믿는 자들이다. 종교적 근본주의 정권이다.

이스라엘 주민들은 왜 자기 정부에 반대하지 않는가?

이스라엘 주민 대다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두 이슬람주의자들이고 이슬람주의자들은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자신이 1백50만 명의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그러한 생각을 부추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하아레츠〉 신문이 “우리가 하마스와 협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는 응답자 대다수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스라엘 주민들이 자기 지도자들만큼 광신도들인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이스라엘 국내 여론은 미국 유태인들의 여론과 마찬가지로 분열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직 소수지만 점점 많은 유태인들이 이스라엘 정부의 행동에 분노하며 오바마를 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