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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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앉은 WTO
김용욱
지난 14일 5일간에 걸친 칸쿤 각료회담이 무산됐다. 1999년 시애틀 이후 각료회담은 또 한 번 실패를 기록했다.
각료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회담장 밖에서는 연일 격렬한 반 WTO 시위가 벌어졌다. 10일에는 농민 이경해 씨가 반 WTO를 외치면서 할복자살했다. ‘지구적 공동행동의 날’이었던 13일에는 분노한 시위대들이 WTO 회담에 참여하는 각료들에게 항의하며 멕시코 경찰이 설치했던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렸다.
회담이 진행된 5일 동안 WTO는 전 세계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표적이 됐다.
1995년에 WTO가 출범한 이후 세계는 더욱 불평등해지고 살기 힘들어졌다. ‘인간발전보고서’에 따르면 전 지구적인 삶의 수준은 1990년대 이후 점점 더 열악해졌다. 같은 시기 부자들의 수와 이들이 보유한 부는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WTO는 이미 1999년 시애틀에서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당시의 시애틀 전투는 국제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2001년 11월에 카타르의 도하에서 열린 WTO 각료회담은 9·11에 이은 ‘테러와의 전쟁’ 분위기를 몰아서 각료회담선언문을 채택할 수 있었다. 미국 무역대표부의 로버트 졸릭은 도하(Doha)가 “시애틀의 얼룩을 제거했다”하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 칸쿤 각료회담이 결렬됨으로써 이러한 자신감은 이제 산산 조각났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5일간에 걸친 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WTO는 지난 1999년 시애틀 회담이 결렬된 지 4년 만에 중대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하고 보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졸릭은 즉각 다른 국가들을 탓하는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조차도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우리가 기한 내에 협상을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으로 믿기는 어렵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회담이 틀어진 것은 직접적으로는 투자·경쟁 정책·정부 조달·무역 촉진 등에 관한 ‘싱가포르 이슈’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 집단 간의 대립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국제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의 압력 때문이기도 했다.
지배자들은 WTO의 협상 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품게 됐지만 자신들의 의제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미국 무역대표부의 졸릭은 이렇게 시사했다. “[WTO] 회원국들이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도하라운드의 대안으로 국가 간 개별협상이나 지역 무역협상카드를 추진할 것이다.”
이미 북미와 중남미의 반자본주의 운동 세력들은 11월에 마이애미에서 개최되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반자본주의 운동은 칸쿤 이후에도 계속 전진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 투쟁에 적극 연루할 필요가 있다.
WTO - 농민 살해자
이경해 열사의 비극적인 죽음은 WTO가 전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는 고통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줬다. 지금은 그의 유서처럼 돼버린 자기소개서에는 WTO 같은 무역협정이 가난한 농민들에게 가져 온 절망이 담겨 있다.
“[수입개방] 이후로 우리 소농들은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고 있다. 만약 당신의 월급이 영문도 없이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의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 엄청난 빚 때문에 농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사람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의 아내가 통곡하는 소리를 무기력하게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라면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WTO에는 ‘농업에 관한 협정’이 따로 있다. 이 협정의 목적은 “시장 중심적인 농업 무역체제를 확립하고 … 농업에 대한 지원과 보호 장치를 축소시켜서 … 세계 농업 시장에서의 제한과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다.
물론 이 원칙이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미국과 유럽연합 같은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에게 농업보조금을 폐지하라고 요구하지만 사실 이들이야말로 자국 농업 수출품에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다.(지난 호 13면 참조)
보조금을 지급 받은 수입농산물과 경쟁해야 하는 주로 제3세계의 가난한 농민들은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의 극빈자 중 70퍼센트 이상이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1998년에는 빚에 허덕이던 예순 세 살의 한 태국 농부가 정부청사 앞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 사건이 보도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2000년에 식량농업기구(FAO)는 ‘농업에 관한 협정’이 발효된 이후 농산물 시장이 자유화된 국가의 현황을 조사한 바 있다. 보고서는 이렇게 전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상태에서 농업노동자의 삶이 완전히 파괴되고, 소농과 극빈자들이 커다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칸쿤 회담에서 농업 문제는 가장 첨예한 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도하‘개발’의제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농업 의제는 가난한 농민들의 처지를 개선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조치를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13일 발표된 초안의 기본적인 내용은 기존 협정의 폭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었다.
비록 14일 전체 협상이 결렬되기는 했지만 ‘농업에 관한 협정’은 중단되지 않았다. 기존의 협정 내용은 여전히 발효중이다. 게다가 WTO 협상절차가 실패한다면 똑같은 의미의 무역자유화가 개별 협상을 통해서 관철될 수도 있다.
일부 지배자들은 이경해 열사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마지못해 조의를 표했지만 이것은 ‘악어의 눈물’조차 되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제를 전혀 철회할 의사가 없다.
이경해 열사의 말이 백 번 옳다. “[WTO는] 완전히 정지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자유주의의 잘못된 논리는 지구적 농업의 다양성을 쓸어버리고 모든 인류에게 재앙을 안겨 줄 것이다.”
김용욱
칸쿤 투쟁 현장에서 온 소식 - "우리는 WTO를 무너뜨릴 것이다"
한국 참가단은 WTO 항의 시위에서 아주 눈에 띄었어요. 외국 참가자들 가운데 멕시코 빼고는 가장 컸죠. 그래서 비아캄파시나(세계농민조직)는 개막 행진 때 우리더러 맨 앞에서 행진하라고 길을 비켜 주기도 했어요.
비아캄파시나의 현수막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투쟁을 세계화하라, 희망을 세계화하라.”
가족들과 함께 칸쿤에 온 한 멕시코 엔지니어 노동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는 “만약 WTO에 항의하지 않고 그 기구가 버티고 있으면 내 자식들의 삶이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말했어요.
이경해 씨 자살 사건이 터진 뒤 멕시코 경찰은 한국 참가단이 호텔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았어요. 숙소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한 시간이나 돌아서 가도록 만들었구요. 검문도 서너 번 당해야 했어요.
호텔에 못 들어가는 바람에 우리는 천막을 치고 항의 행동에 들어갔어요. 매일 촛불 시위를 했죠. 다른 나라에서 온 분들도 한국 참가단들이 친 천막 옆에 천막을 치고 연대해 주기도 했어요. 몇 년간 물렸을 만한 모기떼한테 시달리고 엄청 더운 날씨여서 힘들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엄청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지만 추모제는 매일 열렸죠.
우리는 9월 13일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렸어요. 커터기로 철망을 떼어내는 분도 있었어요. 한 한국 농민 분이 철망에 밧줄을 걸었어요. 그리고 바리케이드 앞에서 WTO에 항의하면서 구호를 외쳤던 사람들은 모두 밧줄을 힘껏 당겼지요. 정말 장관이었어요.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고 나서 즉석에서 집회가 열렸어요. 한 분은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은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지만 우리는 결국 WTO를 무너뜨릴 것이다.”
거의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분위기였는데 발언할 때 모두가 집중했어요. 이것은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집회 장면이었요.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어요. 참가자들이 너무도 집중했던 거죠. 마음은 흥분해 있었지만 말입니다.
(칸쿤 한국 참가단 박민경 전교조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