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네이더 약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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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프 네이더는 민주당과, 민주당에 비판적인데도 민주당과 결별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이 손쉽게 비난할 수 있는 속죄양이다. 네이더가 녹색당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 후보로 나오기로 한 결정이 선거 유세 기간 내내 민주당원들의 분노를 샀다. 투표가 박빙의 승부로 치닫자 민주당원들은 네이더의 대선 출마에 더욱 흥분했다.
네이더는 280만 표를 얻어 전국적으로 3퍼센트의 지지를 획득했다. 그는 약 10개 주에서는 5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얻었으며,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원유 시추를 위한 석유 회사들의 굴착 권리가 쟁점이 되고 있는 알래스카에서는 10퍼센트의 지지를 얻었다. 그의 표는 사표 논리의 압박을 받았지만, 미국인들이 느끼고 있는 대안에 대한 갈증을 보여 주었다.
플로리다 같은 핵심 주에서 네이더는 9만 7천4백15 표를 얻었는데, 이것은 4년 전 서류상의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을 때의 25배나 되는 수치다. 네이더를 찍은 한 플로리다 사람은 "나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투표했다. 나는 환경 위기와 기업이 우리 정부와 우리 문화를 지배하는 것을 종식시키는 즉각적인 조처를 위해 투표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 결과 네이더는 고어 지지표를 "훔쳐 간다"는 비난을 들었으며, 네이더 지지표는 부시 지지표로 치부됐다. 친민주당계 신문 〈뉴욕 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네이더를 가리켜 "비정상적인 경제 철학"을 지닌 "병적인 자기도취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워싱턴 포스트〉 지의 데이비드 브로더는 "녹색당의 후보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녹색당을 무시했다.
페미니스트, 흑인 활동가, 일부 환경주의자들이 이러한 공격에 가세했다. '전국낙태권행동동맹'은 네이더에 반대하는 TV 광고를 내면서 고어가 네이더에게 표를 잃어 어부지리로 부시가 당선된다면 미국에서 낙태권은 보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철강 노동조합 위원장 조지 베커는 네이더 지지자들에게 "당신들이 헌신적으로 원칙을 고수하면 마침내는 당신들과 우리가 그토록 억제하려 했던 바로 그 기업 탐욕 세력이 우리의 정치 과정을 또다시 지배하는 결과가 나타날 텐데, 이는 비극적인 아이러니일 것이다." 하고 말했다.
네이더 자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투표일 밤 네이더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대중이 새로운 진보적 정치 운동을 지지할 태세가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을 한데 모으고 또 그들이 이 운동을 할 수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들 것이다. 양당 지배 체제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 영역에 뛰어들어 미국 전역에 있는 새로운 정치적 시민적 에너지를 끌어내야 한다. 이것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없고, 상업화할 수 없는 것은 없으며, 굴복시킬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기업 지상주의자들로부터 우리의 정부를 되찾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잘못됐음을 입증해 보일 것이다."
선거 직후 미네소타 주에서 네이더는 1천 명 이상이 꽉 들어찬 강당에서 "미국의 기업화"에 대해 연설했다. 그는 미국에서 너무 많은 자산이 기업에 집중돼 있지만 아동의 20퍼센트가 빈곤선에서 살고 있다는 그의 핵심 선거 유세 메시지를 되풀이했다. "가난한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분명히 말하겠다. 가난한 사람들이 미국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하고 말했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네이더가 전국적으로 5퍼센트의 득표를 하지 못해 녹색당이 연방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스며나오고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위크〉 지가 지적했듯이, "네이더는 자신에게 7백만 달러를 제공했던 24만 명의 지지자 명단을 녹색당에게 남겨 주었는데, 이들 거의 모두가 100달러 이하의 기부금을 낸 사람들이다. 네이더는 청년들을 끌어들이고, 사람들이 전에는 가지 않았던 투표소에 가게 했으며, 주요 정당들이 전혀 언급하지 않는 쟁점들을 제기했다." 네이더에게 표를 던졌던 사람 중에서 약 40퍼센트는 만약 네이더가 후보로 나오지 않았다면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네이더 지지자들은 현 체제와는 철저하게 다른 대안을 바랐으며, 네이더 선거운동은 그들에게 초점을 제공했다. 이제 문제는 네이더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그 다음은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이 논쟁은 이미 시작됐다. 대학교에 기반을 둔 일부 네이더 지지 위원회는 녹색당 그룹으로서 집회를 갖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그리니치 빌리지 캠페인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또 다른 위원회는 다른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모든 위원회들이 네이더의 성공에 고무되어 자신감을 느끼고 있다.
청록 동맹 ?
미국의 네이더 선거운동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선거 전에는 사람들이 고어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는 거대한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버텼으며, 특히 선거가 이토록 형편없는 것임이 드러난 이상 이렇게 버티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느끼고 있다. 선거 추문은 전체 선거 과정이 얼마나 비민주적인지를 드러냈다. 우리가 그 추문에 말려들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다."
녹색당이 대중 정당으로 등장할지를 점치는 것은 너무 이르다. 그러나 녹색당 조직은 시애틀 시위의 여파로 변모했으며, 지난해 초에 열린 녹색당 대회에서는 '청록 동맹'(청색은 노동자를 가리켰다)이라는 주장과 선거에 계속 참여하겠다는 뜻 표명 그리고 제3당 건설을 계속하겠다는 의지 천명이 있었다. 녹색당은 미국 전체에서 72개의 공직에 선출됐으며, 그 가운데 18개는 지난해 말에 획득한 것이다.
네이더를 위해 활동했던 지나 펜은 이렇게 말했다. "연방 재정 지원 문제 때문에 사실 5퍼센트의 득표를 못했다는 점은 실망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 제외하면 캠페인의 모든 것이 성공했습니다. 나라 전체에서 활동하고 동원할 태세가 돼 있는 사람들이 광범하다는 측면에서 이것은 대단한 성공입니다. 청년 운동은 선거 운동을 이용해 적극적인 행동을 할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2년 이내에 또 다른 선거가 있을 것이고, 우리는 전국의 투표소에서 지역 녹색당 후보자들을 가능한 한 많이 낼 것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녹색당을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이더는 자신이 다시 출마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녹색당은 "2002년에 제2의 대약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거 이후 많은 네이더 지지 활동가들이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민주주의 시위'들에 참가해 플로리다 선거 사기극에 항의했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하고 한 네이더 지지자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