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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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자본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 시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이 투쟁들을 결합시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본다.
9월 27일 세계 전역에서 벌어진 반전 시위는 세계 지배자들에 맞선 진정 국제적인 저항 운동을 한걸음 더 발전시켰다. 많은 시위대는 조지 W 부시나 토니 블레어 같은 개인들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곳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과거를 그리워하며 빌 클린턴 집권 시절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빌 클린턴과 가장 유사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웨슬리 클라크는 1999년 클린턴의 명령에 따라 유고슬라비아를 폭격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이었다.
거물급 깡패들은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지배한다.
2주 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는 혼란 속에 무산됐다. 그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경제 세력―미국과 유럽연합―이 남반구의 빈국들로 하여금 북반구의 거대 기업들에 경제를 더욱 개방하도록 지나치게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들의 실패는 부유한 국가들이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같은 기구들을 통해서 전 세계에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자유 시장 정책의 결정적 패배였다.
이제 많은 활동가들은 서로 다른 쟁점들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깨닫고 있다. 그들은 미국 국방부가 이라크 침공을 시작하기도 전에 벡텔이나 핼리버튼 같은 기업들에 이라크 재건 사업 계약들을 수주하게 해 준 과정을 직접 보면서 제국주의에 관한 강연을 수십 번 들은 것보다 더 많은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끊임없는 구조조정
이런 연결점은 우리가 모두 동일한 세계 체제,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의 주요 동력은 경제적인 것, 즉 이윤 추구다. 이 이윤의 원천은 거의 10억 명에 이르는 전 세계 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예컨대, 지난 몇 년 동안 서방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의 거대한 노동인구에게서 이윤을 뽑아 내기 위해 중국에 막대한 액수의 돈을 투자했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동력은 경쟁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한테서 쥐어짠 약탈품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운다. 제3세계와 옛 동구권 나라들에 신자유주의를 강요할 때는 서로 단결하는 미국과 유럽연합도 무역을 둘러싸고 계속 충돌하고 있다.
이런 경쟁은 단지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다. 20세기 초에 세계를 지배한 것은 한줌의 자본주의 열강이었다. 그들의 경제적 경쟁은 세계를 정치적·군사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투쟁과 긴밀하게 결합됐다. 1세기 전에 칼 마르크스의 지적 후예들은 이를 두고 제국주의라고 불렀다.
시장과 투자처를 찾아다니는 거대 기업들은 저마다 자국의 군사력에 의존하게 됐다. 바로 이런 투쟁들 때문에 처음에 양차 세계대전 동안 인류가 끔찍한 파괴를 겪고, 그 뒤에 미국과 소련 사이의 오랜 냉전이 초래돼 학살과 낭비가 만연했다.
냉전이 시작될 무렵 미국 국무부의 조지 케넌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세계 부(富)의 약 50퍼센트를 갖고 있지만 인구는 6.3퍼센트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질시와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우리의 진정한 과제는 우리의 국가 안보를 희생하지 않고서 이런 불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형태의 관계를 고안하는 것이다.”
동급 경쟁자
이것은 오늘날 미국 지배자들에게도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지배적인 제국주의 열강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부시 정부의 세계 제패 정책을 입안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헤게모니”가 오래가지 않을까 봐 걱정한다.
미국에 군사적으로 필적할 만한 상대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연합과 일본 같은 경제적 경쟁자들과 겨루고 있다. 급속한 경제 성장 덕분에 중국은 언젠가는 지역이나 심지어 세계 지배를 둘러싸고 “동급 경쟁자”로서 미국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부시 정부는 미국의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세계의 다른 국가들을 위협해 미국에 복종시키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그 도박은 성공하지 못할 듯하다.
이라크에서 미·영 점령군은 거세지는 무장 저항에 직면해 점차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심지어 고분고분한 미국 언론이나 기성 정치권조차 “베트남”이라는 끔찍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라크 전쟁은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 간의 분열, 즉 프랑스·독일 대 미국·영국 사이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런 분열에 힘을 얻은 제3세계 정부들은 칸쿤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의 요구에 저항했다.
필리핀 활동가이자 지식인인 월든 벨로는 매우 옳게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점증하는 “정당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항 운동은 어떻게 이 위기를 이용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세계 지배자들 사이에서 동맹군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지 몽비오나 베르나르 카상 같은 주요 반자본주의 지식인들은 유럽연합을 미국에 맞서는 대항 세력으로 키워 주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세력 중 하나다. 칸쿤에서 유럽연합 농업위원 파스칼 라미는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로버트 죌릭보다 훨씬 더 가혹한 요구 조건을 제3세계에 강요했다.
지금 프랑스와 독일 정부들이 제안하는 것처럼 유럽연합을 군사 강국으로 키우는 것은 군비 경쟁을 격화시켜 냉전 때처럼 인류 전체를 파멸시킬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우리는 칸쿤에서 반대를 주도했던 브라질·인도·남아공 같은 강력한 제3세계 나라 정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모두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는 극우 힌두 국수주의자들이 지배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것은, 문제의 근원이 체제 자체라는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한 패거리의 도적들과 살인자들에 맞서 다른 패거리를 지지할 것이 아니라 아예 자본주의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혁명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혁명”이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낀다. 혁명은 폭력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혁명에서 실제로 등장하는 폭력의 주요 원천은 반혁명에서 비롯하는 폭력이다.
역사는 부자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무자비하게 싸울 것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또 다른 9·11”, 즉 1973년 칠레에서 [피노체트 장군이 9월 11일 일으킨] 군부 쿠데타가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전복한 사건이다.
부시 정부를 보면 부자들이 무력으로 지배하겠다고 작정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권력에 맞서는 대항세력이 있다. 지난 2월 15일 국제 반전 시위의 날 이후 〈뉴욕 타임스〉는 이 운동이 “또 다른 수퍼 파워”의 등장을 보여 주었다고 말했다.
투쟁들을 연결하기
현재의 반전 운동은 그 규모와 세계적 파급력이라는 면에서 전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또 전쟁에 대한 저항과 1999년 시애틀 시위에서 시작된 국제 반자본주의 운동이 서로 수렴한다는 인식이 점차 널리 퍼지고 있음도 보여 준다.
이런 의식을 반영해, 오는 11월 열리는 유럽사회포럼은 수만 명을 파리에 불러모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운동이 부시와 블레어가 이라크를 점령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점령도 끝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기회는 있다. 우리 운동이 이라크 민중의 저항과 결합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운동의 근본적 약점은 조직 노동계급의 힘을 동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착취가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자본주의를 마비시키고 심지어 자본주의를 끝장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규모 반자본주의·반전 시위에 참가한 노동조합원들에게서, 그리고 지난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파업들과 작업장 투쟁들에서 그런 가능성의 극히 일부를 언뜻 보았을 뿐이다.
조직된 사회주의자들이 운동에 필요한 한 가지 이유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더 광범한 운동과 착취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일상 투쟁들을 서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투쟁들이 체제에 맞서는 단일한 공격으로 결합된다면, 우리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세계를 현실로 만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