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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집회
10월 12일 종묘 공원에서 ‘단속추방 분쇄 노동비자 쟁취 이주노동자 투쟁 결의대회’가 열렸다.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온 1천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자국 말로 쓴 “강제 추방 반대한다”, “노동3권 보장하라”, “노동자는 물건이 아니다” 라는 팻말을 들고 집회에 참가했다.
집회 도중 안산과 일산에서 4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대열에 합류하자 노동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고 “우리한테 불법불법 하지마라”, “강제 추방 반대한다” “STOP CRACK DOWN(강제 추방 반대한다)”을 목청껏 외쳤다.
노무현 정부는 11월 15일 이후 4년 이상 체류한 미등록 이주 노동자 20여 만 명을 강제 추방할 것이다. 방글라데시인 이주노동자 비두 씨는 규탄 연설에서 “우리는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우리에게 한 달밖에 시간이 없다. 공장에서 한 명이라도 짤리면 그 곳에서 투쟁해야 한다.” 하고 호소했다.
집회장에서 만난 파키스탄인 이주노동자 샬리(30세) 씨는 “스무살 때 한국에 와서 제일 더럽고 힘들어 한국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만 했다. IMF 때는 공장이 문을 닫아 몇 달치 월급도 받지 못했다. 내 친구들은 공장에서 손 짤리고 팔 짤렸다. 한국 정부는 여기서 몇 년을 산 사람한테 내일 당장 나가라고 한다. 당신은 갈 수 있나?” 하고 울분을 토했다.
고용허가제 적용 대상자 중 3년 이상 4년 미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재입국해야 외국인 등록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샬리 씨가 증언하듯이 재입국이 쉽지 않다. “내 친구는 왕복 비행기 표 사서 나갔다. 그런데 못 돌아왔다. 외국인 등록증을 얻어도 공장을 떠나면 불법이 된다. 사장이 벌금 물기 싫어서 다시 안 받아준다.”
마석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민속 음악을 들려주며 집회 흥을 돋궜다. 1천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Let’s fight together!”(함께 싸웁시다!) 하고 호소했다.
집회 후 이주노동자들은 “합법화 쟁취”를 외치며 탑골 공원까지 행진했다.
김덕엽
서울대 병원 간병인 노동자들은 전국에서 유일한 무료소개소를 유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9월 17일 서울대병원장은 사설유료업체 선정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0월 1일 청원경찰과 관리자들은 병원장과 면담하러 간 간병인 대표와 서울대병원 노조 간부들을 폭행하고 계단에 내던졌다.
이날 무료소개소를 인수할 업체로 ‘야비스’와 ‘유니에스’라는 두 사설업체가 선정되었다.
병원은 무료소개소가 사설업체로 바뀌면 서비스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설업체에서 몇 년씩 일해본 경험이 있는 간병인 노동자들은 이것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고 있다.
“사설업체는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다. 사설업체는 입회비 25만∼30만 원 정도를 내면 아무나 다 고용한다. 거기다 매월 5만원씩 또 회비를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간병인들은 어쩔 수 없이 환자에게 부담을 지울 수 밖에 없게 된다.”
“사실 환자의 경우 병실료에 간병비라는 게 이미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도 간병인을 쓰게 하는 것 자체가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환자한테 떠넘기는 거다. 유료사설업체가 들어오면 환자 부담은 훨씬 커지게 된다.”
환자들도 병원측의 말을 믿지 않는다.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병원에 항의하고 있다. 그러자 서울대 병원은 “병원에서 선정해 주는 유료업체 간병인으로 바꾸지 않으면 치료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퇴원시키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 실제로 퇴원시킨 사례도 있다.
유료소개소가 들어오면 간병인들의 처지는 지금보다 더욱 열악해 질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주 144시간 정도 일한다. 예를 들어 가래 빼시는 환자의 경우 2∼3분에 한번씩 가래를 빼줘야 한다. 하루에 52번 대소변을 보는 환자도 있다. 이러고 우리는 일당 5만원을 받는다.”
서울대 병원 노조의 연대가 경험 없는 ‘아줌마’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서울대 병원 노동조합은 간병인들과 함께 병원장실 농성, 노상 철야농성, 서명 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전문기(보건의료단체연합 활동가)
10월 11일 국회 앞에서 열린 ‘노무현 정권 노동운동 탄압 규탄 대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구속 노동자 한 명당 한 개씩 피켓을 만들었는데, 1백여 명의 참가자들이 피켓을 다 들 수 없어 한 켠에 열을 지어 세워 놓아야 했다.
화물연대 김영호 부의장은 “우리는 단지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는데, 두 차례 파업 이후 무려 2천여 명이 계약 해지 당하고 5백여 명이 체포됐다. 33명이 아직 감옥에 있다.” 하고 말했다.
노무현은 출범 초기에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 청구소송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철도노조 김웅전 사무처장은 “정부 스스로 철도 노동자들에게 7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15명이 구속됐고 이중 6명이 실형 선고를 받아 아직 감옥에 있다. 79명이 해고됐고 1천40명이 고소·고발당했다. 철도 현장은 계엄령을 방불케 한다”고 폭로했다.
노무현 정부는 최근 건설노조가 건설회사들과 노사 합의로 맺은 단체협약이 “금품 갈취”이고, 산업안전법 위반 사항을 고발한 것은 “공갈 협박”이라고 공격하며 10명의 활동가를 연행해 갔다.
건설 노동자들은 “건설 현장에서는 하루에 2명씩 7백명이 죽는다. 일요일·공휴일도 없고 근로기준법·산업안전법 등 그 어떤 법도 지켜지지 않는다. 암흑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싸워왔는데 노무현은 우리를 ‘파렴치범’으로 매도했다”고 분노했다.
건설산업연맹 유기수 부위원장의 말처럼, “굿모닝 시티 분양 사기 사건을 보라. 과연 누가 ‘파렴치범’인가?”
김태훈
지난 10월 8일 조선일보의 자회사 〈스포츠 조선〉 노조원들의 농성장에 구사대가 투입됐다. 노조는 집요한 노조 와해 공작과 상습적인 술자리 권유, 성희롱에 맞서 사흘째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던 중이었다.
광고국 직원으로 구성된 구사대 50여 명은 플래카드를 찢고 농성 물품을 부수며 조합원들을 폭행한 뒤 거리로 내몰았다.
이런 일을 저지른 스포츠 조선 사장 하원은 대주주인 조선일보 방상훈이 임명한 자로 노동자들을 “확실하게 쓸어 버린다”는 뜻에서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원이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구조조정은 급진전됐고 130여 명의 조합원들 중 3분의 1이 회사측의 노조 탈퇴 위협에 견디다 못해 노조를 떠났다.
여성들밖에 없는 제작국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술자리 참석을 강요당했다. 비번이나 휴가중에도 회식 자리에는 반드시 나와야 했다. 회식이 끝나면 으레 노래방을 갔고 노래방에서는 온갖 성희롱이 벌어졌다.
술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갖은 욕설과 협박을 당하기 때문에 출산을 석 달 앞둔 임산부마저 술자리에 끌려 나와야 했다.
제작국장이 단체 협약에 명시된 3교대 근무시간을 연장시키자 제작과 여성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한국 사회에 냉전 우익 이데올로기의 ‘독버섯’을 키워 온 언론 재벌 조선은 노동자들에게도 끔찍한 ‘독’을 먹이고 있다.
농성장에서 쫓겨난 조합원들은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에게 제작국 관리자 문책과 피해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공개 사과를 요구하며 계속 싸우고 있다.
이광열
지난 10월 10일, 전면파업에 들어간 지 5일만에 직업상담원 노조가 소중한 승리를 거뒀다. 노조는 계약기간은 1년으로 하되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자동갱신 57세 정년 보장 임금항목을 2005년부터 ‘기타직 보수의 인건비’로 전환 추진 임금 8퍼센트 인상 등을 따냈다.
임금항목을 ‘기타직 보수의 인건비’로 바꾼다는 것은 사실상 정규직으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파업에는 임산부와 육아휴직자 등을 제외한 전조합원이 참가했다.
목포지부 조합원은 말한다. “이번에 파업하면서 동료들의 열기에 놀랐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지난 몇 년 동안 꾹 참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였죠.”
원주지부 조합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파업에 정부가 부담을 엄청 느낀 것 같아요. 파업 나흘만에 우리 요구안을 사실상 대부분 수용했어요.”
10일 밤, 여주 한국노총 중앙교육원은 1천5백여 노동자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위원장은 “여태까지 우리는 약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고 선언했다. 잠정합의안은 83.3퍼센트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직업상담원 노동자들의 승리에 고무받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파업을 결의했다.
박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