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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논쟁:
현 강령의 사회주의 구절을 방어하며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당 강령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한다. 강령 개정의 핵심은 사회주의 관련 구절을 삭제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자주파는 당의 강령적 목표를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민중 주체 민주주의”로 삭감하려 한다. 후퇴의 명분은 “당이 처한 국내정치적 상황이나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을 감안”(최규엽 민주노동당 강령개정위원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9년 영국 G20반대 집회에서 ‘자본주의는 고장났다!” 경제 위기로 반자본주의 정서가 커진 상황에서 사회주의적 대안 제시를 중단하려는 것은 “세계사적 흐름”과도 어긋난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11년 전 민주노동당이 창당할 당시와 비교해도 그 위기의 정도와 규모가 훨씬 더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당 강령에서 반자본주의적 요소를 약화시키고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후퇴다.

이번 강령 개정 논쟁은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객관적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민주노동당 내 세력 관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2008년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은 “정파연합당”에서 사실상 “자주파들의 당”으로 바뀌었다.

자주파는 현 시기 남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변혁 단계라고 본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먼 미래의 일일 뿐이지 변혁 목표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실천에서 뜻하는 바는 민주대연합 전략, 곧 이명박 정권에 반대해 노동자 정당과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민주당)이 연합하는 전략이다.

이런 변혁론에 따라 자주파는 이미 2003년에 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하려 했다. 1년 넘게 끈 논쟁 끝에 자주파의 기도는 패배했다. 2009년 정책당대회를 앞두고도 강령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불발로 끝났다.

그러므로 객관적 환경의 변화를 “감안”해야 한다는 논리는 실은 자주파의 낡은 강령과 전략을 당에 관철시키려는 의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구실일 뿐이다.

사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미 2009년 말부터 민주대연합 전략을 당의 핵심 노선으로 삼고 실행에 옮겨 왔다(이것이 이정희 대표가 강조하는 “유연한 진보”의 실체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비롯해 각종 선거에서 이뤄진 ‘범야권 연대’가 그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이 전략이 선거 영역을 넘어 계급투쟁의 영역으로까지 그 적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주당과 불가피한 특정 사안을 두고 불가피하게 연대(전술적 제휴)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상시적으로 연대(전략적 연합)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강령 개정 기도는 이런 당의 실천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사후 조처인 것이다.

후퇴는 정당화될 수 없다

당내 자주파는 다양한 논거를 들어 사회주의 구절의 삭제를 강변한다.

먼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 국가 탄압의 빌미가 된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이 법에 따라 탄압받는 단체와 개인 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무시하는 것은 진보적 자세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한 지 10년이 지났다. 일부 당원들은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았지만, 민주노동당 자체가 이적단체로 공격받지는 않았다. 사실, 민주노동당을 불법화시킬 정도의 상황이라면 반동적 침체기이거나 혁명적 위기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민주노동당 강령에 사회주의를 둘 거냐 말 거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반동에 맞선 강력한 저항 운동을 건설하는 게 사활적 문제가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은 민주노동당원들은 대부분 북한과의 연계가 탄압 구실이었다. 이때 민주노동당은, 북한 체제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단체와 개인 들을 탄압하는 것에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사회가 북한의 그것은 아니라고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자주파는 진보대통합을 위해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진보대통합은 필요하다. 그런데 사회주의 구절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의 사유가 전혀 아니었다. 북한 문제가 진정한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평등파가 “종북주의” 같은 모욕적이고 부정확한 용어로 민주노동당 전체를 매도하고 국가 탄압에 희생당한 당원들을 제명하려 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지만, 일부 자주파 지도자들이 북한 핵실험을 북한의 자위권이라는 식으로 무비판적으로 옹호한 것이 문제를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현재 진보대통합 논의에서도 북한 문제가 뜨거운 쟁점 중 하나다. 그런데 자주파는 도리어 강령에서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부분을 도려내려 한다.

셋째, 자주파는 당원들이 사회주의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이 대중 정당이니만큼 당원들의 강령 동의 수준이 불균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 강령이 당원들(또는 노동계급)의 평균 의식을 반영할 수는 없다. 강령은 미래의 대안 사회 체제를 제시하는 것이지 당원들의 현재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령적 목표와 당원(또는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 상태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강령을 삭감할 게 아니라 전략과 전술(민주노동당 식 표현으로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 10여 년 동안 사회주의 구절에 대한 이견 때문에 탈당하는 당원들은 매우 드물었다. 노조 지도자들이 투쟁을 배신하는데도 당 지도부가 침묵하거나 동조할 때, 일부 당 지도자들이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할 때 적지 않은 노동자 당원들이 탈당하거나 당비 납부를 거부했다.

넷째, 민주노동당이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 “수권 정당”으로 나아가려면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중소상공인(과 대농)들 속에서도 당원을 늘려야 하는데, 이들은 사회주의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주파가 의도하는 강령 개정의 진정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 선거중심주의와 민주노동당을 노동계급 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바꾸기.

중소상공인이 개인으로서 노동자 정당에 입당할 수 있다. 이때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계급을 배신하고 노동계급의 규율에 복무하겠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독일의 사회주의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부르주아 출신이었지만 노동자 운동과 그 정당의 건설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따라서 중소상공인의 민주노동당 입당을 고무하기 위해 노동자 정당의 강령을 후퇴시키려는 것은, 가망성이 거의 없지만, 노동계급을 당의 핵심 계급 기반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겠다는 생각이다.

자주파는 사회주의 강령이 투표에 언제나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그러나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계급투쟁 수준이다. 계급투쟁이 침체기라면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 극소수일 것이고, 반대로 경제 위기가 심각하고 계급투쟁이 고양된다면 대중의 상당히 의미 있는 부분을 설득할 수 있게 된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 열 명을 탄생시킨 배경은 노무현 탄핵 반대 투쟁 물결이었다.

모두 함께 후퇴를 막아내자

현 민주노동당 강령은 “자본주의의 질곡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힌다. 반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 계승 발전”)를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회주의는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고 돼 있다(국가사회주의라는 용어는 형용모순이다. 사회주의는 계급 없는 사회이고 따라서 계급 지배 기구인 국가도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또,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는 나치즘의 정식 명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실로 옛 소련권 체제는 20년 전에 붕괴했고, 유럽 사회민주당들이 추구한 사회민주주의는 대중의 사회 변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주류 사회민주주의는 ‘제3의 길’(사회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정책)로 질주했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이런 경험에 근거해 스탈린주의나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른 사회주의를 지향하겠다고 표방한 것이다.

물론, 그 사회주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며, 무엇보다 어떻게 그 사회에 이를 수 있는지(혁명이냐 개혁이냐)를 밝히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원하는 사회주의가 어떤 종류의 사회주의인지를 모른다는 것은 약점이기도 했지만, 이런 모호함이 초기에 다양한 정파들을 민주노동당에 결집시킬 수 있었다.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는 자주파가 정작 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함으로써 아직 당 내에 남아 있는 사회주의자들(과 반자본주의자들)을 당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 자주파의 눈은 그래서 자신들보다 오른쪽에 있는 세력만 바라보는 외눈박이다.

더욱이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 강령에서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하는 것은 노동자 운동의 이데올로기를 크게 후퇴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다함께는 자주파의 당 강령 삭감 시도에 맞서 현 강령을 방어할 것이다. 다른 당내 좌파와 노동운동 활동가 들도 함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