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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탄압 분쇄 - 하루 파업 이상의 투쟁이 필요하다

노동운동 탄압 분쇄 - 하루 파업 이상의 투쟁이 필요하다

“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에 노무현은 소름끼치도록 냉혹한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이 나라의 노동정책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이해남 세원테크 지회장 유서) 하는 절규를 그는 가차없이 뿌리치고 짓밟고 있다.

위기에 봉착해 약해질수록 노무현은 기업주와 보수 언론 들에게는 부드러워지고 노동자들에게는 한층 악독해지고 있다.

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가 지났기는커녕 노무현 정부가 하는 짓은 분신 정국(1991년)으로 얼룩졌던 노태우 정권 때와 닮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집 값 폭등, 이라크 파병(1991년 걸프전), 재신임(중간 평가), 그리고 손배 가압류까지. 당시 노태우 정부는 “회사가 불법 쟁의에 따른 손실을 노조에 청구하도록 지도하라”고 지시했다.

오늘날 손배 가압류는 당시보다 훨씬 더 악독해졌다. 손배 가압류 대상은 노조뿐 아니라 노조 활동가 개인들과 그 보증인으로까지 확대됐다.

현장 죽이기

파업에 따른 손실을 노조와 노동자들에게 물리겠다는 발상은 파업권에 대한 공격이다.

파업은 노동자 없이는 기업이 운영될 수 없고 따라서 이윤도 없음을 보여 주는 집단 행동이다.

파업이 효과를 거두려면 사용자에게 손실을 입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손배 가압류는 파업을 하고 싶거든 그에 따른 손실을 보상할 각오를 하라는 엄포다. 하지만 파업 손실을 보상할 만큼 재정 능력이 있는 노조 또는 노동자 개인이 어디 있겠는가?

기성 정당에 몇 백억 원씩 갖다 바치는 기업주들에게는 억대 돈이 검 값일지 몰라도 노동자들에게 그만한 돈을 가압류하는 것은 죽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김주익 씨 누나는 “너희들[한진 경영진]은 10만 원짜리 식사를 하면서 우리 주익이한테는 한 달에 10만 원 주[었다]”며 울부짖었다. 임금을 가압류당한 김주익 씨의 2002년 12월치 임금 실수령액은 고작 12만 원이었다.

사용자들은 “[손배 가압류는] 불법 파업일 경우에만 쓰는 사용자의 최소한의 대항권”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행 노동법 아래서 합법으로 파업하기는 쉽지 않다.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반대하는 파업? 불법. 비공인·살쾡이 파업? 불법. 파업 파괴자의 회사 출입을 막는 피켓팅? 불법. 직접·비밀·무기명 투표에 의하지 않은 파업? 불법. 생산 시설 점거? 불법. 파업 기간 임금 지급 요구? 불법 …

1997년 노동법 개정 이후 불법 쟁의 비율은 급격히 늘었다(1996년 15.2퍼센트→1998년 42.6퍼센트).

노무현은 손배 가압류 등의 탄압을 통해 노조 기층 지도자들을 협박해 옥죄고 있는데 이것은 궁극으로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력을 제압하려는 것이다.

손배 가압류뿐 아니라 노무현의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자체가 파업을 포함한 산업 행동을 무력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 있다.

노동조합은 인정하되 행동은 안 된다는 것이다. 행동 대신 협상을 하라는 뜻이다.

‘시끄러운’ 파업 투쟁이 아니라 노조 상층 지도자들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른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이 바로 노무현이 바라는 ‘노사관계 선진화’이다.

노무현은 “파업부터 해놓고 협상하는 방식”을 비난한다. 노동조합 상층에서도 투쟁이 노동조합을 불안정에 빠뜨릴 뿐이라는 목소리가 존재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 영국 우체부 노동자들의 승리는 오히려 파업부터 해야 협상도 유리한 고지에서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불충분한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에 대한 노무현의 냉혹한 반응은 민주노총의 투쟁이 정권에 위협적 수준이 되고 있지 못함을 반영한다.

10월 29일 법무·행자·노동 세 장관 합동 담화문에 대한 민주노총의 반응은 “정말 기가 막힌다”는 것이었다.

이 반응을 모를 리 없는 노무현은 도리어 대응이 너무 물렀다고 세 장관을 질타했다.

김주익·이해남 씨에 이어 이용석 씨가 10월 26일 서울 도심에서 분신했을 때 정국은 긴장에 휩싸였다. 노무현은 그렇지 않아도 파병과 대선자금과 재신임 문제로 이중 삼중의 위기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10월 31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투쟁의 첫 갈림길이었다.

이 날 대회사에서 단병호 위원장은 “노동자를 한낱 생산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이 땅의 사악한 자본가와 온갖 노동 탄압이 자행되는데도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반노동자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을 강하게 비난했다.

또, “일어서 투쟁할 때만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총연맹 지도부가 제출한 투쟁 계획(11월 6일 4시간 파업과 11월 12일 하루 파업)은 이 대회사에 걸맞지 않은 온건한 것이었다.

11월 9일까지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11월 12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자는 수정안이 제출되기도 했지만, 대의원 408명 가운데 126명만이 지지해 기각됐다.

임시대의원대회는 투쟁을 고무하고 동력을 끌어올리는 구실을 하지 못했다. 물론 언론과 경찰과 손배 가압류를 동원한 노무현의 노동탄압과 경기 침체 탓에 일부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충분히 높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의 투쟁 계획은 너무 자기 제한적이었다.

단병호 위원장은 대회를 마무리하면서 일부 노조 부문의 어려운 조건을 설명하며 불충분한 투쟁 계획에 대한 불만을 달랬다.

부문간 불균등 논리는 총연맹만 편 게 아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지도부는 조합원들 간의 자신감 불균등 논리로 파업을 회피했다. 파업 찬반 투표를 조직할 충분한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파업을 찬반 투표에 부치고는, 파업이 부결되자 “조합원 동지들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다.

단호함

11월 6일, 10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 쌍용차 등 자동차 노동자들과 금속·공공부문 등이 중심을 이뤘다.

하지만 정부도, 언론도, 기업주들도 내일이면 노동자들이 직장에 복귀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유작작했다.

12일 파업도 하루에 머문다면 노무현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투쟁은 자칫 시간을 질질 끌다가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노동자들의 기운만 빼놓는 식으로 끝날 수 있다.

이미 투쟁은 다시 한번 기로에 놓여 있다. 민주노총의 전투적 현장 노동자들이 12일 하루 파업 이상의 투쟁을 하면 좋겠다. 우리는 그들이 12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기를 갈망한다.

노무현은 새 정부답지 않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노무현과의 노정 협상이 아니라 단호한 행동이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

이번 투쟁을 흐지부지한 채 사용자 대항권 문제를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려 한다면 민주노총은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용석 씨 분신 이후 노무현 정부의 노동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즉시 범국민대책위를 구성했다.

그럼에도 주요 시민단체들은 노동자 투쟁이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파병 반대 농성이 노동자 투쟁에 가릴까 봐 우려했다.

또, 일부 사회단체는 노동자 문제가 다른 민중(특히 농민)의 문제들과 나란히, 똑같은 비율로만 제기되기를 바랐다.

이런 방식은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전쟁, 기아, 빈부 격차 등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낳는 체제의 심장, 즉 이윤을 공격할 수 있는 세력은 노동자 계급뿐이다.

파병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