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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심야노동은 노동자의 삶을 갉아먹는 악마다

유성기업 투쟁 이후 주간연속2교대제의 필요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어, 심야노동의 폐해를 생생하게 고발하는 이 글을 재개재한다. 글을 쓴 기아차 활동가 장호철 씨는 심야노동에 따른 수면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며 오랜 기간 싸웠고, 결국 올해 1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저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차지부 조합원이고, 노동조합 전임자입니다. 벌써 11년 전 이야기입니다. 처음 기아차에 입사할 때 주야간노동에 대해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좀 힘들다는 것과 남이 잘 때 나는 일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쌍코피 터지게 힘들다는 말은 이럴 때 쓰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한 달, 두 달, 견딜 만했습니다. 그런데 증상은 다른 데서 나타났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심한 속 쓰림과 위장장애가 나타났습니다. 수시로 내시경 검사를 했고, 약을 타다 먹었습니다. 위장장애는 과민성대장증군으로 이어졌습니다. 검사를 하면 크게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변비와 설사가 반복되고 좀 자극적인 음식을 섭취하면 2~3시간 만에 변으로 나왔습니다. 몸무게는 54킬로그램까지 빠져 피골이 상접했습니다. 늘 피곤했고, 무기력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 몇 년을 일했습니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구름 위에 떠있는 듯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꼭 독한 감기약을 먹은 느낌이었습니다. 가끔 눈 앞이 뿌옇게 보였습니다. 주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월요일은 마의 시간이나 다름 없습니다. 심야노동에 들어가는 노동자 대부분이 3시간 미만의 잠을 자거나 아예 잠을 자지 않고 출근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2000년 초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좀처럼 잠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야간노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시적 경험이려니 했습니다. 또 늦게라도 잠을 잘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텔레비전을 보다 잠깐 잠들 때도 있었는데, 깨면 그날 밤 잠은 공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잠드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습니다. 밤을 꼬박 새고 출근하는 날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불면이 지속되면서 피로는 누적됐습니다.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는데 잠을 못 자니 그 긴장감은 상당했습니다. 걱정이 많아질수록 잠은 더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잠을 계속 못 자다가는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초저녁부터 잠자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눕기만 하면 온몸에 전기가 오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정말이지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병원을 찾아가 진단을 받았는데 불안장애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질병이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점차 심야노동 때문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 난 주야간노동자임을 강조했고, 야간노동을 하지 않으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그럼 좋지요” 라고 답변했습니다. 그 날부로 난 과민성대장증후군 진단을 받아 상병휴직을 했고, 연월차 휴가를 모두 사용해 쉴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쉬었습니다.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증상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약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편안했습니다.

그러나 복귀하면서 상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약으로 버티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노동조합 전임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전임생활 3개월 만에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약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잘 잘 수 있었습니다.

전임생활을 마치고 현장에 복귀해 다시 주야간노동에 들어갔습니다. 서서히 몸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점차 잠이 오지 않으면서 수면시간이 짧아지고, 불안이 급습했습니다. 저는 이때 정의했습니다. '심야노동은 악마다.' 결국 난 몸이 심하게 망가져서야 심야노동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이후 난 이런 이야기를 현장 조합원들에게 자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느 반 누구도 그렇다던데', ' 어느 부서 누구는 그것 때문에 주간으로 옮겼다던데' 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저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심야노동이 수면장애를 부르고 불안과 연결돼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첫째 조처로 일단 야간근무 시 무조건 00시 30분에 퇴근했습니다. 남는 오후시간에 인터넷을 뒤지고, 여기저기 수소문해 연구논문을 게재하는 사이트에서 관련 자료들을 찾았습니다. 수면관련 책을 사서 읽은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확신했습니다. '주야간교대근무에 따른 수면장애는 산업재해다.' 명백한 의학적 사실이 있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들이 있는데 왜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는 것일까? 거기에 정치가 개입되고, 자본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산업재해가 될 리 만무했습니다.

저는 절차를 밟아 공단에 산업재해요양신청을 낼 때부터 준비했습니다. 저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수십만 명의 야간노동자 중 단 한 명도 산업재해로 승인받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법원까지 간다는 각오로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수면-각성리듬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의 행정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불안장애는 의학적 근거가 부족할 수 있다는 이유로 패소처분을 했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발표되자 자본과 권력자들은 의학적 근거가 확실한 수면-각성리듬장애조차 개인적 소인이라며 항소했고, 국내 10대 로펌사 세 군데를 지정해 변호에 나섰습니다.

재판의 승패를 떠나 주야간노동자가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노동자는 알아야 합니다. 내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근무시스템의 대변화를 이 사회에 촉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조합 차원에서는 주간2교대제를 요구하고, 생산설비를 늘려 신규인원을 충원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요구가 사방팔방에서 쉼 없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노동조합이 투쟁에 나설 때 주간2교대는 실현 가능합니다. 수면장애에서 시작된 싸움이 주간2교대제를 완성하는 불꽃이 되는 것을 저는 기꺼이 환영합니다.

주야간교대 근무에서 비롯한 질병을 개인의 문제인 양 안고 사는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방법은 심야노동을 끝장내거나, 퇴사하는 일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그 인원이 극소수라면 주간고정근무로 옮기면 되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본과 권력자들은 언제나 공동행동을 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이익이 심각하게 침해될 위기에 처하면 더욱 친밀하게 관계를 유지하며 노동자들을 공격합니다. 자본과 권력자들처럼 노동조합들이 서로 연계하고 긴밀히 협조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습니다. 올해 기아차노동조합은 주간2교대제 완성을 핵심의제로 선정해 투쟁할 차분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노조 활동가들도 주간2교대 논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간2교대제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근무시스템을 바꾸는 중차대한 문제고, 자본의 큰 양보를 필요로 합니다. 결국 주간2교대제 완성은 투쟁을 부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현장의 건전한 활동가들이 투쟁을 모아내고, 노동조합이 목표를 완수하는 투쟁을 강도 높게 전개해야 합니다. 주간2교대제 쟁취 투쟁은 주야간노동자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자의 삶을 향상시키는 투쟁입니다. 또 죽지 않을 권리를 위한 투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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