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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 농성의 수칙

이 글은 2000년대 초반에 다함께가 발행한 소책자다.
이 글의 목적은 점거 농성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조직해야 하며,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소개하는 것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법인화에 반대해 단호한 점거에 들어간 지금, 이 글이 투쟁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일부를 수정해 게재한다.

? 왜 점거 농성인가?

? 점거 농성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 점거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점거 농성 회의

? 점거 농성 위원회

? 사람들의 재능을 활용하기

? 점거를 확대하기

? 법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왜 점거 농성인가?

집회·피켓·시위·불매 운동·로비 등의 활동은 중요하며, 종종 학생들과 학교 당국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자신이 고립돼 있지 않으며 함께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점거 농성은 다른 투쟁 방법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점거 농성이야말로 등록금 동결, 기숙사 확충, 더 나은 시설과 교육을 쟁취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고 생각한다.

대학 행정 기구 등 학교의 핵심 건물을 점거·통제하면 학교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정부와 학교 당국이 바라는 ‘교육’을 좌절시킬 수 있다. 점거 농성이 여러 대학으로 확산된다면 전체 교육 체계의 상당 부분이 마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점거 농성의 또다른 중요한 특징은 참여다. 점거 농성은 학교 안에서 진행되고 모든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백 혹은 수천 명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지금 학생들의 불만이 너무나 만연해, 투쟁을 올바르게 조직한다면 점거 농성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들까지 대거 참가하는 점거 농성 물결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같은 행동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배운다. 점거 농성은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여러 활동이나 교육 문제 토론에 끌어들일 수 있다. 이처럼 학생들이 더 많이 참여할수록 학교 당국은 우리가 부당한 정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점거 농성이 잘 조직되고 활력이 넘치면 한 대학에서도 커다란 승리를 거둘 수 있고, 나아가 전반적인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투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점거 농성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조그마한 지방대학이나 규모가 큰 대학이나 학생들은 한결같이 더 나은 교육을 원한다. 정부의 교육 정책은 학생들이 바라는 교육과 완전히 어긋난다. 게다가 우리가 학교 당국에 압력을 넣기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고유한 문제들이 각 대학마다 산적해 있다. 대학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우리 교육을 망치는 건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교육을 바라는지 토론하는 일도 중요하고 정부가 충분한 국가 보조금을 내놔야 한다고 논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대학 학생들을 가장 열받게 하는 구체적 사안들을 쟁점화하는 점거 농성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

* 당신이 다니는 대학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낸다.

* 구체적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행동을 논의하는 특별 토론회에 참여할 것을 호소한다. 모든 건물 로비와 복도와 식당과 강의실에서 수백~수천 명의 서명을 받는다.

* 점거 농성을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끼리 회의를 연다. 이 회의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을 다음 회의에 끌어들일 수 있도록 리플릿·포스터·스티커·기타 홍보물을 준비한다.

* 모두가 점거 농성 토론회에 대해 알도록 건물 로비나 식당에서 토론회를 열고 강의실 홍보전에 들어간다.

이 모든 행동은 대학인들의 삶을 좌우하는 쟁점들에 대한 토론과 논쟁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이 점거 농성에 대한 의문들을 제기하도록 북돋우라. 과연 효과적일까? 학교를 마비시킴으로써 수업을 못 듣게 되지는 않을까?

활동가들이 이런 고민들을 풀어줄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점거 투쟁의 승리를 확신시킬 수 있다. 우리는 더 낮은 교육비와 충분한 강의실 좌석과 더 좋은 도서관을 원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 계획의 의의는 교육을 멈추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도록 하는 데 있음을 알려야 한다.

점거 농성을 조직하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은 학생들이 모이기 쉬운 야외 광장이나 대형 강의실 등에서 최대한 대규모 토론회를 여는 것이다. 대중적 토론회는 점거를 둘러싼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이나 회의적 견해들이 서로 충돌하고 단호한 행동을 위한 의사 결집이 이뤄질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점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투표로 점거 농성을 결정하고 나면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토론회의 격앙된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참가자들의 의사를 존중해 단호하게 밀고 가는 것이다. 우선 몇 명이 점거할 건물로 가서 직원들에게 간단 명료하게 건물을 점거할 테니 비워달라고 말해야 한다. 교직원들은 물론이고 경비들도 모두 나가야 한다. 점거 농성자들이 스스로 규찰대를 조직하고 건물 출입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거 농성 회의

점거 농성하는 동안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기 집회를 하루에 두 번 정도 열어야 한다. 이런 집회에서 앞으로 사용할 전술을 논의해야 하며, 이런 집회는 점거 농성을 지도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 집회에 걸리는 시간은 집회마다 크게 다를 수 있는데, 총장과 대화하느냐 아니면 농성을 계속하느냐를 둘러싼 논쟁은 몇 시간씩 갈 수도 있다.

이런 집회들은 점거 농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중심이 돼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조직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학생 식당·휴게실·로비 그리고 학생들이 자주 들르는 술집에 리플릿을 돌려야 한다.

점거 농성의 위력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토론과 활동에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런 집회들이 효과를 거둔다면 점거 농성에 반대표를 던졌던 학생들도 점거 농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만들 수 있다.

점거 농성 위원회

농성을 수행하려면 음식물에서부터 팩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물품을 준비해야 한다.

매일 매일 점거 농성 속보를 발행하고, 규찰을 서고, 홍보를 하고, 강당이나 휴게실을 돌아다니고, 음식과 물을 조달하고, 다른 대학들에 대표를 파견하고, 그 지역 공장과 노동조합에 찾아가 모금을 하고, 노동조합 간부나 학생회 간부 들에게 집회에 와서 연설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또한 농성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특별한 주제를 정해서 강의와 토론을 한다. 적절한 오락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민주적으로 조직하려면 일반 학생들 가운데서 투쟁 정서를 가장 잘 대표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점거 농성 위원회를 선출하는 게 좋다.

점거 농성 위원회는 모든 점거자들에게 농성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모든 점거자들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점거 농성 위원회가 반드시 학생회 간부들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일반 학생들 가운데서 농성을 창조적으로 잘 이끌 새로운 지도부가 배출될 수도 있다.

학교 당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역시 선출된 위원회가 하는 게 좋다. 그리고 점거 농성을 끝낼 시기에 관한 문제나 학교 당국의 양보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집회에서 토론하고 결정해야 한다.

사람들의 재능을 활용하기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평소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그것을 발휘할 기회가 좀처럼 없다. 점거 농성 동안에는 그런 재능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미대 학생들이라면 멋진 현수막을 제작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연주에 재능 있는 학생이 있다면, 사람들 앞에서 즉석 연주를 함으로써 점거 농성 기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점거 농성을 확대하기

점거 농성이 더 많은 지지를 얻으려면 매일 점거 농성 속보를 뿌리는 등의 일 말고도 많은 사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점거 농성에 참여하지는 못해도 집회나 여타의 행사에는 참여할 수 있다. 이런 참여는 학교 당국에게 학생들이 단결해 있으며 중요한 의사 결정에는 몇 백 명이고 더 모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점거 농성자의 수가 불어나면 다른 건물과 다른 지역으로 농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같은 대학인데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 경우에 이런 확대는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점거 농성 확대는 다른 대학들에서 지지 운동을 건설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다른 대학들도 싸워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기성 언론들에서 소식을 보도해 주길 기다리지 말고 온라인이나 트위터·페이스북 등을 통해 점거 상황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

한 대학의 성공적인 점거 농성은 다른 대학들을 무척 고무할 것이다. 대학 간의 이런 연계는 우리가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요구사항도 관철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준다.

법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법에 관해 우선 말해야 할 것은 겁먹을 필요 없다는 것이다. 점거 농성이 ‘불법’이라는 논리는 점거 농성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점거 농성자들을 위축시키기 위해 쓰는 상투적인 수법이다.

대학 당국이 점거 농성을 두고 ‘불법’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대학의 재산을 통제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음을 강조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점거자들에게 나갈 것을 명령하거나 강제로 쫓아내려고 경찰력을 동원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되면, 점거자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학교당국의 명령에 따라 고분고분 나갈 것인가, 아니면 저항 없이 경찰에 의해 끌려 나갈 것인가, 그도 아니면 적극적으로 저항할 것인가?

법을 무력화할 수 있다. 법을 앞세운 위협에 학생들이 겁을 먹고 점거 농성을 해산하려 할 때 대학 당국은 오히려 더 법적 제재 조치를 강화한다. 반대로 대학 당국이 점거 농성자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것에 분노하는 학생들을 더 많이 참여시켜 반대 캠페인을 효과적으로 조직한다면 대학 당국의 협박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점거 농성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그만큼 대학 당국의 점거 농성 분쇄 기도를 무력화하기 쉽다. 그렇다면 열쇠는 불법이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끝없이 논쟁만 하는 게 아니라 단호하고 집중적으로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마치며

점거 농성자들은 “우리는 승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음을 입증해야 하고, 또 입증할 수 있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들은 정부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고 수업료 제도를 도입하려는 계획을 완전히 철회시켰다. 그 투쟁은 처음에 파리 외곽 낭테르의 한 대학에서 출발했는데, 매우 빨리 확산됐다. 단 몇 주 만에 50개가 넘는 대학으로 확산됐고, 프랑스의 모든 단체들로부터 거대한 지지를 받았다.

정부와 학교 당국이 언제나 강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단결해 있고 단호하게 저항한다면, 등록금 동결과 교육 조건의 개선을 쟁취할 수 있다.

학생들의 재정적 부담에 기초한 교육은 학생들이 바라는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