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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항쟁 현장을 가다:
노무현 "토론 공화국"의 허구성을 입증하다

마침내 부안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11월 17일, 4차 공동협의회에서 올해 안에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핵폐기장 백지화 핵발전소 추방 범부안군민 대책위원회’(부안대책위)의 최종 제안을 정부가 거부했고, 다음 날 부안대책위는 “대화 결렬”을 선언했다.

그 날 촛불 집회가 끝나고 행진하는 1천여 명의 주민들을 경찰이 가로막자 쌓였던 분노가 폭발했다.

분노한 주민들은 화염병, 휘발유가 든 비닐봉지, 돌멩이 등을 던졌고 농기구와 쇠파이프, 몽둥이 등을 들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주민들은 도로에 폐타이어 수십 개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고 가스통에 불을 붙였다. 부안 보건소와 전국체전이 열렸던 문화예술회관에도 화염병을 던졌다.

19일에는 2천 명의 주민들이 서해안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돌멩이와 병을 던지며 경찰과 싸웠고, 20일에는 새만금 사업을 기념하는 새만금 전시장에다 불을 지르려다 경찰에 의해 저지됐다.

주민들이 대화 제의를 받아들이고 등교 거부를 철회하자 이제 투쟁이 한풀 꺾였다고 생각했던 정부는 주민들의 폭발적인 투쟁에 크게 갈팡질팡하고 있다.

17일과 19일에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자 국무총리 고건은 “시기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며 “연내에 못하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지만, 바로 다음 날 “주민투표법이 처리돼야” 가능하다고 하룻만에 말을 바꿨다.

23일 관계장관회의에서 주민투표 조례를 만들어 한 달 안에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다음 날 노무현은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확고한 선례를 남겨야 한다.” 하고 말했다.

다른 한편,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정부의 공격은 신속했다.

이틀 동안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주민 수백 명이 부상당하고 연행됐다. 20여 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그 중 한 명은 중태다. 연행자 가운데 11명은 구속됐다.

노무현은 인구 2만 5천 명의 부안읍에 8천여 명의 전투경찰을 배치했고, 이들은 시위 장소뿐 아니라 각 면에 수백 명씩 배치돼 모든 도로에서 검문을 하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한 학생은 부안이 “계엄”상황 같다고 했다. “전경들이 읍내 가운데서 사방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서 있어 지나가지도 못하게 해요. 그래서 어제 새벽 2시에나 집에 갔어요.”

경찰은 117일째 지속된 수협광장 앞 촛불 시위도 원천봉쇄했다. 노란 깃발과 노란 티셔츠 물결이 넘실거리던 곳이 시커먼 전경들로 가득 찼다.

민주주의

노무현은 “선 질서회복, 후 설득”을 말하고 있다. 부안에 투입된 경찰도 1백 개 중대 1만 2천 명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도 집회 및 시위법이 아닌 형법을 적용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주민들의 투쟁 의지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17일과 19일 시위를 거치면서 오히려 대열이 늘어났다. 부안대책위는 경찰이 촛불 시위를 원천봉쇄하자 강경 투쟁 방침을 재확인했다.

수협 앞 촛불 집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주민들은 부안성당에 모여 촛불 집회를 하고 있다.

대책위의 한 활동가는 “이라크에서 부시와 싸우는 게릴라들처럼 우리도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조선일보〉를 위시한 언론이 연일 “불법 폭력 시위”라고 비난을 퍼부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아이들 누구도 [왜 폭력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혼란스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부모들이 매일 경찰에게 폭행당하고 방패에 찍혀 병원에 실려가고 있다. 또, 늘 정부와 대통령으로부터 기만당하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은 왜 좀더 강력하게 싸우지 않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학생들은 “처음엔 어른들이 싸웠거든요. 근데 그저껜 할머니들이 전경한테 막 맞으니깐 고등학교 형들이 파이프 들고 싸웠어요.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말려도 막 나서서 화염병도 던지고.”라며 서로 인터넷 메신저를 이용해 등교 거부를 해야 한다고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노무현은 교활하게도 부안대책위와 주민들을 분리시키려고 하고 있다. “단순 시위 가담자와 폭력시위를 주도한 지도부에 별도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안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는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노무현 정부와 부안군수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주민들의 뜻을 거슬러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한 부안군수와 이를 받아들인 노무현은 주민들의 적일 뿐이다.

“법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요. 군민들이 잘하라고 뽑은 군수, 잘못하면 끌어내릴 수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오히려 부안대책위야말로 부안 주민들의 진정한 대표 기구다.

부안군청이 컨테이너 박스와 경찰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있는 동안 부안대책위의 임시 사무실이 있는 부안성당은 매일 주민들로 북적였다.

그 곳에서 주민 대표들과 농민 대표, 여성 대표, 학부모 대표, 교사 대표, 학생 대표, 환경운동가 들이 참석한 회의가 수시로 열렸다.

등교 거부 기간에는 학생들의 배움터, 놀이터 노릇을 하기도 했고, 주민들이 수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기거하기도 했다.

군의회 의원들조차 의회 문을 닫고 부안성당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주민들은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하고, 시위용품을 그 곳에서 직접 제작했다.

네 달이 넘도록 투쟁을 지속해 온 부안 주민들은 대부분 “더 이상 시간 끌기식 대화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그 동안 대화기구에서 전면백지화를 요구하는 부안 대책위에 주민투표를 제안해 왔지만 정작 대책위가 이를 받아들이자 “아직 홍보가 부족하다”며 거부했다.

더 기다릴 수 없다

그러나 몇 달 동안 텔레비젼 광고를 비롯해 홍보비로만 74억 원을 들이고도 아직 홍보가 부족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단지 시간 끌기용 핑계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중재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은 부안 사태의 해결을 위해 시민사회단체 중재단을 구성키로 했다며, 부안 주민들도 극단적인 대치 상황을 피하기 위해 “폭력 시위”를 자제하고 기다리라고 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기식 씨는 “시민단체 중재단을 구성한 뒤 부안 주민과 정부 양측을 만나 주민투표 시기·절차·방식 등과 관련된 합의안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재안이 주민들의 요구를 담지 못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정작 이들의 중재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빠른 해결을 바라는 주민들보다는 위기에 빠진 노무현 정부에게 시간을 벌어 주는 꼴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안중학교의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시간 끌면 정부만 유리해요. 정부가 돈이 많으니깐 마을 이장한테 돈 줘서 그 돈으로 찬성 만들어 내요. 이장이 찬성 도장 찍으러 다니면서 도장 안 찍어 주면 오히려 화내요. 부안이 발전한다는데 왜 협조 안 하냐면서.”

부안 주민들은 노무현식 “참여민주주의”에 중대한 도전을 하고 있다.

집권 8개월 만에 재기 불능의 위기에 빠진 노무현 정부를 확실히 물러서게 하려면 지금처럼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한다.


부안 주민들은 말한다

“사실 주민투표는 우리가 원했던 것도 아니다. 이게 오히려 정부가 도망갈 길을 내줬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시민단체들이 중재를 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것보다는 왜 군민들이 이렇게 처절하고 싸우고 있는지를 알아 보고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부안 주민 김병국 씨

“우리는 국회의원들 안 믿습니다. 하도 속아왔기 때문이죠. 지역에서 한 얘기와 서울에서 하는 얘기가 다른데,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믿나?”

부안 주민 이상공 씨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그런데 경찰은 우리가 세 명만 모이면 방패로 밀면서 강제 해산시킨다. 경찰들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로 주민들에게 방패를 휘두른다. 이런 깡패 짓을 저지른 노무현 정부야말로 진짜 폭도다.”

11월 25일 상경 시위를 벌인 한 부안 주민

“지금 부안은 ‘인공’ 시대다. 낮에는 주민들이 자유롭게 활동하지만, 저녁 무렵부터는 전경들이 온통 거리를 채운다.”

부안대책위의 한 활동가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한 것은]내 일생에서 가장 실패한 선택 중 하나다. 부안 주민들은 물론이고, 부안 지역 교사들 대부분도 그를 선택한 것에 후회한다.

“더 확실한 것은 나를 포함한 많은 주민들이 선거 행위 자체에 심각한 회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쁜 마음으로 지지하고 당선됐을 때 그렇게 들떠했었는데, 배신감이 너무 크다.”

부안중학교 김명희 교사

“어제 병원 앞을 전경들이 막고 서 있었거든요. 임산부가 산부인과로 들어가려고 비켜달라고 소리지르자 전경이 임산부 머리를 확 쳤어요. 남편이 항의하다가 전경들에게 맞아서 흘린 피가 임산부 옷에도 튈 정도였어요.”

부안중학교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