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반긴축 투쟁, 아랍 혁명, 그리고 좌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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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최근 있었던 국제사회주의경향(IST) 주요 단체 대변자들 사이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 관련한 최일붕(다함께 국제연락간사)의 말은 생략했다. 녹취와 번역에는 다함께 회원인 박준규, 천경록이 수고해 줬다.
유럽의 긴축 반대 투쟁
파노스 가르가나스(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SEK): 언론들도 그리스의 디폴트는 시간문제임을 인정하고 주변부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신규 구제금융을 하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구제금융은 1년도 안 돼 실패했다. 구제금융의 조건에는 즉각적 사유화도 포함돼 있고, 이는 강력한 저항을 부를 것이다. 사유화에 맞서 전력 노동자들이 무기한 파업을 시작했다. 조만간 48시간 총파업도 계획돼 있다. 그 외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을 비롯한 여러 광장에서 점거 시위가 진행 중이다. 정부가 살아남을지 불분명하다.
지난주 신임투표는 간신히 넘겼지만 이번 주 신임투표는 총파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이루어질 것이다. 정부가 버텨낸다 해도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총파업 총력 동참을 선동하고 있다. 또한 신타그마 광장을 사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운동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는 불투명하지만 [경제 위기와 저항 속에서 정권이 붕괴됐던] 2001년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파업 물결 속에 정부가 붕괴하면 머지않아 디폴트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거리의 분노를 노동자 투쟁과 결합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아르헨티나보다 더 준비된 상태로 이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슈테판 보르노스트(독일 마르크스21): 독일은 그리스 사태의 동전 반대면이다. 그동안 독일 지배계급은 유로존으로부터 커다란 혜택을 얻었다. 임금억제, 수출 확대 등. 사르코지와 메르켈은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금융 부담을 독일이 질 것인지 프랑스가 질 것인지를 두고 분열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스페인 등지에서와 같은 큰 저항은 없다. 경제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률도 역대 최저다. 지배계급은 어떻게든 그리스에 민영화를 강요해서 이익을 취하려 할 것이다. 가령 도이체 텔레콤이 그리스 전력공사를 인수하려 한다. 반면 독일 디링케[좌파당]는 훌륭하게도 그리스 부채 탕감을 주장하고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 영국에서는 6월 30일 백만 명이 참가하는 공공부문 총파업이 계획돼 있다. 이것은 중요한 일보전진이다. 불행히도 일부 좌파는 ‘총파업 구호는 부적절하다. 지역적 대중 캠페인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긴축에 반대하는 지역적 캠페인들을 노동자 파업과 대립시키는 것이다. 스페인 시위에서 나타난 노조에 대한 적대감은 이 중 극단적인 사례다.
파노스가 말한 ‘거리의 분노와 조직 노동자들을 연결시키기’라는 관점을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거리와 파업을 대립시키는 접근법을 거부해야 한다. 이런 접근법은 지난 10년 동안 조직 노동자들의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서 — 예컨대 2003년과 2007~8년 프랑스의 노동자 파업은 패배로 끝났다 — 부상한 대중 운동의 운동주의적 성향을 반영한다. 그리스에 대한 연대도 중요하다. 영국에는 그리스인들이 많은데, 이번 화요일에는 그리스 대사관 앞에서 연대 시위를 할 것이다.
리차드 와이맨(캐나다 국제사회주의자들 IS): 5월에 연방 선거가 있었는데 보수당이 여전히 1위를 했지만, 캐나다판 노동당(신민주당 NDP)이 2위를 했다. 이전 선거보다 2백만 표를 추가로 얻었다. 이를 계기로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올랐다.
캐나다항공의 승무원 파업이 벌어지고 있고 우체국 노동자들도 파업 중이다. 우체국 노동자들에 대한 지역 단체들, 빈민, 노인 단체들의 연대가 활발하다. 즉 ‘거리 대 파업’이라는 대립 구도가 성립하지 않았다.
우체국 노동자들과 승무원들이 평조합원들의 발의로 서로 피켓 라인에 지지방문을 가는 보기 드문 연대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NDP의 부상이 사람들의 누적된 불만을 분출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NDP는 동시에 우경화하고 있다. 최근에 지도부는 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요소를 삭제하려 했다가 기층 당원들의 반발에 밀려 실패했다. 그러나 지도부는 자유당과 통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중도주의적 모습도 보인다. 곧 전국적 파업이 계획돼 있고 가을에는 주 단위로 파업들이 계획돼 있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가 이를 실행할지는 미지수다.
알렉스: ‘거리냐 파업이냐’ 논쟁의 제기 여부는 이전의 맥락에 달려 있다. 영국에서는 최근에 비록 짧았지만 학생 운동의 분출이 있었다. 2008년 말 그리스에서도, 최근 포르투갈, 스페인에서도 청년 운동의 분출이 있었다. 이들은 준 자율주의적 경향을 보였다. 정당 일체를 거부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이 보이는 연성 자율주의는 신자유주의에 연루된 기성 정당들을 거부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좌파 정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을 거부하고 노조를 적대시한다는 단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정치적 토론과 논쟁을 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같은 좌파 정당이 운동을 건설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실천에서 보여 줘야 한다.
파노스: 연성 자율주의가 그리스에서는 매우 강하다. 노조에 뿌리 내린 공산당이 광장 점거에 적대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광장 점거 운동의 약점들을 지적하면서 노동 현장을 강조했다. 일리 있는 지적도 있었고 형식적으로는 옳지만, 실천에서는 보수적인 종파적 대응이었고 결과적으로 좌파에 대한 적대감을 키웠다.
자율주의를 추수하는 경향도 존재한다. 운동에 새롭게 합류하는 사람들은 모든 정당이나 노조를 거부하는 후진적 사상도 갖고 있기 마련인데, 이를 추수하면 결과적으로 좌파가 주변화된다.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사상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신타그마 광장 점거가 한 달째 지속되고 있는데, 여기에 참가하는 대중의 현재 의식 수준은 한 달 전보다 몇 광년을 진보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신문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고, 팻말을 들지 말라는 논쟁도 있었고, 전력 노동자들이 대열에 합류하는 것에 적대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수요일에는 노조 대열이 광장에 행진해 들어오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날 우리는 당 깃발을 든 채 경찰과 대치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응원했다. 요컨대 우리는 종파주의와 추수주의 둘 다를 피하면서 개입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알렉스: 2주 전에 런던에서 유럽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가 개최됐다. 영국 SWP, 그리스 SEK,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NPA), 포르투갈 좌파블록, 덴마크 적록동맹 등이 참가했는데 여기서 디폴트 문제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좌파블록은 디폴트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포르투갈 사민당이 좌파블록이 디폴트를 지지한다면서 좌파블록을 공격했고(좌파블록이 실제로는 디폴트에 대해 침묵했지만), 이 때문에 좌파블록이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자체 평가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우리는 디폴트 문제를 더 많이 다룰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우파들은 그리스가 당연히 평가절하를 하고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우파들과 차별화된 디폴트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파노스: 정당이 너무 좌경화하면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주장이 흔하다. 그리스의 시리자(급진좌파 연합)에서도 그랬다. 선거 평가를 그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당내 우파가 탈당해서 나간다. 이런 논쟁을 피하면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그런 논쟁을 통해 좌파가 강해질 수 있다.
아랍 혁명의 전진
알렉스: 최근 동지들이 카이로에 자주 다녀와서 따끈따끈한 정보를 수집해 오고 있다. 이집트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대중 동원 수준이 높다. 노조 조직 운동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민주노동자당(DWP)도 급성장하고 있다. 최근 당원 수가 3천 명에 달했다. 이들은 모두 노동자 활동가들이기 때문에 영향력이 크다.
그러나 이집트 상황은 뒤죽박죽이다. 다가올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이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젊은 무슬림형제단원들은 상당히 운동에 친화적이다. 튀니지는 상황이 더 불투명하다. 바레인은 패배했음이 확실해 보인다. 예멘은 일단 대통령을 몰아냈다는 점에서 승리했다. 시리아에서는 엄청난 탄압에도 운동이 3개월째 지속되고 있고 가라앉을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슈테판: 독일에서는 아랍 혁명에 관한 논의가 이스라엘과 반유대주의, 팔레스타인 해방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디링케 지도부는 곧 정부에 입각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규율을 강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반유대주의와 동일시하는 것도 그런 규율 잡기의 일환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주 전 디링케 원내 대표가 가자지구 연대를 위한 플로틸라(구호선), 팔레스타인 연대 캠페인(PSC), 일국가 해결책에 대한 지지, 이 세 가지를 반유대주의의 요소로 거론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공식 당론으로 채택하기 위한 표결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역효과만 불렀다. 논쟁을 통해 가자지구 연대를 위한 플로틸라에 대해 몰랐던 당원들도 이를 지지하게 됐을 정도로, 반대표가 많이 나왔다. 당내 우파가 오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