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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노동자 계급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 조셉 추나라(사진)가 2015년 2월 방한해 〈노동자 연대〉 신문 기자들과의 모임에서 한 강의이다. 올해 37살인 추나라는 인도계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영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17살 때인 1995년 누나를 따라 SWP에 가입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왔으나(이론물리학 석사), 전업 당 일꾼이 됐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과 당 재정 관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노동자 연대〉 편집자가 덧붙인 말이다.

노동계급의 힘을 둘러싼 좌파 내 논쟁은 역사가 참 깁니다. 1840년대 영국 차티스트 운동의 지도자 토마스 쿠퍼가 1870년대에 쓴 자서전을 보면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차티스트 운동 때의 혁명적 노동자들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노동자들이 옷도 말쑥이 차려입고, 도박도 하고, 애완견도 키우더라.’ 그는 노동자들이 너무 풍족해져서 부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뒤에 발행된 비어트리스 웹의 일기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비어트리스 웹은 페이비언 운동의 지도자였습니다. 페이비언 운동은 점진적 개혁을 주장했고, 나중에 노동당의 일부가 됐습니다. 웹은 런던 동부에 살던 노동자들이 얼마나 처절하고 비참하고 궁핍하게 사는지를 묘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빈곤 탓에 너무 부패한 노동자들은 결코 사회주의를 위해 싸울 수 없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잠잠할 때면 항상 이런 주장이 성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틀렸음이 거듭 입증됐습니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 때문에 거듭 투쟁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노동계급이 변했다는 생각이 좌파 사이에서 요즘처럼 완전히 득세하게 된 것은 지난 2백 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인 듯합니다.

노동자의 힘이 사라졌다는 주장들

세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첫째, 안토니오 네그리입니다. 네그리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직장 안에만 머무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는 해체됐다. 그 대신 사회의 전 영역에서 생산이 이뤄지는 시스템이 도래했다. 사람들은 샤워할 때도 잠잘 때도 가치를 창출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노동계급이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 없게 됩니다. 어디에서든 저항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례는 가이 스탠딩입니다. 그는 네그리와는 다릅니다. 그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뭉뚱그려 ‘프레카리아트’라는 하나의 범주에 밀어넣습니다. 그리고는 그 집단이 전후 호황기에는 흔했던 안정된 일자리를 갖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프레카리아트’는 종래의 “샐러리아트”와 계급적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스탠딩은 주장합니다.

셋째 사례는 슬라보예 지젝입니다. 그는 네그리의 주장과 스탠딩의 주장을 모두 조금씩 받아들입니다. 2011년 영국에서 공공부문 노동자 2백50만 명이 파업을 벌인 직후 지젝은 〈런던 리뷰 오브 북스〉라는 매체에 눈에 확 띄는 글을 하나 기고했습니다. 그 글의 제목은 ‘봉급쟁이 부르주아지의 반란’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임금이라는 특혜를 위해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그들의 파업은 임금이라는 특혜를 박탈당한 사람들, 비루하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했다.”

제가 보기에 이런 분석들은 계급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동시에, 그동안 일어난 변화를 과장합니다. 그리고 흔히 신자유주의를 이 모든 변화를 불러일으킨 마법의 지팡이인 양 취급합니다.

신자유주의는 무엇인가?

신자유주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개념을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여러 의미로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신자유주의가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는 오랫동안 경제사상계의 언저리에 있었습니다. 1970년대의 위기가 당시의 공식 이데올로기였던 케인스주의나 국가 개입적 경제 성장론의 신뢰를 무너뜨리자 신자유주의가 무대의 중앙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당시 주요 국가 지배계급들이 벌이던 일을 정당화하는 데 매우 유용한 이데올로기였습니다.

둘째, 신자유주의는 이제는 주류 정치권이 대부분 받아들이는 정책과 제도를 뜻합니다. 민영화, 규제 완화,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법인세 인하 등이 그 사례입니다. 신자유주의는 특정 유형의 기관을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는 거의 모든 나라에 있는 독립적 중앙은행이 그렇습니다. 중앙은행의 존재 이면에는 중요한 경제적 결정권을 정치인의 손에서 중앙은행으로 넘겨야 한다는 합의가 있습니다.

셋째, 어떤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의 더 깊고 근원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용어로 씁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목하는 첫째 변화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장기 호황 때부터 자본이 국경을 넘어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제 무역도 1930년대 대불황 전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갈수록 생산이 국제적 수준에서 조직됐습니다. 특히 국제 금융이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이런 변화들에 더해, 1970년대부터는 자본주의의 위기도 부활했습니다. 이 위기의 근원은 이윤율 하락이었습니다. 위기에 대응해 지배계급은 그때그때 실용적 처방을 내놨고, 그것들을 신자유주의라며 정당화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지배계급들이 똘똘 뭉쳐 일관되게 추진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눈에 척 보기에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현실은 간극이 큽니다. 한편에서는 국가 개입에 반대한다는 얘기가 무성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개악을 국가가 나서서 시행합니다.

심지어 민영화조차 보편적으로 채택되는 정책이 아닙니다. 의료·교육·대중교통 등의 부문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은 때로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의료 민영화는 매우 선별적으로, 그리고 조심스럽게 추진돼 왔습니다. 청소나 시설관리 등 일상 업무는 민간에 매각되기도 했지만, 의료 부문을 통째로 민영화할 태세는 보수당조차 돼 있지 않습니다. 정부의 공공의료 지출은 대처 시절은 물론 블레어 시절에도 계속 증가했습니다.

나라에 따라서도 신자유주의는 매우 다양합니다. 즉, 미국·중국·볼리비아 등지에서 시행된 신자유주의는 각각 다릅니다. 또, 신자유주의를 언제 어떻게 시행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한 나라의 지배계급 안에서 갈등과 긴장이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1년 혁명 전 이집트 지배계급은 어떤 부문을 어떻게 민영화할지를 두고 다퉜습니다. 그런 이유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가 이윤율 저하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이윤율 회복에 약간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에는 철저하고 광범한 산업 구조조정[비효율적 기업들이 파산해 효율적 기업들에 헐값으로 인수·합병되는 것]을 거쳐야 이윤율이 확실히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시기에 노동계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노동계급에 끼친 영향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1960~70년대 이래 지배계급이 노동계급 투쟁을 억제해 왔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한 일은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억누른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큰 논란거리가 아닙니다. 노동계급이 더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냐 아니냐, 겪었다면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이고, 그 변화는 신자유주의의 결과냐 아니냐 하는 것이 진정한 쟁점입니다.

서비스업의 증가, 현실과 효과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흔히들 ‘서비스로의 전환’이라고 부르는 변화입니다. 제조업 고용이 줄고 서비스업 고용이 늘어난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특히 영국에서 이런 변화가 두드러졌습니다. 영국에서 ‘서비스로의 전환’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비효율적인 기업들이 퇴출되면서 더 빨라졌습니다.

그러나 ‘서비스로의 전환’은 신자유주의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나타난 현상입니다. 영국에서 서비스 부문의 팽창은 1950년대에 시작됐고, 제조업의 쇠퇴는 1961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이런 변화의 주요 요인은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였습니다. 자본가들이 계속해서 더 효율적인 기계를 도입함에 따라, 산 노동이 생산과정에서 점점 더 밀려나게 됐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영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수는 1970년대에 견줘 많이 줄지 않았습니다. 고용은 많이 줄었는데 말이죠.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제조업에서 더 빨리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조업이 가장 오래된 산업 부문이기도 하고, 기계화가 가장 쉬운 부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난 수십 년 동안 서비스 부문에서도 유기적 구성을 높이려는 만만찮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기계에 대한 투자가 늘어 생산성이 증가하고 제조업 제품 가격이 떨어진 결과의 하나로, 노동자들의 서비스 수요가 늘었습니다. 그 덕에 소매업과 레저 등 서비스 부문이 팽창했습니다. 그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인프라도 커졌습니다. 물류, 운송, 사무직 노동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영국에서 특히 급성장한 두 부문은 금융과 공공서비스입니다.

공공서비스는 노동자들에게도 좋은 것이지만 현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부문이기도 합니다. 영국 자본주의가 세계시장에서 잘 경쟁하려면 비교적 건강하고 잘 교육받은 노동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런던이 유럽 금융의 허브 기능을 하면서 금융업은 다른 부문에서 고용이 줄어든 것을 벌충하는 구실을 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 경제는 크게 네 부문으로 나뉘게 됐습니다.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가량이 의료, 교육, 지자체 등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일합니다. 5분의 1가량은 소매업, 외식업, 레저, 숙박업, 여행업 등에서 일합니다. 6분의 1가량은 금융, 사업서비스(회계나 마케팅) 등에서 일합니다. 이와 비슷한 수가 여전히 제조업에서 일합니다.

물론 이 분류는 대략적인 것이고, 어느 정도 유동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자동차 공장이 청소 업무를 외주화하면, 그 일자리는 외주화 전에는 제조업으로 분류됐지만 이제는 서비스업으로 분류됩니다.

노동자 계급의 힘이 약해졌는가?

지금부터는 이런 변화가 노동계급에게 함의하는 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물음은 이렇습니다. 이런 변화로 노동계급의 힘이 약해졌는가?

아시다시피 노동계급은 잉여가치를 창출하고, 이 잉여가치가 자본가 이윤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노동계급에게 힘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를 빼앗기는 노동자를 생산적 노동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비생산적 노동자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어,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사무직 종업원이나 거래 업무만 하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비스 부문의 일이 모두 비생산적 노동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는 꽤 많은 노동자들이 잉여가치를 생산합니다. 그들은 서비스라는 형태의 상품을 만들고, 그것은 이윤 창출에 기여합니다. 요컨대, 그 노동자들이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일하는 시간은 그들의 임금이 나타내는 시간보다 많습니다.

서비스는 때때로 이윤 창출에 직접적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서비스는 생산되는 즉시 소비되기 때문입니다. 1984~85년 광원 파업 직전 대처는 파업에 대비해 석탄을 비축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버스 운수 서비스는 비축할 수 없습니다. 현재 런던에서는 버스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 파업은 이윤 창출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전체로 볼 때, 비생산적 노동이 전보다 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생산적 노동자들이 힘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비생산적 자본은 대부분 체제의 다른 부분에서 창출된 잉여가치를 획득함으로써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금융에 투자하는 자본가는 사회 전체의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 형태로 획득합니다. 그런데 그 자본가가 이렇게 잉여가치의 일부를 차지하려면 관련 업무를 보는 노동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노동자들의 파업은 이 부문 자본가들의 이윤 획득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잉여가치를 생산하지도 않고 그 부문 자본가들이 이윤을 획득하는 것에 기여하지도 않는 비생산적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국가에 고용된 교사와 보건 노동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도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첫째, 영국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아주 잘 조직돼 있습니다. 그들이 투쟁을 벌이면 다른 부문 노동자들도 조직을 건설하고 투쟁에 나설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그 노동자들의 업무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과 긴밀히 연결돼 있어서 그 노동자들도 체제를 교란시킬 힘이 있습니다. 예컨대 2011년 영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파업이 영국 경제에 입힌 손실액은 25억 파운드(약 4조 2천억 원)이나 됐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어 일을 하루 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작업장(사업장)이 여전히 저항의 중심인가?

노동계급의 변화와 관련된 둘째 질문은 이렇습니다. 노동자들의 작업장(이하 사업장)이 여전히 저항의 구심이 될 수 있는가?

마르크스는 사업장이 저항의 구심이 될 수 있는 근거로 노동자들이 사업장에 밀집돼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사업장 규모와 관련해 영국 통계는 없지만 미국 통계는 있습니다. 1980년 미국 노동자의 4분의 3은 2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했습니다. 6분의 1은 1천 명 이상 사업장에서 일했습니다. 놀랍게도 2007년 수치는 이와 비슷합니다. 각각의 구간에서 1~2퍼센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바뀐 것이라고 한다면, 대규모 제조업 사업장이 줄어든 만큼 대규모 서비스업 사업장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즉, 여전히 대규모 사업장이 우세합니다.

사실, 사업장이 저항의 구심이 되기 위해 꼭 그렇게 커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1830년대 랭커셔 면직 공장들을 연구한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이 공장들은 전투적 노동자 운동이었던 차티스트 운동의 핵심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공장감독관들의 보고서를 기초로 면직 공장들의 평균 규모를 계산해 봤습니다. 공장마다 평균 1백37명이 고용돼 있었습니다. 즉, 일부 공장의 규모는 그보다 작았을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사업장들의 규모가 크게 줄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마르크스가 살던 시절의 면직 공장들보다 훨씬 더 큰 사업장이 많습니다.

포드주의에서 토요타주의로, 노동의 성격이 바뀌었는가?

노동계급의 변화와 관련된 셋째 질문은 이렇습니다. 노동의 성격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는가?

이런 질문은 흔히 ‘포드주의에서 포스트포드주의(또는 토요타주의)로의 전환’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이런 주장은 노동이 조직되는 방식을 둘러싼 온갖 신화[근거 없는 믿음]를 바탕으로 합니다. 첫째, 노동이 대부분 포드 방식으로 조직됐었다는 신화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지역과 부문에 따라, 노동이 조직되는 방식은 다양했습니다.

둘째, 토요타가 처음 도입했다는 팀제 노동이나 유연 노동이 보편화됐다는 신화입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전형적 제조업인 영국의 식품가공업에 토요타 방식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토요타 방식을 따른다는 자본가들도 사실은 토요타 방식의 일부 요소만을 받아들입니다. 사우스웨일스 지역 일본계 자동차 공장들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그 연구 결과를 보면, 경영진이 도입한 변화는 모두 노동자들에게 추가적 임무를 맡겨 더 많이 일하도록 하는 것을 겨냥한 조처였습니다.

셋째, 이런 새로운 생산 방식 탓에 노동자들의 지위가 약해졌다는 신화입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생산 방식의 한 가지 요소는 ‘적시JIT 생산 체제’라고 불리는 것인데, 오히려 이 때문에 국제 생산 네트워크의 중요 부위에 있는 소수 노동자들의 힘이 매우 강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 포드 공장의 엔진 생산 부서 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유럽 전체의 포드 공장을 단 하루 만에 세워 버릴 수 있습니다. 대형 유통 체인의 핵심 물류 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전통적 경영 기법이 새 부문에 도입되는 것입니다. 자본가들은 전통적으로 제조업에서 쓰이던 기법들을 대형 서비스 부문과 공공서비스 부문에 도입하려 애씁니다. 특히 보건과 교육 같은 부문에서 더 심한데, 이 부문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일하는지를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교육 부문에서는 일제고사나 교원평가 등을 통해 교사들의 실적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크게 강조됩니다. 영국에서는 점점 더 많은 대형 대학교와 대형 병원이 기업인 출신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불안정성 증대와 프레카리아트

노동계급의 변화와 관련된 마지막 질문은 이렇습니다. 노동자들의 처지는 불안정해졌는가? 김하영 동지의 [맑시즘2015] 강연을 들었는데, 그 내용에 동의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영국과 한국의 구체적 통계 수치와 상황이 다른데도 연관된 주장들은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불안정성에 관해 논의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자본에 견줘 노동은 언제나 불안정했다는 사실입니다. 고용 안정과 고용 계약은 비교적 현대의 현상입니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불안정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도 고용 안정 면에서는 19세기의 가장 안정적인 노동자보다 더 안정적일 것입니다.

일자리가 안정돼야만 노동자들이 조직을 건설하고 투쟁을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매우 불안정하고 취약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벌인 투쟁도 있었고, 비교적 안정적이고 소득도 높은 노동자들이 벌인 투쟁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890년대 런던 동부 지역에서 성냥 공장 여성 노동자들과 가스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는데, 당시 이 노동자들이 투쟁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 금속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는데, 바로 레닌이 “노동귀족”이라고 [잘못] 불렀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둘째, 불안정성에 관한 주장들은 현실을 심하게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논자들은 노동자들이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보지 않고 범주를 나눕니다. ‘비전형적 노동’이라는 범주를 하나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시간제 노동, 임시직 노동, 학생들의 노동 등등을 모두 넣어 버립니다. 그러나 대다수 시간제 노동자들은 임시직도 아니고 불안정하지도 않습니다. 영국의 시간제 노동자는 대부분 여성인데,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대표 사례입니다. 이 노동자들은 흔히 한곳에서 10~20년을 일하고, 흔히 조직이 있고, 흔히 투쟁을 벌입니다.

불안정성에 관한 많은 주장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집단을 출발점으로 삼아 일반화해 버리기 때문에 과장입니다. 사실 영국에서 임시직의 비율은 상당히 낮습니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에서 6.6퍼센트가 임시직인데, 원하지 않는데도 임시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전체의 2~3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스페인이나 한국보다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불안정성에 관한 주장들은 이런 것을 노동자 전체의 일인 양 말합니다.

불안정성에 관한 많은 주장은 노동자들의 고용이 꽤 안정돼 있음을 보여 주는 수치를 무시하기 때문에 과장입니다. 1980~90년대 북미 지역에서는 근속 연수가 10년이 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1990년대 유럽에서도 그랬습니다.

물론 처지가 매우 열악한 집단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하는 학생이 크게 늘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2~3년 정도 임시직으로 일하다가 졸업하고 나서는 흔히 정규직으로 취직됩니다.

부차적인 점인데, 불안정성에 관해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에서 일한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영국 대학교들에서는 근로계약 조건이 악화돼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전체의 일처럼 느낄지 모르겠지만, 현실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노동시장이 노동자들에게 그저 전달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노동시장은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어느 정도 완충시키기도 합니다. 자본은 노동을 지배하지만 노동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유능한 노동자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자본가의 일반적 추세입니다. 자본가들이 인심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잘 교육받고 훈련받은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자동으로 단결을 이룰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노동계급의 강한 부분과 약한 부분을 하나로 묶어 단결을 이루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정치 프로젝트로 삼아야 할 일입니다.

일반으로 말해, 영국의 대다수 대규모 사업장에는 비교적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소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교적 안정적인 노동자와 비교적 불안정한 노동자가 함께 투쟁을 벌이는 것이 가능하고, 불안정한 노동자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가장 안정적인 처지의 노동자들도 이런 투쟁에 함께하는 것이 계급적으로 더 이익입니다. 불안정 고용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전체 노동자의 임금과 조건이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실제 현실보다 더 불안하게 느낄까?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인식과 현실이 크게 차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에서는 외주화와 해외이전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실제 현실에 비춰 너무나도 큽니다. 미국 자본가들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기 위해 외주화와 해외이전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을 의식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11년 영국에서도 노동자의 3분의 1이 일자리를 잃을 걱정을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고용은 늘고 있었고, 정리해고가 특히 많았던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문제는 노동자들이 오랜 패배의 시기에서 아직 다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직장에서 사용자의 힘이 더 셉니다. 그 덕에 사용자는 마음대로 인력을 재배치하고 노동강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쪼이는 데 반해 집단으로 싸워 본 적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언제라도 버려질 것 같은 불안감을 쉽게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직장에서의 세력관계를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불안정성 담론은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 큰 방해가 됩니다.

청중토론

네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 고용 안정이 현대적 현상이라는 주장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한국에서는 1987년 노동자 투쟁으로 고용이 안정된 노동시장이 형성됐는데, 영국에서 안정적 노동시장이 형성됐던 배경이나 과정은 무엇이었습니까? 둘째, 세 나라의 사례를 들어 여러 종류의 신자유주의가 있다고 하셨는데 더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셋째, 사업장이 저항의 구심이 될 수 없다는 주장들을 유형별로 간단히 소개해 주십시오. 넷째, 한국에서 감정 노동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있는데 영국에도 그런 논의가 있는지, 어떤 쟁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안정적인 고용의 정착은 나라마다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다른 형태로 일어났습니다. 제가 이 문제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 19세기까지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률이라고는 연기계약노동자[당시 북아메리카에 새로 진출한 자본가들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영국 등지에서 오는 이민자들의 뱃삯을 선불로 지급한 뒤 그들을 몇 년간 하인으로 부렸다]에 관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바뀐 것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안정적인 노동조합이 등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 물론 안정적인 노동조합도 노동자들이 투쟁해서 쟁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서 정착됐다는 게 놀랍지는 않습니다. 역으로, 투쟁수준이 아주 낮을 때, 안정적이었던 일부 고용이 도로 나빠지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 드렸듯이 자본가는 오로지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만 노동을 불안정화하려 할 것입니다.

둘째 질문에 답하자면,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현상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미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전개된 양상은 영국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중국에서의 신자유주의 변화에 관한 논의도 많은데, 실제로는 중국이 국제 시장 진출을 시작한 시기에 관한 것들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시기에 중국 자본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전 시기의 국가자본주의 덕분이었습니다. 국제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필요한 자원들을 [국가를 통해]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중국은 아주 중앙집권적인 국가 기구를 갖고 있고, 경제에서 국가 부문의 비중도 매우 큽니다. 비록 일부 중국 민간 자본가들이 해외 자본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중국식 신자유주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와는 좀 다릅니다.

그런데 볼리비아 같은 나라의 경우는 또 다릅니다. 볼리비아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IMF와 세계은행에 의해 강요됐었습니다. 볼리비아는 자본주의 국가 위계서열에서 한참 아래쪽에 있는 국가죠. 그래서 다국적기업들이나 미국과 여타 선진국의 지배자들은 볼리비아가 해외 자본에 활짝 개방되는 것을 반겼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조차 신자유주의가 식민주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강요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볼리비아 지배계급의 일부분은 아주 흔쾌히 이런 민영화 프로젝트에 협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배를 엄청나게 불렸죠.

셋째 질문, 즉 작업장이 저항과 변화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 주장은 종류가 다양합니다.

중요한 자율주의 이론가인 존 홀러웨이는 자본주의의 이른바 ‘균열’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가 말하는 ‘균열’은 자본주의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공간을 뜻하는데, 그런 공간을 자본주의 주변부에서부터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농민 봉기를 들 수 있었죠. 또한 서구 사회에서는 주변화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반란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점거, 무주택자들의 건물 무단점유, 이탈리아에서의 사회센터(유휴 건물 같은 것들을 점거해서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는 것) 같은 것들이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자율주의 이론가인 토니] 네그리는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노동 착취가 벌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저항은 잠재적으로 어디에서나 대두될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는 [저항의 주체로] 다중을 강조하는데, 다중은 다종다양한 주체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로 뭉친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네그리는 어디에서나 저항이 시작될 수 있고 특별히 더 중요한 주체도 없다고 보기 때문에, 전략도 필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네그리는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운동들(2000년대 반자본주의 운동, 사파티스타 등) 모두를 그저 치켜세우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그가 마이클 하트와 공저한 두 번째 책 《다중》도 그런 논조로 끝을 맺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특정 사건이 벌어져 마치 화살을 쏘듯 우리를 살아 숨쉬는 미래로 밀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사랑의 정치적 행위일 것이다.”

[넷째,] ‘감정 노동’에 대한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영국에서도 많이 거론되는 개념으로 ‘정서 노동’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개념도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토니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저서에서 유래한 개념입니다. 그들의 논지인즉슨, 노동이 더는 손에 잡히는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으므로 이제는 노동이 작업장에서만 벌어진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 문제점인 이유는 오래전부터 자본가들이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목적으로 노동자들을 부려 왔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산업인 엔터테인먼트 산업만 떠올려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전형적인 자본주의 생산 과정을 따릅니다. 감정 노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세워서 오늘날 작업장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처럼,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좌파가 계급 개념에서 멀어지면서 보인 경향은 영국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가이 스탠딩도 최근에야 소개됐습니다. 반면에 여기서는 계급을 문화적인 견지에서 정의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전회’와 관련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A 간단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영국에서 계급에 관한 관점의 변화는 여러 가지 추세들이 수렴된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슬라보예 지젝이 상당히 유용한데, 지젝은 지적 유행의 방향을 보여 주는 풍향계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과 영국에서 보이는] 두 가지 추세는 모두 노동계급의 패배 경험과, 소련의 몰락으로 자본주의를 대신할 체제가 없다는 실망감이 결합된 것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탈린주의 체제에 큰 기대를 품었던 사람 중 많은 수가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접근법으로 확 넘어갔습니다.

영국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포스트구조주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접근법이 우세했습니다. 관련 논쟁에서 안토니오 네그리가 중요했던 것은 그가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일종의 다리 구실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책갈피)을 썼을 때는 대학가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아주 우파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맹비난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반자본주의적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이 일부 좌파들 사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네그리는 미셸 푸코나 질 들뢰즈 같은 사람을 특히 많이 인용합니다. 그러면서 개혁주의와 스탈린주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저항의 형태를 제시하려 합니다.

반면에 가이 스탠딩은 주류 사회학계 출신입니다. 그래서 가이 스탠딩의 계급론은 마르크스의 계급론과 닮은 것이 별로 없고, 어떤 점에서는 막스 베버의 계급 개념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하게,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등장을 강조하는 다른 논자들도 아주 많습니다. 리처드 세넷, 지그문트 바우만, 울리히 벡도 그렇습니다. 가이 스탠딩이 이들보다 성공한 것이 있다면 자기 PR[홍보]에 크게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스탠딩은 심지어 네그리보다도 사람들의 상식에 잘 호소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글은 네그리보다 훨씬 읽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이런 여러 가지 사상들이 서로 융합하는 게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닙니다.

1970년대 말 에릭 홉스봄은 노동자들의 ‘경제주의적인 투쟁’이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자 집단끼리 반목시킬 수 있다고 얘기했고, 얼마 뒤 노동계급이 사회 변혁 주체라는 생각에 회의를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일부 좌파들이 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최근에 나온 홉스봄의 책[《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까치, 2012년)을 말함]도 그람시를 인용하면서 비슷한 얘기를 했고 또 적잖은 좌파들이 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홉스봄이 노동운동에 끼친 영향과 문제점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또 다른 질문은, 어느 사회에서나 노동계급 안에 현실적으로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격차를 줄이자는 생각이 노동운동 안에 지배적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기업 간의 격차를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격차를 줄이자고 하는 그런 운동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A 먼저 홉스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초기에 홉스봄은 노동계급의 일상에 관해서 아주 훌륭한 연구서들을 많이 썼습니다. 홉스봄에게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영국 공산당과 연계돼 있었다는 것입니다. 홉스봄의 정치는 사실상 민중전선 시기 공산당의 정치에 머물렀고 평생 변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문제점은 EP 톰슨과 비슷하게 홉스봄도 계급을 노동자들의 정치적 운동과 연관지어 규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운동이 위기에 빠지면(1970년대 말 영국처럼) 마치 계급 자체가 위기에 빠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홉스봄은 그런 관점을 ‘중단된 노동계급의 전진?’이라는 제목의 논문[1978년]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이것은 제가 앞서 말씀드린 추세, 즉 좌파의 위기와 노동계급 운동 후퇴라는 시련에 직면해 계급 개념에서 멀어지는 추세의 일부였습니다.

이는 영국의 노동운동 일부에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공산당이 처한 위기의 해결책으로서 유러코뮤니즘으로 눈을 돌렸던 좌파들에게 그랬습니다. 어떤 점에서, 홉스봄이 유러코뮤니즘을 지지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뿌리인 민중전선 노선으로 되돌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둘 모두[유러코뮤니즘이든 스탈린주의적 민중전선이든] 노동계급을 [다른 계급에] 정치적으로 종속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에 관한 홉스봄의 초기 저작들[특히, 《혁명의 시대》와 《자본의 시대》를 말함]은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둘째 질문, 노동계급 내 불평등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후퇴시키는 데 일조해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합니다. 앤디 브라운과 케빈 코어가 오래전에[1993년 여름] 노동귀족론에 대해서 쓴 글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 글은 서로 조건이 다른 노동자들일지라도 그들의 임금은 함께 상승하고 함께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보여 주는데, 이는 토니 클리프도 [1957년에] 주장했던 바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노동계급의 단결을 지지하는 것은 단지 도덕적인 이유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물질적 토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과 노동조건을 똑같게 만들자고 말할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조건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합니다. 동시에, 노동계급이 부문 별로 분열하는 것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닐 데이비슨이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자본주의의 연속성만 강조하고 자본주의의 변화, 특히 신자유주의적 변화는 너무 안 보는 것은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주장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A 저는 최근 몇 년 동안 닐 데이비슨과 많은 논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자본주의의 연속성만을 보는 것의 위험성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주의 전통과 그것의 이론적 유산에 대해서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요 이론가들이었던 토니 클리프나 던컨 핼러스, 크리스 하먼 같은 이들을 떠나보낸 것은 큰 비극이죠. 저는 크리스 하먼의 조사를 쓰면서 새 세대들이 집단으로 그의 공백을 메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는 살아 숨쉬는 전통입니다. 세상이 변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이론을 계속 발전시켜 현실을 따라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바뀌는 것에 맞춰서 우리의 이론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조주의자들이 되겠죠. 이론적 명료함이 없으면 운동에 만만찮게 개입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중요한 쟁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토니 클리프도 자주 말했던 것인데, 우리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바뀌는 세계를 잘 분석하려면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이런저런 방법들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들을 현재 상황에 적용하려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토니 클리프가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에서 사용한 방법들과 씨름해야 합니다.

둘째 위험은 우리가 이론을 발전시킬 때 학술 마르크스주의의 유행을 좇는 것에 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신자유주의에 관한 닐 데이비슨 주장의 일부는 운동 내의 ‘상식’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의 주장이 특별히 대담하다거나 대단한 혁신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 전통의 최상의 요소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 한 가지는 비록 자본주의가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더라도 자본의 사회적 관계는 대체로 그 본질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회의 생산관계는 상당히 보편적이고 자본주의의 모든 발전 단계에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계급의 핵심적인 특징들은 바로 그 생산관계에서 비롯합니다. 물론 생산력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을 보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변화를 포착하고 또 탐구해야 하지만, 그와 별개로 기본적 사회관계는 연속성을 갖는다는 것도 봐야 합니다. 그런 변화는 일상적인 투쟁의 전술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노동자 혁명이라는 우리의 전체 전략은 바꾸지 못합니다.

통역 천경록 / 녹취 전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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