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지도자들의 비정규직 내치기에 맞서:
노동자의 단결은 싸워서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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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지도부(중집)가 비정규직 교사·강사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안팎에 큰 실망을 주고 있다. 전교조는 산업 기반이 강하지는 못해도 정치적으로 좌파적인 노조로 여겨져 왔던 터였다. 더구나 현 지도부는 전교조 내 좌파적 의견그룹인 교찾사가 배출한 지도부다.
전교조 지도부의 결정은 올해 3월 금속노조 지도부가 판매연대(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 노동조합)의 금속노조 가입 신청을 거부한 것, 올해 4월 기아차지부 지도부가 비정규직분회 를 내쫓은 것에 이어서 벌어진 일이다. 3연타다. (관련 기사: “기아차 노조 분리 총회의 교훈”, “[금속노조 대의원대회] 자동차 판매 대리점 노조 금속노조 가입 안건: 정규직·비정규직 단결 주장이 상당한 호응을 얻다”)
노동조합의 좌파적 조합원들도 이런 문제에서 혼란을 겪는 것을 흔히 본다. 비정규직 문제가 다른 부문, 다른 사업장에서 벌어질 때는 다들 소리 높여 비정규직 투쟁과 조직화를 지지한다. 그러나 이 문제가 자신의 부문, 자신의 사업장에서 벌어지면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마도 전교조 조합원 다수는 5개월 전 금속노조 지도부가 판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받아주지 않는 것을 보면서, 또 4개월 전 기아차지부 지도부가 비정규직분회를 내쫓는 것을 보면서 ‘저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 문제는? 그것은 임용고사나 교·강사 제도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인가?
그렇게 따지자면, 판매연대 가입 건에도 비정상적인 수당과 실적 경쟁의 유입을 우려하는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기아차 비정규직분회 분리 건에도 원하청과 불법파견 해결이라는 ‘단순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다른 부문의 경험에서 배우기
이런 문제는 사용자들(기업과 정부)이 노동자들을 직종과 직무, 임금체계, 고용형태와 채용 방식 등등으로 분할해 관리하기 때문에 어느 부문, 어느 사업장에서나 발생한다. 사용자들은 이런 분할을 궤변과 세련된 제도로 정당화하고, 개인 능력주의나 자유주의적 공정성 개념을 퍼뜨리며 노동자들의 사고 혼란을 부채질한다.
분할과 이간을 정당화하는 개념과 제도의 형태는 부문이나 사업장마다 특수할지라도 분할과 이간질은 보편적인 문제다. 이런 이간질에 맞서고 반목을 극복하며 노동계급의 단결을 도모하는 것이 바로 좌파의 과제다.
마치 자신의 부문에만 ‘단순하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예외론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좌파는 계급의 단결을 이루는 방법을 다른 부문의 경험(잘잘못 모두)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2010년 11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점거 파업에 들어갔다.(25일간의 이 영웅적 투쟁을 여기서 다 살펴볼 수는 없다.)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 등을 요구했다. 사측은 비정규직의 ‘불법행동’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손실이 있을 거라고 이간질했다. 그럼에도 적잖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장을 함께 지켰고 지지 방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현대차지부 지도부(이경훈 지부장)는 비정규직지회가 ‘과도한’ 요구를 한다며 “동성기업 폐업사태 우선 해결”이라는 단계적 해결 방안을 주장했고, 이 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지지해 줄 수 없다고 압박했다. 이런 방침이 투쟁의 전열을 흩뜨리고 약화시켰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장조직’들[집행부 배출을 목적으로 하는 조합원조직]은 대부분 기층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 강화라는 대안을 내놓기보다 현대차지부 지도부 편으로 기울었다.
그 뒤에도 여러 비정규직 투쟁에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이런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금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문제를 둘러싸고 전교조 내에서 벌어지는 논란은 우리나라 노동운동 안에서 전혀 낯선 문제가 아니다.
가령 전교조 중집은 “모든 기간제교사 정규직화” 요구가 “비현실적”이라면서, 오히려 그런 요구를 하는 기간제교사들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양 탓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현실적” 또는 “단계적” 안을 내놓으라는 압력이야말로 투쟁을 혼란과 분열과 사기 저하로 이끌었다. 사용자들(정부 포함)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분열을 부채질하고 자신에게 득이 되게 만들려 애썼다.
전교조 중집은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면서도, “학교 안의 모든 노동자는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버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판매연대의 노조 가입을 거부하고 비정규직분회를 내쫓은 (금속과 자동차)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비정규직과의 “나눔과 연대” 사업을 내세웠을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로부터 어떤 희망도 발견하지 못했다.
진정한 계급정치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들은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격차 축소를 중시한다고 말해 왔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며 일어설 때 그 손을 맞잡고 연대해 투쟁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공문구가 될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조직화 방안은 관련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고 그들과 함께 싸워 그것을 쟁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이 그런 투쟁과 조직화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조 같은 일상적 조직은 일부 조합원들의 낙후한 견해도 무시할 수 없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의견 분포를 바꾸기 위한 설득을 충분히 하지도 않은 채 이런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보수적이고 불필요한 타협을 조합원 탓으로 돌리는 군색한 변명일 뿐이다.
노동조합 조직을 잘 건사하는 게 우선이라는 노조 지도자들의 현상 유지 욕구를 공유하면, 비정규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가 기존 기구 질서를 뒤흔드는 “과도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계급 투쟁의 관점에 선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해 더 큰 힘을 발휘해서 교육 현장의 적폐를 해결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부문의 협소한 관점으로는 “상식”처럼 돼 있는 것이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옳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다. 일부 대공장의 ‘장기근속 정규직 자녀 우선 채용’ 같은 문제가 그렇다.
노동조합의 좌파적 활동가들은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상적 원칙으로 취급한 채 부문의 문제를 협소한 부문적 ‘상식’으로 대응하려 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단결을 추구하는 진정한 계급정치는 지금 여기에서, 모든 부문에 적용돼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다른 부문의 경험에서 서로 배우는 동질성 있는 사회주의자들의 응집력 있는 조직이 일터 현장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