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서울 퀴어퍼레이드:
자신감과 활력이 넘치는 무지개가 서울 한복판을 휘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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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제20회 서울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2000년 대학로에서 50명으로 시작한 퀴어퍼레이드는 수만 명이 모이는 대중적 행사가 됐다.
올해는 연인원 7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본무대를 시작할 즈음에는 광장에 사람이 꽉 들어차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올해도 압도적으로 10~20대 학생과 청년들이 많이 참가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총학생회와 단과대학 학생회들이 퀴어퍼레이드 지지 입장을 내고 공식적으로 참가를 호소하기도 했다.
젊은층 사이에서 성소수자 우호적 정서가 크게 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한 사례다.
애인과 손잡고 온 사람, 가족과 함께 온 사람, 손주와 할머니 등이 함께 축제를 즐기러 나왔다.
본행사 무대에서는 20회를 맞이한 퀴어퍼레이드를 자축하고 그간의 성장과 성과를 축하하는 발언들이 많았다. 15년 이상 행진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수년째 축제에 혐오을 쏟아내는 기독교 우파를 신랄하게 비판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자신들이 왜 ‘개독’이라고 불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기독교 우파] 목사들은 여신도 성추행을 중단하고 세금이나 따박따박 내시길 바랍니다.”
전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조직하는 활동가들의 발언도 있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퀴어문화축제는 서울과 대구에서만 열렸는데, 올해는 도시 9곳에서 열린다. 강성우파 정부를 끌어내린 촛불 이후 자신감이 커져 이런 행사들이 확대된 듯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도 성소수자 차별은 개선되지 않았다. 문재인은 군형법 92조6 폐지도 헌재에 떠넘기고, 차별금지법 제정도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무시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도 올해 퀴어퍼레이드의 슬로건인 ‘스무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을 설명하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며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의무가 아닌 양 무책임한 태도로 직무를 유기하고 있습니다.”
당일 무대에서 이런 목소리가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올해 처음으로 행진 대열이 촛불의 상징인 광화문으로 진출한 것도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현일 수 있다.
부스들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을 해소하자는 캠페인과 서명운동이 눈에 띄었다.
국제앰네스티가 군형법 92조6 폐지 서명을 받았고, 군인권센터도 군형법 92조6으로 기소된 성소수자 군인의 대법원 무죄 판결을 촉구하며 관련 팻말을 나눠 줬다.
트랜스해방전선은 성별 정정을 기존보다 자유롭게 인정받을 수 있는 성별정정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요구들도 여러 부스에서 볼 수 있었다.
민중당 인권위원회·성소수자분회는 해군에서 여성 성소수자를 성폭행한 가해자들의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서명을 받았다.
휴먼아시아와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부스에서는 난민법 개악 반대 서명을 받았다.
행진을 하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올해 퍼레이드 차량은 11개로 역대 최대로 많았다.
참가자들은 신나게 소리치고 춤추며 행진을 즐겼다.
행진 대열 옆에서 소수 기독교 우익들이 “동성애는 죄악입니다” 하고 외치자, 수천 명의 행진 대열이 “동성애는 사랑입니다. 혐오가 죄악입니다” 하고 맞대응 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행진코스 곳곳에 산하 노조들의 이름으로 퀴어퍼레이드를 환영하는 현수막을 개시했다.
공공운수노조, 화학섬유노조, 건설노조, 전교조 등도 깃발을 들고 참가했다.
이날 민주노총이 ILO 협약 비준 집회를 열고 종각으로 행진했는데, 일부 노동자 대열이 마침 그곳을 지나던 퀴어퍼레이드 대열과 마주쳤다. 노동자와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서로 반갑게 손을 흔들며 연대를 보냈다.
행진의 가장 앞 차량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운영했다.
이 대열은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평등한 일터 실현하라”, “군형법 추행죄 폐지하라”, “에이즈 혐오 중단하라” 같은 구호와 함께 “비정규직 철폐하라”, “난민 혐오 끝장내라’를 외치며 행진했다.
광화문에 도달하자 잠시 차량이 멈춰서고 구호를 계속 외쳤다. 행진 대열이 북단부터 남단까지 광화문 광장 도로 한 바퀴를 모두 차지한 모습이 장관이었다.
참가자들은 다시 시청광장으로 돌아와 기쁜 마음으로 축제를 마무리했다.
한편, 올해도 대한문 방면에서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기독교 우파 집회가 열렸다. ‘가족 가치’와 ‘정상가족’(이성애 중심 일부일처제)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런 ‘정상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성소수자들은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보기엔 남의 성적지향에 그토록 관심이 많은 기독 우파야말로 더 비정상이다.
더 극성스러운 일부 기독교 우파는 올해 탑차와 비계(일명 아시바)를 쌓아 광장을 향해 시끄럽게 혐오 발언을 쏟아 냈다. 하지만 그들은 퀴어퍼레이드 참가자에 비해선 정말 한 줌밖에 되지 않아,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의 자신감과 활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늘 퀴어퍼레이드에서 함께 나눈 자신감과 활력이 차별에 맞선 일상의 투쟁으로도 확대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