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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보석 같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웬 말이냐
3일간의 강정마을 여행기

나는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걷는 여행이야말로 낯선 길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보여주고, 내가 길과 동행했을 때 길은 그 곳의 사람, 자연, 역사를 스스럼없이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지난 짧았던 여름 휴가 기간 동안 강정 마을에 가게 된 이유가 바로 그런 정직한 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주도 올레길의 보석 같은 7코스에서도 가장 보석 같은 자연이 숨 쉬는 곳으로 이름도 물강(江) 물정(汀)인 서귀포시 최남단 마을 강정.

마을 초입부터 보이는 현수막들에서 당장 마을이 처한 현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강정 마을에는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이라는 이상한 수식어로 해군기지를 세우려는 정부 측의 준비 단계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어 분위기가 어지럽다.

강정 주민들과 함께 평화주의자, 생태주의자, 영화감독, 국내외 기자, 시인, 종교단체, 각종 시민단체들, 나 같은 평범한 여행자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구럼비(강정 중덕 해안가의 바위지대를 지칭하는 말) 근처에는 천막과 텐트를 설치하여 만든 해군기지 반대 공동체가 있다.

이곳에는 수도 시설도 없을뿐더러 화학제품을 땅이나 바다로 흘려보내는 일도 금기시되기 때문에 양치질도 소금으로, 설거지도 대야 3개를 두고 단계적 시스템으로 물 하나 버릴 것 없이 이루어지기에 무조건 식판을 깨끗하게 비우는 길만이 살 길이다.

찌는 더위 아래에서도 중덕 바다를 지키려고 자연친화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반대 운동가들은 이 운동의 목적과 방법을 일치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 곳에서 나름의 일거리를 찾아 했다.

쇠사슬로 서로를 묶어 강정마을 삼거리를 사수하고 있는 분들 앞에서 노래도 불러드리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도와드리고, 촛불 집회 때 초 컵에 끼워 나누어 주기, 집회의 흥을 돋구는 차원의 무용과 노래하기, 아이들을 데리고 4·3항쟁 흔적 따라 체험학습 가기, 더우면 구럼비 물에 풍덩 빠지기, 돌 틈에 숨어 있던 생명들을 발견하며 다시 한번 강정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깨닫기 등.. 최고의 의미 있는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한번은 구럼비에서 청년 포럼이 개최되기도 했었다. 포럼 주제는 ‘로봇 시대’ 기계 문명이 절정으로 발전하는 시점에서 생명평화에 대하여 논해보자는 취지로 열린 포럼이었는데 사실상 ‘청년 포럼’은 외부에서 온 청년들과 제주도에 거주하는 청년들이 어울려 교류하는 마당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자유를 위해, 어떤 이는 생명 지킴을 위해, 어떤 이는 공부하고 아는 것을 실천·실험해보려고, 나 같은 여행자는 공정여행을 위해 그렇게 강정마을을 찾았다고 했다.

생명과 평화

나는 여행자로서 올레길의 보석 같은 자연을 품고 있는 강정마을 지키기에 왜 제주도 자연을 사랑하는 올레지기들이 참여하지 않는지 의아했었는데 사실 이 포럼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현실의 벽, 결국 자본이었다. 자본은 결국 생명과 평화를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단법인 제주 올레 측에 벌써 이야기해봤고, 그런 올레길 여행자들을 연계하는 행사를 추진하자 제안도 했었는데 다 안됐어요. 이미 시도해본 거예요. 제주도의 예산을 지원받기에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이 답변에 황당함보다는 왜 그렇게 낯 뜨거웠는지. 여행자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고 올레꾼들이 생각보다 열려 있다고 확신하기에 사단법인 올레 측이 이 문제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던 난 무색해졌다.

사실 제주도가 ‘세계 7대 경관 도전’ 이라는 구호는 거짓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제주도 중에서도 생물 보전권으로 지정된 강정 중덕 해안에 방파제가 만들어지고,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면 붉은말똥게나 연산호 같은 멸종위기 동물과 더불어 제주도에서 유일한 용천수 마저도 사라지게 되기에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서의 제주 역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해군조사단이나 환경부는 이런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채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 부치고 있다. 더불어 입지선정 역시 비민주적이었다.

2007년 선거법 위반으로 몰린 김태환 전지사를 압박하고, 마을 대표를 포섭하여 입지 선정, 건설 추진을 빠르게 진행했고, 결국 강정의 윤태정 전 회장은 불신임을 받아 해임되고, 새로운 마을회장이 나오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절차의 비민주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일까? 노무현 정권 때부터 화순-위미-강정 이렇게 입지 선정이 주민들의 반대로 밀려가고 있고, 강정만 해도 벌써 4년째 이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데 최근에는 물대포차나 최루탄 발사기 등을 가지고 온 토벌대가 제주도에 상륙하는 등 ‘공권력’ 투입까지 가시화될 상황이었다.

이렇게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안보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는 우리나라 안보 문제를 벗어난다는 지적들이 많다. ‘원치 않는 미사일 강요당하는 제주섬’ 이라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글만 봐도 강정해군기지는 미국의 중국 견제 수단일 뿐 실효성이 없다는 것.

어차피 중국과 일본과의 배타경제수역 경계에 위치한 이 중덕 바다에서 마음 놓고 훈련을 실시할 수 없을 뿐더러 미군에게 우리군의 작전권이 있는 바, 이는 결국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과 다를 바 없다.

안보 위협을 부추겨 색깔론으로 정당성을 펼치며 정치를 하던 시절은 우리나라 분단 특성상 역사적으로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거기에 억압받는 사람과 자연을 먼저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옆에서 잠시나마 강정 마을의 투쟁을 본 소감은 한 마디로 ‘외로운 싸움’이라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한진중공업 사태나 이러저러한 국내 이슈에 밀려 강정마을 사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거나 알려졌어도 동참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육지와 떨어진 섬에서 벌어지는 투쟁이기도 하지만 노동이나 자본과 직접 연관이 되지 않은 주민들의 투쟁이라는 이유도 있을 듯싶다.

그러나 이것은 실효성 없는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떡밥을 거대 기업에게 선물하려는 취지로 정부가 벌이는 또 하나의 사기극이다. 그런 차원에서 모든 노동 투쟁과 더불어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은 연대해서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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