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 민주노동당 당대회 결정의 의미:
제대로 된 통합 진보 정당 건설 운동의 일차 승리
〈노동자 연대〉 구독
이 글은 다함께 운영위원회가 통합 진보 정당 건설 문제에 관해 8월 31일 발표한 성명서다.
8월 28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진보신당과의 통합 합의문이 만장일치로 통과됨으로써, 9월 안에 통합 진보 정당이 출범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그동안 핵심 걸림돌 구실을 했던 국민참여당(이하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에 강력한 제동이 걸리면서 진보대통합의 앞날은 더 밝아졌다. 이로써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을 위해 참여당과의 통합을 반대해 온 진영은 일차 승리를 거뒀다.
애초 민주노동당 핵심 지도자들의 참여당과의 통합 의지는 강경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진보대통합 연석회의의 5.31 합의문 발표 직후부터 “과거를 묻지 않겠다”며 참여당에게 신호를 보냈고, 유시민과 공동으로 나눈 대담을 엮은 책까지 출판하고 ‘북 콘서트’도 열었다.
참여당까지 포함한 통합 정당으로 몸집을 키워야 내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넘볼 수 있고 대선에서는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나 연립정부 수립까지 가능하다는 게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의 계산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참여당이 이데올로기, 정책, 실천, 특히 계급적 기반에서 진보정당과 구분되는 자유주의적 친자본가당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통합을 추진했다. 심지어 진보신당과의 통합이 무산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려 했다.
이 때문에 진보양당의 통합 논의는 교착 상태에 빠졌고 민주노동당 당대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결렬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당대회 전날인 8월 27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통합 진보 정당 창당 이후 참여당 문제를 논의하자’는 진보신당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은 물론 최근 정치 상황과 관계 있을 것이다. 먼저, 최근 문재인이 야권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고, 또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시키기 투쟁이 승리를 거두면서 한시 바삐 진보대통합을 성공시켜야 더 효과적으로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커졌을 법하다.
성찰
게다가 검찰총장 한상대가 “종북좌파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취임한 이후 ‘왕재산’ 마녀사냥과 제주도 군사기지 반대 투쟁에 대한 대대적 탄압,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검찰 수사 등 정권과 우파의 전방위적 공세가 진보의 단결 필요성을 절감케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객관적 정치 상황만으로 진보대통합이 급진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객관적 정치 상황보다 더 중요한 점은 주관적 요인이었다. 지난 두달 동안 다함께와 민주노동당 안팎의 좌파가 벌인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 지지,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 운동이 없었다면 지금의 상황 변화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함께 운영위원회는 먼저 6월 19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강령 교체 시도를 막지 못했던 점을 자기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어떤 정치적 불명료함 때문에 성공적인 캠페인을 건설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먼저 민주노동당이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을 기반으로 조직 노동계급과 연결돼 있는 개혁주의적 노동자당이며, 그런 기반에서 오는 상이한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분석하는 데서 출발했다. 사실, 민주노동당 강령 후퇴를 저지하기 위한 캠페인 때는 이런 명확한 분석에 기초하지 않다 보니 동맹 구축보다는 부지불식간에 선전주의적 방식으로 흘렀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는 동맹 구축에 커다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기반과 성격 때문에 전·현직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태도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조합 간부들 및 활동가들과 협력하려고 노력했다. 설령 산업 현장의 투쟁에서 전투적 태도를 견지하지 못했어도 그것을 동맹의 전제 조건으로 삼지 않았다. 노동조합 쟁점에서의 태도가 정치 쟁점에서의 태도와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선진 노동자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노조 간부들은 2008년 초의 분당 사태 이후 산업 현장에서 지속돼 온 상호간 앙금을 해소하고 싶어했고, 민주정부 10년의 어두운 기억 때문에 참여당과의 통합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투지가 충분히 높지 않은 상황에서 다수의 노조 간부들은 내년 선거에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당과의 통합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않고 동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진보진영과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을 위해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건설에 매진했다. 노동조합·진보진영 지도자들과 폭넓은 동맹을 구축하면서도, 그것에 의존하느라고 우리 자신의 독자적인 선전·선동과 캠페인 건설 노력을 방기하는 과오도 경계했다. 제대로 된 통합을 바라는 아래로부터 목소리를 키움으로써 노동조합·진보진영의 지도자들이 더 자신감있게 그런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이런 운동의 결과, 8월 27일까지 민주노동당 당원과 민주노총 조합원을 중심으로 무려 2천8백72명이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 서명과 선언에 동참했다. 8월 19일에는 민주노동당 수임기관 회의장 앞에서 현대차, 쌍용차, 기륭전자 등의 투사들이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정희 대표에게 직접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전여농, 진보 교수·연구자, 보건의료인,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대의원 일동의 성명도 잇따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주노동당 수임기관 안에서도 권영길·강기갑 의원 등이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일부 반영했고, 민주노총 지도부도 ‘양당 통합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던 것이다. 그래서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에게 강력한 압력이 가해졌다.
양당의 극적 타결 직전에는 민주노총 부대변인이 직접 이정희 대표를 비판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고, 빈민3단체가 ‘참여당이 걸림돌이 되선 안 된다’며 민주노동당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참여당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조국 교수조차 이정희 대표에게 “밀어붙이면 통합에 반대하는 서명까지 하는 사람들은 들어올 수가 없어요” 하고 충고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런 압력 때문에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8월 27일 ‘결단’을 내린 것이다.
승리
그러나 여기서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정희 대표의 결단 이후에도 민주노동당 지도부 내 ‘당권파’는 그것을 다시 뒤집으려는 시도를 했다. 그것이 바로 8월 28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제출된 ‘참여당을 포함해 통합 진보 정당 건설과 관련된 일체의 권한을 수임기관에 위임해 달라’는 안건이었다.
이것은 바로 전날의 합의와 배치되는 것으로, 오히려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을 승인해 달라는 요구였다. 이것이 통과되면 다시 진보신당과 갈등이 불거지며 진보대통합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컸다. 당권파 지도자들은 ‘수임기관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한 법적 필요 때문’이라고 둘러대며 이 안건을 통과시키려 했다.
진보신당과의 통합이 먼저라며 참여당과는 단계적 통합을 주장하던 민주노동당 ‘비당권파’ 지도자들도 이 안건을 지지했다. 참여당과의 통합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 이런 태도를 낳은 것이다. 이들은 사실상 당대회에서 당권파의 대변인 구실을 하며 이 안건 통과를 위해 앞장섰다.
이 때문에 이 안건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단일안이 됐고, 이것에 반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우리와 함께 통합 반대 캠페인을 해왔던 활동가들 중 일부도 흔들렸고, 그래서 우리도 큰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이 안건의 정치적 성격이 바로 전날의 극적 타결을 뒤흔드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단호하고 굳건하게 이 안건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당대회에서 질의 응답과 주장들이 이어질수록 우리의 판단과 전술이 옳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 안건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의 수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러면서 처음에 다소 흔들렸던 사람들도 태도를 분명히 했다.
결국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 안건이 부결되는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 이 안건을 거둬들이고 수정안을 내야 했다.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을 위해 참여당과의 통합을 반대한 진영이 그것을 거스르려는 시도에 쐐기를 박으며 다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따라서 진보의 분열과 진보적 정체성의 훼손을 낳을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해서 헌신적인 운동을 건설해 온 우리 모두는 이 성과를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 특히 다함께로서는 지난번 강령 후퇴 저지 투쟁의 패배가 쓰라렸던 만큼 이번 성과가 더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상황은 종료된 것이 아니다. 진보대통합을 야권연대나 연립정부로 나아가는 디딤돌로 삼으려 하면서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려는 민주노동당 지도자 다수의 시도는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야권연대는 국민의 명령’이라면서 참여당과의 통합 노력을 재개할 것이다.
또, 일단 공을 넘겨받은 진보신당 지도부도 1백 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다. 물론 진보신당 지도부는 현재 참여당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유시민에게 경기도지사 후보를 양보하며 단일화를 했던 것은 바로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였다. 진보신당 지도자들의 말과 행동에서도 야권연대와 연립정부에 대한 일관되고 철저한 반대는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통합 진보 정당이 계급간 연합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에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건설되기를 바라는 사회주의자들과 진보적 활동가들은 이번 승리를 발판으로 투쟁을 지속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통합 진보 정당을 지지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투쟁하면서, 제대로 된 통합 진보 정당 건설에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