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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의대 성추행 가해자 3인 출교:
학생들의 단호한 출교 요구에 고려대 당국이 물러서다

오늘(9월 5일) 고려대 당국은 의과대 성추행 가해자 3인에 대한 출교 결정을 발표했다. 지난 5월 이들이 동기 여학생에게 입에 담기도 힘들 만큼 끔찍한 성추행을 저지른 지 1백여 일 만이다.

그 동안 피해자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학교측의 징계는 늦은 감이 있다. 그럼에도 결국 출교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은 진실을 알리고 정의를 요구한 피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고통에 공감하고 행동에 나선 학생들이 거둔 통쾌한 승리다.

고려대 당국이 처음부터 ‘출교’ 입장은 아니었다. 의과대의 한 교수는 피해자를 불러서 ‘[출교는] 위헌이다, 교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따위의 말로 가해자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게 피해자를 설득하려 했다. 언론을 통해서 한 학교 관계자는 ‘교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며 퇴학 수준의 징계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런 고려대학교 당국의 태도는 2006년에 다함께 회원들을 비롯한 진보적 학생 활동가들을 매우 신속하게 출교시키고 수년간 항소에 항소를 거듭하며 출교를 옹호하던 태도와 매우 대조적이었다. 결국 학교 당국에게는 성추행범 의대생들보다 신자유주의적 대학 기업화에 반대한 진보적 학생들이 더 처벌해야 할 대상이었던 셈이다.

재입학이 불가능한 출교와 달리, 퇴학은 빠르면 한 학기 만에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징계다. 즉, 고려대 당국이 퇴학 징계를 내리고 시일이 지나 가해자들이 재입학하면, 피해 학생은 학교와 병원에서 이들의 얼굴을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무사히 졸업해서 의사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가해 학생의 출교를 요구했다.

무엇보다 가해자들은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성추행을 피해자 탓으로 돌렸다.

성폭력에 대한 여성차별적 편견

가해자 1인이 의과대에서 피해자의 인격을 모독하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황당하게도 “피해자가 문란하다/아니다, 싸이코패스다/아니다”는 등의 문항으로 이뤄져 있었다. 반성은커녕 피해자에게 충격과 상처를 다시금 안겨주는 일을 버젓이 벌였던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의과대에 나가면 “사람들이 눈을 피해서 내가 피해자인데 왜 내가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가” 하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이도 모자라, 가해자 측이 꾸린 ‘호화’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피해자가 문란하다, 알고 보면 가해자야말로 피해자라는식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피해 학생을 괴롭혔다.

성추행 가해자들은 처음 피해자가 ‘다 기억난다’고 했을 때 미안하다고 한 게 아니라 ‘어떻게 알았냐, 우린 망했다’ 하고 반응했다고 한다.

심지어 가해자의 부모는 “피해자가 문제가 있었다, 우리 아들은 잘못이 없다”, “이런 게 알려지면 가해자도 끝난 거지만 피해자도 이제 끝나는 것”이라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피해 학생이 반발하며 출교를 요구한 건 아주 당연했다. 출교를 꺼리는 학교 당국에 대해 피해자의 언니는 ‘학교가 저희를 버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들은 ‘슬럿워크’ 운동을 촉발시킨 캐나다 경찰관의 발언(“성폭력 당하지 않으려면 헤픈 여자처럼 입지 말아야 한다”)을 떠올리게 한다.

흔히 성폭력은 여성의 ‘행실’ 탓으로 돌려진다. 왜 술을 먹었느냐, 왜 남자와 어울렸느냐, 왜 늦은 시간에 돌아다녔느냐, 왜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느냐, 남자랑 '그렇고 그런' 관계 아니냐 등.

하지만 여성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그것이 곧 성폭력을 해도 좋다는 의사 표시는 아니다. ‘성폭력을 당해도 싼’ 여성은 없다. 성폭력(성희롱)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기준은 여성의 의사다.

가해자 출교를 요구한 우리의 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이런 여성차별적 편견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출교 요구 운동

버티던 학교 당국이 결국 출교 결정을 내린 것은 학교 안팎의 출교 요구 운동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몇몇 졸업생과 누리꾼들이 1인 시위 등으로 가해자들의 출교를 요구했다. 그런데 8월 중순에 학교 관계자가 언론에 퇴학을 시사하는 발언을 흘린 것을 계기로, 학내 단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함께 고려대 모임, 문과대 학생회 등이 호소해 8월 26일 학내 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가해자들의 출교를 요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발표한 출교 요구 성명서에 25개 학내 단체와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19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명했다.

그리고 8월 29일부터 다함께 고려대 모임, 고려대 문과대 학생회, 고려대 국어교육과 학생회 등이 가해자들의 출교 요구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서명운동에 대한 반응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학생들이 줄 서서 서명을 했다. 피해자를 향한 깊은 연민과 학교 당국에 대한 분노가 서명운동을 통해 터져 나온 것이다. 나흘 만에 무려 학생 3천여 명이 가해자 출교 요구 서명에 동참했다.

피해 학생의 용기 있는 모습도 출교 요구 운동에 큰 힘이 됐다. 피해 학생이 직접 라디오 인터뷰에 응해 일부 교수들이 가해자를 비호하는 행태 등을 폭로하고 나섰다. 피해 학생이 용감하게 정의를 요구하는 모습은 운동 참가자들에게 확신을 안겨 줬다.

학교 내외에서 출교 요구가 빗발치자, 그 동안 소극적이었던 학생회들도 입장을 바꾸고 출교 요구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9월 4일에는 의과대 학생회가 출교를 지지하며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총학생회도 출교 지지로 선회했다. 결국 9월 5일 저녁에 열릴 예정이었던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가해자 출교 요구를 논의 안건으로 다루기로 결정했다. 9월 7일에는 가해자 출교와 성폭력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집회도 예정돼 있었다.

학교 안팎의 출교 여론이 빗발치고 총학생회 등 학생 대표자들이 잇달아 출교 지지 입장을 밝히자, 학교 당국도 더는 버티기 어려웠던 듯하다. 그래서 고려대 당국은 임시 전학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의과대 학장 명의의 출교 담화문을 발표하며 물러섰다.

한편, 몇몇 학내 단체들은 학교 당국에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출교는 학교의 징계권을 강화할 것’이라거나 ‘출교냐 아니냐가 중요치 않고 반성폭력 분위기 확산이 중요하다’며 출교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이번 출교 요구는 학교 당국이 성추행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에 반대해 나온 요구이고, 학생운동 탄압의 맥락에서 징계권을 행사한 2006년 출교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그리고 출교 요구 자체가 반성폭력 분위기에서 불거진 것이며, 성폭력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라도 가해자의 행위에 걸맞는 단호하고 무거운 징계(출교)가 내려질 필요가 있었다.

이번 출교 조처로, 가해 학생은 뻔뻔스럽게 학교에 복학하고 피해 학생은 학교생활과 꿈꿔 온 미래를 포기할 수도 있었던 비극을 막게 됐다. 특히, 얼마 전 성희롱 국회의원 강용석 제명 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씁쓸한 일이 있었던 뒤라 더 통쾌하다.

이번 출교 조처가 피해자의 상처가 아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억울하게 숨죽이고 있을 성폭력·성희롱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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