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21세기의 마르크스주의-자본주의와 폭력

노무현은 살인적인 노동운동 탄압에 항의하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시위를 “불법 폭력” 시위라고 비난했다.

정부와 언론은 언제나 대중 투쟁 ― 전쟁 반대 운동이든 강제 철거 반대 투쟁이든 핵 폐기장 건립 반대 시위이든 ― 을 비난한다.

심지어 경찰이 핵 폐기장 건립을 반대하는 부안 주민들에게 방패와 곤봉을 휘둘러 주민들이 크게 다쳤을 때조차, 정부와 언론은 시위대가 폭력적이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시위대의 폭력을 비난하는 바로 그 자들이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폭력을 행사한다.

경찰과 언론은 상도동 철거민들이 사제총을 쐈다고 비난하지만, 정작 상도동 철거민들은 용역 깡패와 경찰의 철거 위협에 시달려 왔다. 그들은 추운 겨울에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을 간절히 원했지만, 정부와 기업주들은 무시했다.

20세기만 해도 자본주의 전쟁이라는 폭력은 적어도 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여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와 언론은 부시의 폭력을 비난하기는커녕 그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노무현을 비롯해 세계 지배자들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시장 정책 때문에 전 세계에서 매일 4만 명이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다.

또, 선진국들이 빈국에 강요하는 외채 상환 압력 때문에 매일 1만 9천 명의 어린이들이 죽어간다. 이 아이들은 머리에 총을 맞지 않았을 뿐이지 살해당한 것이다.

이윤 추구에 눈먼 생산 때문에 노동자들은 날마다 다치거나 병이 들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배계급과 언론이 퍼붓는 폭력 시위 비난을 반대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폭력을 찬미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폭력을 혐오하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가 됐다. 우리는 전쟁과 폭력과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계를 원한다.

소수

자본주의는 폭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언제나 폭력을 몸에 달고 다닌다. 자본주의는 소수가 절대 다수를 착취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폭력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세계 지배계급들은 대량 살상 무기, 미사일과 전투기, 군대와 경찰 등 폭력을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지배 체제가 위협받는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야만적인 폭력을 휘둘렀다.

자본주의는 여성 차별과 인종 차별을 이용해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가정과 인간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창의력을 억누른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는 체제의 냉혹한 폭력이다.

그래서 때로 가난과 억압으로 삶이 마구 일그러진 사람들이 체제의 폭력에 대항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사용해 싸우곤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이 지배자들에 맞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폭력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첫째, 우리의 적들은 자신의 특권이 침해받는다고 여길 때는 인정사정없이 공격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어떻게 폭격했는지를 떠올려 보라. 또, 1871년 파리 코뮌에서 3만 명이나 되는 코뮌 참가자들(코뮈나르)이 목숨을 잃었다. 이탈리아·독일·스페인에서는 파시스트가 혁명을 뒤엎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1973년 칠레, 1980년 한국, 1981년 폴란드 쿠데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우리가 폭력을 염려하지 않고 싸우지 않는다면 세계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순순히 내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도 고상한 의회 토론이 아니라 전쟁, 혁명, 폭력 투쟁을 통해 생겨났다. 예컨대, 1789년 프랑스 혁명은 현대 세계를 형성한 혁명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 혁명에서 부르주아지는 거만하고 부패하고 무능한 군주를 처형하고 봉건제를 전복했다.

노동 계급 대중의 집단적 폭력 사용의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개인적 폭력 행동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소수가 다수 대중을 대리하는 행동은 일상적인 착취와 억압에 기반하고 있는 세계 체제를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 계급과 피억압 대중이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부 개인들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의 대중 행동이 필요하다.

1917년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에서 그랬듯이, 오직 압도 다수의 대중이 지배자들과 단호하게 싸우겠다고 단단히 결심하는 상황에서만 폭력적인 전투를 치르지 않고도 지배자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

주제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