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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대안을 보여 준 책

미국의 좌파 잡지인 《먼슬리 리뷰》 2000년 7∼8월호 편집자는 시애틀의 위대한 투쟁을 평가하면서 이 책을 이렇게 소개했다. "갑자기 새 천년과 함께 대안적인 미래를 위한 투쟁 곧 새로운 국제주의에 대한 희망이 밝아 왔다. 고작 일년 전에 다니엘 싱어(Daniel Singer)의 책 《누구를 위한 세계화인가》에서 영웅적으로 제기된 질문이 그의 책에서 역사 그 자체의 페이지들 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보였다."

다니엘 싱어는 "인간은 오직 이윤을 통해서만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시장만이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유일한 장치라는 지배적인 교의에 맞서 우리의 가능한 대안에 대한 진정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며, 그것을 찾으면서 자본주의의 지평을 넘어서는 모험을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세계화와 관련된 다른 책들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대한 폭로에만 치중하는 데 반해, 다니엘 싱어는 가능한 대안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를 다루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한때는 아주 널리 퍼져 있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뿌리 뽑힌 믿음, 즉 우리의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사회 형태를 변화시킴으로써 삶을, 바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되살리기를 바란다.

그는 세계화가 "경제발전과 기술의 진보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떨어지는 자본의 이윤율에 직면하여 자본주의가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휘드르는 칼일 뿐이다. 급속한 금융 자본 팽창의 뿌리에는 컴퓨터를 비롯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국제적인 자본의 운동에 가해진 모든 규제를 철폐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이 있었다."라고 지적하면서, 세계화는 우리의 운명이 아니라 싸워야 할 대상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인용해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본주의 체제가 살아남기 위해서 항상 정복할 새로운 땅이 있어야 한다면, 세계화를 통해 그 여행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자본의 지배가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아닐까?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체제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갈수록 어려움을 느끼고 있고, 금융 자본이 암세포처럼 급격히 팽창하고 있으며, 엄청난 규모의 투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파멸이 임박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가 아닐까?"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는 우리가 무대에서 밀어내지 않는 한 무대에서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는 말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는다.

야만적인 자본주의

소련과 동유럽 정권들이 민중의 저항으로 잇따라 곤두박질치던 1989∼1991년의 경험은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체제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소련은 사회주의였으며 이것은 사회주의의 마지막 장례식이다. 역사는 끝났다. 이제 자본주의가 영원히 지배할 것이다. 모든 땅의 반란자들이여, 대안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윤은 전능하며 모든 것은 그것을 숭배하는데 종속되어야 한다."고 환호했다.

자본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은 철폐됐으며 하루에 1조 2천억 달러의 투기 자본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액수는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의 모든 회원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과 외환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 빈부격차는 급속히 확대됐고 대량 실업은 맹렬한 기세로 증가했다. 지난 30년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상위 20퍼센트의 몫은 70퍼센트에서 85퍼센트로 증가한 반면 가장 가난한 15퍼센트의 몫은 2.3퍼센트에서 1.4퍼센트로 감소했다. 이제 사람들은 세계화를 물리칠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저항의 빛이 서유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의 불만의 겨울

다니엘 싱어는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과 대중 시위를 경험하면서 세계화에 맞서는 저항의 가능성을 봤다. 11월 15일, 프랑스 총리 알랭 쥐페가 사회적 지출, 특히 국민 의료 서비스 부문에 대한 지출을 억제하는 법안을 하원에 제출하면서 20세기 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던져 준 프랑스의 위대한 겨울이 시작됐다. 쥐페의 사회복지에 대한 공격에 맞서 11월 24일 파업과 행진의 날이 조직됐고 약 75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 날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다. 파업에 들어간 철도 노동자들은 파업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하고 날마다 투표를 통해 결의를 다지며 3주가 넘는 전면 파업을 벌였다. 파업은 지하철과 버스로 확대됐고 다시 우체국·통신·가스·전기 등 공공 사업장으로 번졌고 뒤이어 교사들이 파업에 합류했다. 파리의 모든 공공 교통수단은 완전히 멈추었다. 파리는 말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그러나 파업은 공공부문에만 한정됐고 민간부문의 공장은 가동됐기 때문에 1968년처럼 프랑스 전체가 완전히 마비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파리에서 시작된 대중 시위는 지방으로 확산됐다. 11월 파리에서 저항이 처음 조직됐을 때 수십만 명이던 시위대는 지방으로 확산되던 12월초에는 백만 명으로 불어났다. 운동이 절정에 달한 12월 12일에는 2백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연일 집회가 계속됐고 몇몇 지역에서는 주민의 3분의 1이 시위에 참가했다. 대부분의 지방 도시에서는 1968년 5월보다 더 많은 시위대가 모였으며 전후 프랑스 역사상 최대의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의 선두에는 항상 철도 노동자들이 있었다. 철도 노동자들은 "사회보장을 노동자에게", "우리는 사회보장을 얻기 위해 싸웠고 사회보장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을 했다. 여러 해에 걸쳐 어떤 해결책이나 출구도 없이 시장의 논리에 복종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임을 강요당해 왔던 철도 노동자들은 "그것이 너희가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미래라면, 너희 미래 따윈 필요없어!"라고 외쳤다.

쥐페 정부는 대다수 인구가 이런 체제 도전적인 분위기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업 기간 내내 파업 지지율이 60퍼센트를 넘었고 항의 물결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12월 10일 쥐페 정부는 TV 회견을 통해 철도 민영화를 포기하고 공무원 연금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시위의 핵심 대열이었던 운송 노동자들에게 완전히 양보했다. 정부의 양보안이 발표된 이틀 뒤인 12월 12일에도 270여 개 지방에서 2백만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몰려나오며 운동은 절정을 맞게 된다. 12월 16일 다시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가 열렸고 이 시위에 백만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비록 공공부문의 파업이 사적 부문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시위에 참가한 대중의 힘을 결집해 앞으로 더 나아가도록 할 정치적 계획이 부재했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대중 파업은 서구 노동자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음을 보여준 섬광같은 사건이었다.

다니엘 싱어는 1995년 프랑스의 불만의 겨울을 다음 같이 평가한다.

"시장만이 대안이라는 완전한 이데올로기 지배 속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그것에 저항했다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95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봉기는 지금껏 전후 노동 운동이 쟁취한 성과를 깡그리 무너뜨리려는 자본의 공세, 결코 프랑스 국경에만 한정되지 않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 싸운 반란으로는 최대 규모의 반란이었다. 오늘날 서유럽에서 뭔가 희미하게 깜박이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자본의 공세에 맞선 프랑스인들이 그들의 동료들에게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체념만이 유일한 대응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불만의 겨울 이후 '그들의' 미래를 거부한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에 대한 대안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고 있다."

대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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