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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총학생회 선거 평가:
급진화의 수준과 진보의 과제를 보여 주다

올해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NL계열이 여러 곳에서 낙선하고, 오랜만에 옛 PD계열 좌파들이 성장했다.

NL계열은 2008년 촛불 운동 이후 급진화의 수혜를 입어 지난 몇 년간 성장해 왔다. 올해 서울지역에서 확인한 26개 총학생회 중에 13곳이 NL계열이거나 NL과 친화적인 학생들이 운영했다. 그러나 내년에는 5곳으로 줄게 됐다.

그에 비해 PD계열은 이화여대에서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추진위원회(사노위) 경향이, 서강대는 대학생 사람연대 경향이 새롭게 당선했다. 동국대는 진보 연합 선본이 당선했는데 학생회장은 사노위 경향이다.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은 NL계열의 낙선을 부각하며 진보적인 총학생회가 크게 줄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물론 올해 서울지역의 26개 총학생회 중 운동권 총학생회는 15개에서 10개로 줄었다. 그러나 비운동권 총학생회도 11곳에서 7곳으로 줄었다. 올해 선거가 파행되거나 투표율이 미달해 내년 3월 선거를 치르는 학교가 많기 때문이다.

기성 언론은 선거 파행을 두고 “기존 정치판과 다를 게 없다”며 흠집 내지만 많은 경우는 비운동권 경향이 운동권 총학생회의 등장을 견제하며 벌인 일이다. 성신여대는 학교의 탄압 때문에, 국민대는 비운동권 선관위가 편파적으로 선거를 진행해서, 숭실대는 비권의 부정투표 때문에 선거가 파행됐다.

게다가 전국적으로 봤을 때는 서울의 경기대, 경기도의 단국대, 부산의 동아대 등 비운동권에서 운동권으로 바뀐 곳도 있다.

NL계열 중에서도 특히 올해 한대련을 주도하는 경향의 학생회들이 곳곳에서 낙마했다. 이 경향은 숙명여대, 고려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을 운영했지만 숙명여대에서만 재당선했다.

정치적 약점

NL계열 총학생회가 지지를 유지하지 못한 핵심 이유는 잘못된 정치에서 비롯한 실천상의 오류에 있다.

이들은 근래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과 연합해서 권력을 잡아야 실질적인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민중전선 노선을 강조해 왔다.

NL계열은 등록금 문제에도 민주당과 협력을 통해 각종 법, 제도를 개정하는 데 강조점을 뒀다. 물론 투쟁을 건설했지만 투쟁의 수준은 야당에 압력 넣기 수준으로 제한되곤 했다.

올해 상반기 여러 학교에서 수천 명이 등록금 인상 반대 학생총회에 참가하며 투쟁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NL계열 활동가들도 총회가 성사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대다수 NL계열 총학생회들은 학내 등록금 투쟁을 점거 농성 등으로 발전시키는 데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등록금 투쟁은 일부 학교 말고는 더 위력적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큰 성과 없이 끝난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고려대 총학생회는 학생총회가 성사돼 점거 투쟁을 결정했지만, 점거를 반대한 비운동권 학생회를 추수하며 점거를 정리하는 구실을 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도 학생총회 성사 이후 좌파 활동가들의 점거 농성 주장에 반대하며 투쟁의 김을 뺐다.

3월 31일 고려대 학생총회 이렇게 표현된 학생들의 열망을 제대로 된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했다.

올해 6월 벌어진 반값 등록금 촛불시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대련 지도부는 투쟁이 성장할 때 “선거에서 심판하자”는 메시지를 강조했고, 의제와 기구를 확대해 투쟁을 더 심화·발전시키자는 다함께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투쟁은 결국 더 성장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한대련 지도부는 학내 투쟁이 필요할 때는 ‘대정부 투쟁이 중요하다’며 투쟁을 회피했지만, ‘대정부 투쟁’도 민주당과 동맹해서 의회에 기대거나, 선거 심판하는 것으로 협소화시켰다.

학생 운동을 학생회 대의 기구로 환원하는 관점도 투쟁이 더 크게 벌어지는 데 발목을 잡았다. 학생회 대의 기구를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비운동권 학생회들의 압력을 받아 투쟁 수위를 낮추는 일이 벌어졌다.

고려대는 학생 총회에서 결정한 점거 투쟁을 중앙운영위원회가 폐기시켰다. 중앙운영위원회는 애초에 점거투쟁을 반대한 비운동권 학생회장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 대의기구를 물신화하는 태도는 NL경향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올해 서울대 총학생회를 운영했던 전국학생행진 경향도 비슷한 한계를 보였다. 서울대 본부 점거를 실제로 유지하던 학생 중 다수는 점거를 유지하길 원했다. 그러나 점거에 열의 있게 참가하지 않던 전체학생대표자회의 구성원들이 결정해 점거를 풀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학생회 활동가 다수가 동의할 만한 수준으로 투쟁을 제한하며, 학교와 타협을 시도했다. 이 때문에 서울대 총학생회는 투쟁하려는 학생들에게 신뢰를 잃었고, 학생행진 경향은 올해 서울대에서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반사이익

올해 NL계열 총학생회가 투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 생긴 공백의 일부분을 옛 PD계열 학생회들이 메웠다. 서강대에서 당선한 대학생 사람연대 계열 학생들은 올해 희망버스 운동을 열의있게 건설하며 성장한 듯하다.

동국대 진보 연합 학생회는 학내에서 구조조정 반대 투쟁을 주도적으로 건설해 왔고, 당선한 직후 학과 구조조정에 맞서 총장실 점거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화여대 사노위 활동가들은 올해 학내 투쟁을 더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고려대, 연세대, 명지대에서는 그 반사이익이 비운동권 학생회에게 돌아갔다. 최근 청년·학생 들의 급진화 수준이 안철수·박원순 지지 정도에 이른 상황에서 자유주의적인 비운동권 학생회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고려대에서 다함께 경향의 “99%의 역습” 선본은 선명한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며 나름 의미있는 득표(14퍼센트)를 했지만 아쉬움도 있다. “99%의 역습” 선본의 학생들은 올해 교육투쟁에서 점거 투쟁을 벌이자고 주장하며 투쟁을 전진시키려 노력했지만 전체적인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렇게 상반기 교육투쟁이 마무리된 상황에서 ‘99%의 역습’ 정후보가 학생회장이었던 문과대에서 하반기 문과대 독자 요구를 위한 투쟁을 건설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도 ‘99%의 역습’ 선본이 학생들에게 충분한 대안으로 비춰지지 못하는 데 영향을 미친 듯하다. 〈동아일보〉의 반 다함께 마녀사냥도 일부 영향을 줬을 것이다.

올해 고려대 선거에서 선명하게 투쟁을 강조하며 좌파적 학생들을 결집시킬 수 있었던 급진좌파 활동가들은 이런 성과와 교훈을 바탕으로 원칙있는 조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올해 선거 결과는 민중전선을 추구하며 아래로부터 투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NL계열의 정치와 실천이 어떤 약점을 드러냈는지를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변혁적 좌파가 올바른 정치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전술을 제시하며 투쟁을 전진시키려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각한 경제 위기와 이명박의 레임덕으로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회 안팎에서 이런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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