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 논란:
조문과 조의 표명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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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이희호와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방북한 가운데, 조문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통합진보당 대표단은 정부가 민간 차원의 조문단 구성과 방북을 허가하라고 요구했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방북을 신청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공동성명을 통해 노동자 방북을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자주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 황혜로 대표는 조문을 위해 정부 허가를 받지 않고 이미 방북을 감행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김영삼 정부는 조문을 전면 금지하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한다며 대대적인 공안정국을 조성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남북관계는 급속히 경색됐고, 좌파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이번에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그때와는 다르다. 정부는 북한 주민에 ‘위로’를 표하고, 선별적으로 조문을 허용했다. 이것은 동아시아 주변국들과 남한 지배자들이 북한 정권의 불안정을 꼭 달가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지나친 강경대응을 자제해 민주통합당 등의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을 달래며 위기를 모면하고픈 계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우익의 눈치도 봐야 하기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북한 정부가 아닌 북한 주민에 대한 위로 표명 방식을 택해서 ‘조문을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니다’는 말이 나온다. 조문 허용조차 철저히 ‘상호주의’에 입각해 있다. 북한의 조문을 받았던 이희호와 현정은에게만 조문이 허용됐고, 노무현의 유족인 권양숙 씨나 진보진영의 조문은 불허되고 있다.
보수 본색
민주당은 국회 차원에서 조문단을 구성하자고 박근혜에게 제안했지만 박근혜는 “정부 기본 방침과 다르게 가는 것은 맞지 않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동안 중도층을 잡는다며 이명박의 적대적 대북정책과 거리를 두는 척하더니 결국 보수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남한 정부는 분향소를 차리는 것조차 처벌하려 한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모임’이라는 단체가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리려 했지만 경찰이 불허했고, 보수단체들이 난입해 난장판이 됐다. 서울대에서는 한 학생이 학교에 분향소를 차리자 학교 측이 10분 만에 청원 경찰까지 동원해 철거했다.
정부는 황혜로 씨를 국가보안법 상 잠입탈출죄로 처벌하려 하고, ‘김일성 사망 때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나온 적이 있다’며 분향소 설치도 형사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사이버 분향소에 대해서도 위법성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추도하도록 유인하는 것도 찬양·고무”라는 것이다.
북한은 조문 불허는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 야만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실 북한으로서도 심각한 레임덕에 몰린 임기 말 정권과 관계를 개선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우파적 본색과 좌파 마녀사냥의 기회를 이용할 필요 때문에 조문에 대한 태도를 쉽게 바꾸지 않을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 좌파는 남한 정부가 조문과 조의 표명을 가로막고, 그것을 빌미로 탄압하는 것에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우파들은 ‘어떻게 북한 민중의 배를 굶기는 독재자를 애도할 수 있냐’고 주장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지원에 여러 조건을 달아 반대해 왔고 지금까지도 틈만 나면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양하는 자들이 이런 비난을 할 자격은 없다.
또, 북한 체제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토론하고 논쟁할 문제이지, 탄압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사상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다. 남한 정부는 남한을 북한보다 우월한 체제로 여기는 사상의 자유만을 보장하려 한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있는 이런 국가가 민주주의를 운운하며 북한과 그 체제 지지자들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위선이다.
이중 잣대
사실 분향소 설치와 인터넷 상의 조의 표명마저 ‘이적 행위’라며 엄청난 범죄처럼 취급하고, 분향소 설치를 막으려고 경찰력까지 동원하는 꼴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조의 표명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 뿐,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피해를 주는 것이 전혀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누구는 조문해도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한 이중 잣대다. 특히 그동안 남한의 지배자들과 기업가들은 북한을 방문해 북한 관료들을 만나 왔지만 처벌받지 않은 반면, 진보진영의 방북은 처벌받아 왔다. 박근혜도 2002년에 방북해 김정일을 만난 바 있지만 전혀 처벌받지 않았다.
그러나 탄압에 반대한다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을 애도하고 조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진정한 좌파의 관점에서 볼 때, 비록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동기에서 비롯한 것이라 하더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애도와 추모의 대상으로 여길 수 없다.
국제 노동계급 운동과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북한 정권은 사회주의와 전혀 닮지 않았다. 북한 정권은 노동자들을 공개처형하고 노동수용소에 가두면서 억압적으로 통치해 왔고, 핵 미사일과 군사비에 우선 투자하는 ‘선군정치’를 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굶주렸다. ‘3대 세습’이 보여 주듯, 노동자 민주주의는커녕 장기 독재 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런 체제와 정권의 최고 권력자로서 북한 노동자·민중에 대한 억압·착취·독재를 유지해 온 장본인이다.
따라서 진정한 좌파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을 애도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북한 노동계급과 민중이 억압과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북한 정권에 맞서 저항하는 것을 지지하고 응원해야 한다.
물론 북한 정권·체제에 대한 이런 견해 차이를 떠나서, 조문을 이유로 탄압을 강화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시도에는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남쪽을 향하는 이명박의 ‘예의 주시’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정국을 이용해 디도스 사건과 측근 비리를 덮고 위기에서 탈출하려 한다. ‘북한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겠다’며 남쪽에서 분위기를 냉각시키는 것이다.
“과거의 예를 보면 정부 당국의 ‘경계’와 ‘예의 주시’는 북쪽보다 오히려 남쪽 내부를 향한 경우도 많았다. … 검찰의 공안 파트가 곧바로 비상근무에 들어간 것도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김종구 〈한겨레〉 논설위원)
사노련 재판 계류자들이 최근 항소심에서 1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받는 등 이미 최악의 정권 위기를 덮기 위한 공안탄압 분위기가 고조돼 왔다. 김정일 사망 정국 속에서 이것은 더 강화되고 있다.
노동운동 단체인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전직 간부 두 명이 이적표현물 소지와 쌍용자동차 집회 참가 등을 이유로 압수수색 당했고,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과 이경원 전 사무처장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12월 26일에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 25명을 한꺼번에 연행했다. 최헌국 목사도 등록금 집회 참가 등을 이유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이명박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투쟁의 고삐를 다시 죄며 공안탄압 강화에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