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기고:
미국의 인종차별
후드티 입은 흑인은 죽음을 각오하라?

지난 2월 말에 플로리다 주 샌퍼드에서 비무장한 17세 흑인 청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사살한 자경단장 조지 짐머맨이 4월 11일 2급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마틴의 부모님은 그의 구속을 기뻐했다.

하지만 4월 20일 세미놀 카운티 순회 법원의 판사는 짐머맨에게 보석을 허가했다. 마틴 가족과 목격자와의 접촉 금지, 알코올과 총기 금지를 조건으로 보석이 허가됐다. 하지만 이 결정으로 마틴 가족은 크게 실망했다. 마틴 가족의 변호사 벤자민 크럼프는 마틴의 부모가 “짐머맨이 마틴의 가족들에게 준 고통은 평생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보석으로 얻은 짐머맨의 자유가 일시적이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짐머맨은 사건 후 처음으로 마틴의 부모에게 공개적인 사과를 했지만 크럼프 변호사는 이를 두고 “자화자찬”이라고 일갈했다.

마틴이 먼저 가한 공격에 대한 정당방위로 총을 쐈다고 주장한 짐머맨은 4월 11일 전까지 단 한번도 경찰에 체포되지 않았다. 여러 사회 활동가·단체 들의 조직적인 압박에 법무부와 미국연방수사국(FBI)은 트레이번 마틴이 사살된 지 한 달 후에야 짐머맨을 조사했다.

‘1백만 후드티를 입은 사람들’ 행진에 참가한 플로리다 시민들 인종차별에 도전하는 투쟁이 부활하고 있다. ⓒ출처 David Shankbone (플리커)

이제 트레이번 마틴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를 두고 “인종 프로파일링에 대한 전국적인 토론을 자극시켰다” 하고 썼다.

사건 당일, 짐머맨은 911 대원과의 통화에서 집 근처 편의점에서 사탕과 냉차를 사서 나오던 마틴을 두고 “이 자는 마약같은 것을 했거나 무언가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것 같다. 비가 오는데 걸어다니며 자꾸 쳐다본다”고 말했다. 그리고 추적이 시작됬다. 짐머맨은 마틴이 뒤에서 먼저 공격을 했다고 발언했지만 911 대원과 한 통화에서는 자신이 마틴을 뒤쫓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911 대원이 추적이 불필요하다고 말한 내용까지 증거로 남아 있다. 마틴이 사살당하기 전 마지막 순간에 통화한 마틴의 여자친구는 마틴이 ‘누군가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으며 그 이유로 자신은 후드를 쓰고 더욱 빨리 걷기 시작했다’고 말했고, 두사람의 통화는 마틴이 누군가와 부딪치면서 갑자기 끓어졌다고 말했다.

비무장한 흑인 청소년을 “마약같은 것을 했거나 무언가 일을 저질르려고 하는” 범죄자로 여긴 짐머맨의 인종차별적인 선입견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실종된 아들을 찾으려고 트레이번 마틴의 아버지가 24시간 동안 계속 911에 연락했지만 경찰은 마틴의 소지품인 휴대폰에서 마틴과 가족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았다. 전미유색인종협의회(NAACP)의 의장인 벤 질러스는 〈데모크라시 나우!〉에서 “젊은 흑인 남성들이 경찰 혹은 경비에게 사살 됐을 때 심각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고 말했다.

인종 프로파일링

그럼 무엇이 인종문제인가?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있는 미국 사회를 흔히 ‘탈인종적’ 사회라고 한다. 즉, 흑인 노예제도나 인종분리제도를 인정한 짐 크로우 법은 과거의 일이고 이제 미국은 인종을 뛰어 넘은 사회라는 것이다.

하지만 비무장한 흑인 청소년을 무조건 의심해야 할 존재로 보는 치안 방식은 미국 사회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틴이 짐머맨에게 사살 당하기 몇 주 전 뉴욕에서도 비무장한 18세 흑인 청소년 라말리 그램은 무장했다는 의심 때문에 경찰에게 사살됐다. 3월에는 오클라호마 주 델 시에서 18세 흑인 청소년 데인 스캇 주니어가, 시카고에서는 22세 흑인 여성 레키아 보이드가 같은 이유로 경찰에게 사살됐다. 올해만 벌써 흑인 29명이 경찰에게 사살됐으며 그중 16명은 트레이번 마틴 사건이후의 희생자들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뚜렷한 객관적 근거 없이도 흑인들을 의심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경찰들의 ‘인종 프로파일링’이다.

트레이번 마틴의 사건과 인종차별 문제가 화제가 되면서 이 사건의 인종차별적 요소를 들춰 낸 건 다름 아닌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언론 〈폭스뉴스〉였다. 3월 23일 시사 해설자 헤라르도 리베라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젊은이들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후드티를 입고 외출하지 못하게 하라”며 트레이번 마틴이 후드티를 입고 외출하게 한 그의 부모를 비난했다.

리베라는 후드티를 ‘갱스터’ 스타일과 연관시키며 “후드티는 짐머맨 만큼이나 트레이번 마틴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하고 말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추적이 불필요하다는 911 대원의 말을 무시하고 비무장한 17세 청소년을 사살한 짐머맨과 똑같이 엉뚱하게 후드티를 문제삼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흑인 남성들은 자라면서 거의 ‘전통’처럼 부모에게 경찰의 인종차별에 대한 주의를 듣는다고 한다. 사실 많은 흑인 부모들은 자식들의 옷차림이 경찰의 폭력을 불러일으킬까 봐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백인 젊은이들의 후드티 차림은 문제가 안 된다. 감옥 제도와 인종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치 활동가 엔젤라 데이비스는 ‘흑인’과 ‘범죄자’를 연결시키는 이런 인종차별적 암시를 ‘인종의 범죄화’라고 표현했다.

오늘날의 현실은 보수 세력이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의 성과를 공격하려 하면서, 1982년 레이건 정권이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하고 유색인종들을 집중적으로 감금해 온 것과 관련이 있다. ‘약물 중독과 정신 건강 서비스국’이 마약 사용의 비율에서 인종들 사이에 두드러진 차이가 없다는 조사를 내놨지만, 연방 정부는 백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교외보다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빈민가에 훨씬 많은 경찰들을 배치했다.

1백만 후디 행진

이 사실은 ‘마약과의 전쟁’의 근본적인 목적이 ‘마약 문제’가 아닌 ‘인종 프로파일링’에 있음을 보여 준다. 그 결과, 백인에 비해 흑인이 마약범으로 걸릴 가능성이 2~11배나 된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뉴욕에서는 68만 4천여 명이 거리에서 검문을 당했는데, 그중 87퍼센트가 흑인과 히스패닉계였다. 뉴저지 주 통계를 보면 차량 검문을 당한 사람들 중에 통행 정지와 조사를 받은 사람의 42퍼센트, 체포된 사람의 73퍼센트가 흑인이었다. 소수민족은 인구의 15퍼센트에 불과하고, 교통 법규 위반 문제에서 흑인과 백인 간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법과 교수인 미셀 알렉산더는 현재 미국에는 1850년대 미국의 흑인 노예 수보다도 많은 흑인들이 투옥돼 있다고 밝혔다. 법무국 통계를 보면 2001년도에 태어난 흑인 남성의 32퍼센트가 감옥에 갈 가능성이 있는데, 백인 남성의 경우는 6퍼센트에 그친다.

미국에서 투옥된 사람은 2백30만 명으로 스탈린 시절의 소련 강제 수용소에 투옥된 사람보다 더 많은 숫자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기도 하다. 1991년부터 2010년까지 범죄율은 전반적으로 낮아졌지만 정작 투옥되는 비율은 레이건 정부 시절보다 4배 이상 늘어났다. 범죄율과 투옥 비율이 따로 노는 미국사회의 비정상적인 현실을 보여 준다.

여기에는 형사 피고인들 중 약 80퍼센트가 변호사를 선임해 제대로 된 재판을 받을 형편이 못 되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경제적(계급적) 원인이 한편에 있고, 흑인 남성의 투옥 비율이 백인 남성에 비해 6배나 높은 인종적 불평등이 또 한편에 있다.

주류 언론들은 트레이번 마틴의 사건을 예외적인 사건으로 다루지만, 경찰 폭행과 인종 프로파일링을 통해 이유 없이 사살되거나 투옥된 흑인 피해자 가족들과 많은 흑인들에게 이 사건은 ‘전형적인 사건’이다.

미국 전역에서는 작게는 수백 명에서 크게는 수천 명이 참가한 ‘1백만 후디(후드티를 입은 사람들)행진’과 인종 프로파일링을 반대하는 반(反)인종차별주의 조직들, 다인종적 연대는 보수언론들이 숨기려 하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많은 활동가들은 트레이번 마틴의 사건을 계기로 주류 언론이 무시한 여러 도시의 비슷한 사건들을 새롭게 조명하며, 인종차별과 경찰 폭행을 반대하는 목소리로 발전시키고 있다. 지난해 경찰 폭행을 겪은 월가 점거 운동의 활동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에 도전하는 투쟁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트레이번 마틴과 정의를 위해 시작된 이 투쟁은 인종차별과 경찰 폭행에 저항하는 투쟁의 시작이다.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