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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 무상보육할 수 없다는 새빨간 거짓말

 이 토론회는 7월 11일 통합진보당 박원석 국회의원실이 주최한 토론회 '무상보육 대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토론자로 참가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이다.

그동안 복지 포퓰리즘 운운하며 복지 확대에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으로 무상보육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무상보육은 부모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경제 위기가 심해지면서 육아 비용이 갈수록 높아져서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아이 키우는 일이 주로 여성의 책임이 돼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특히 심각했다. 양육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피해를 준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었다.

이명박 정부식 ‘무상보육’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졸속으로 추진하면서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공공보육시설보다 민간어린이집을 크게 늘리고 보육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펼치다 보니 온갖 문제가 발생했다.

공공보육을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할 수 없게 되는 형평성 문제가 발생했고, 보육교사의 노동조건을 악화시켜 보육의 질을 무시했다. 많은 부모들은 이런 허점투성이 무상보육 정책이 하루빨리 보완되기 바랐다.

그런데 정부는 현 정책을 보완해 진정한 무상보육을 실행하기는커녕 오히려 지금보다 더 후퇴시키려는 의도를 계속 내비치고 있다.

무상보육 시행 직후부터 일부 지자체장들이 재정 부족을 이유로 보육료 지원 확대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을 때 부모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그런데도 정부는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다가 이제 “0~2세 보육료 지원을 선별로 전환하겠다”며 시행 4개월여 만에 무상보육 정책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런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공약을 뒤엎는 것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정책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 부모들은 전면 무상보육을 선별 방식으로 후퇴시키려는 정부 계획에 결사 반대한다. 정부는 돈이 없다는데 정말 그럴까? 환경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에 수십조 원을 쏟아부을 돈은 있어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은 그렇게 아깝다는 말인가?

부자 프렌들리

정부는 “재벌가 손자까지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은 공정한 사회에 맞지 않다”고 했는데, 이것은 노동자와 서민들을 완전히 우습게 아는 말이다. 부자에게 세금 깎아주고 재벌 배를 불리는 온갖 특혜를 제공해 온 정부가 지금 공정 사회 실현하겠다며 무상보육 대상자를 축소한다는 말인가. 집권 초부터 부자감세, 법인세 인하, 4대강 사업 등으로 줄곧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한 이명박 정부가 이제 와서 ‘공정성’ 운운하며 무상보육을 후퇴시키려 하는 것은 노동자·서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할 뿐이다.

보육료 지원을 선별 지원으로 전환하고, 시간제 보육을 크게 늘려 보육시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수를 줄이겠다는 발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관료적 행정의 표본이다. 무상보육 후퇴는 경제 위기로 갈수록 생활이 힘들어지는 서민들의 부담을 더욱 늘리는 것이고, 여성들을 계속해서 아이 키우는 도구로만 삼겠다는 발상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보육료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상위 30퍼센트가 모두 재벌이나 부자가 아니다. 그 중 상당수는 평범한 노동자들이다. 현행 기준에 따르면 주택담보 대출로 집 한 채 갖고 있고, 부모가 맞벌이를 하고 있으면 하위 70퍼센트에 포함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여성들이 경제 활동을 원하지만 현실은 경력단절, 시간제 근무, 비정규직 취업 등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근무시간에 맞춰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여성도 많다. 보육의 투자 효과를 여성의 경제 활동 여부로 계산하는 것은 한국의 노동 조건을 무시한 발상이다.

물가와 공공요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실업과 임금 삭감으로 많은 가정에 빚이 늘었고 최근 집값 하락으로 중산층마저 생활조건이 후퇴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이렇게 심한 데도 복지 예산을 늘리지 않으려는 이명박 정부는 상위 1퍼센트만을 위한 정부이다.

진정한 무상보육의 조건

무상보육을 후퇴시킬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식 무상보육 방식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국공립보육시설을 대거 늘리지 않고 부모에게 현금을 지원하고 민간업자들의 수익성 추구를 규제하지 않는 정책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민간업자 위주의 보육 시스템은 예산은 예산대로 쓰면서 보육료는 오르고 보육의 질을 약화시킬 수 있다.

보육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국공립어린이집이 고작 17개소 증가하는 동안 민간어린이집은 2011년 말부터 2012년 6월 말까지 무려 1천2백여 곳이나 늘었다.

보육이 돈벌이가 되면 꿀꿀이죽 사건이나 아동학대 같은 끔찍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사태를 접할 때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대다수의 부모들이 몇 년씩 기다려 아이들을 국공립어린이집에 맡기려는 이유다.

그동안 국공립어린이집을 최소 30퍼센트대로 늘리라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가 계속 있었다. 정부는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무상보육의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하루빨리 국공립어린이집을 대폭 확충하고 민간업자들의 수익성 추구를 규제해야 한다. 민간어린이집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민주적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보육교사 확충과 처우개선도 시급한 문제다. 전계층 보육료 지원 이후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어린이수가 대폭 증가하면서 보육교사들의 노동강도가 세지고 근무조건이 악화됐다.

보육교사들의 노동조건 악화는 보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최대 요인이다. 따라서 시급히 보육교사를 충원하고 교사들의 근무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또, 보육교사들이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

또, 맞벌이 부부가 크게 늘어난 만큼 직장 내 보육시설도 늘리고 부모에게 충분한 육아휴직을 제공해 여성의 육아 부담을 줄여야 한다.

한국이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한 지 16년이 넘었다(1996년 가입). 그리고 2010년에는 G20 정상회담도 개최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드디어 대한민국이 세계 중심에 우뚝 설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그러나 복지지출이 재정의 28.2퍼센트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나라에서 국격 상승이 노동자, 서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이 하나 마음 놓고 맡길 곳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현실은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이런 현실은 정상이 아니고, 불가피하지도 않다.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엄청나게 감세한 것을 철회하고 세율을 높이고 종부세를 다시 걷고 부유세를 신설하면 무상보육뿐만 아니라 무상의료,반값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게 가능하다.

정부는 말로만 복지국가 실현을 말하지 말고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정책을 보편적 복지 확대로 전환해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켜야 한다.

아이 키우는 일을 개별 부모들에게 맡겨두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무상보육 후퇴가 아니라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올바른 무상보육 정책을 하루빨리 시행하라.